시::권말선456 [시] 순무꽃 순무꽃 권말선 어여삐 농사지어 꾸러미에 챙겨주신 땅땅한 순무 하나 부엌 창문 아래 숙제처럼 쟁여두고는 ‘순무김치 담그는 법’ 검색하고 며칠 ‘담아야지’ 생각하고 며칠 ‘무청이 자라네?’ 쳐다보고 또 며칠 ‘어머, 많이 자랐네!’ 하고는 또 며칠 그 사이 녀석은 홀로 제 몸의 수분 죄 끌어다 무청을 살찌우고 자란 무청 발돋움으로 햇빛을 따먹으며 양분이란 양분 다 끌어모은 끝에 노란 별꽃 타다다닥 터트렸다! 동안 얼마나 조마조마했으랴 혹시라도 냉큼 들어 올려 껍질 벗기고 조각을 내고 마늘, 고춧가루 휘휘 둘러 와삭와삭 씹어 삼키지나 않을까 발소리마다 놀래 잠 설쳤는지 쪼그라들고 검버섯마저 폈구나 흙 한 줌 없이 넉넉한 볕도 없이 물 한 모금도 없이 오로지 제 의지로만 노란 꽃무리 피워 낸 순무의 분투에 그제.. 2022. 3. 16. [시] 칼과 촛불 칼과 촛불 - 20대대선, 윤석열 당선을 보며 권말선 촛불이 흩어지고 떠난 자리에 미친 칼 하나 고개를 쳐들다. 온갖 잡신이 올라탄 부채, 오방색 요사한 옷, 짤랑대는 방울 소리, 곡성哭聲 부르는 칼춤의 시간 오고야 말았구나 국정농단의 박근혜 사기꾼 이명박 폭압의 전두환과 무능했던 전직들 친일의 박정희 전쟁광 이승만까지 잘도 버무려져 환생했구나 저 칼 윤석열이라는 칼 저 적폐의 응집 뒤에 손잡이를 움켜쥔 놈들의 흥에 취한 ‘乾杯(간빠이), Cheers(치어스)’ 소름 돋는 제국의 환호까지 그러니 다시, 촛불의 시간 못다 한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 촛불의 사명 이어가야 할 시간 뜨겁게 타올라 칼을 녹이고 손잡이를 태우고 손잡이 움켜쥔 악을, 몸통을 다 태우고 이겨야만 할 시간 촛불이 횃불로 부활해야만 할 시.. 2022. 3. 10. [시] 한 방울의 노래 한 방울의 노래 권말선 고향 떠나올 때 어머니 내 등을 쓸어주시며 어디든 가거라 끝까지 가거라 두려워 말아라 고향 떠나는 날 내 동무들 큰 강줄기로 작은 냇물로 가는 고랑으로 흩어질 때 서로 손 흔들어 주며 힘차게 나아가자 어디에 있든 서로를 그리워하자 어렵고 느린 걸음이라도 우리 닿는 그 끝 혹 상처에 패인 자리라도 다시 생명이 피어남을 믿으며 웃으며 어머니의 혼 어머니의 생명 어머니의 사랑 어머니의 그리움 다 쏟아붓고 나 다시 돌아갈 곳 있으니 길 잃지 말라는 한결같은 신호 그리워한다는 두근거림으로 언제나 기다려주는 품 나의 호수 나의 어머니 나의 심장이어라 2022. 3. 8. [시] 나의 선택 나의 선택 - 2022 대선을 앞두고 권말선 이제 선택의 시간 앞에서 나는 통일 만을 생각한다 미국이 던져주는 모이만 바라며 날기를 포기한 채 땅바닥만 쳐다보는 길들여진 새 다들 우아한 비둘기가 되셨는지 평화, 평화만 부르짖고 통일은 입 밖에 꺼내기를 두려워하는 자들이여 언제부터 통일이란 두 글자가 낮은 음이 되었는가? 묵음이 되었는가? 이러다 결국 없애 치우고 말 건가? 왜? 통일이 없으면 언제나 벼랑 끝 삶 뿐이라고 분단의 긴 세월 온 강토가 몸서리치며 외쳤건만 통일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낡은 비둘기들 앞에서 꿈 꾸기를 포기하지 말자고 단 하루라도 통일, 통일만 이야기 해 보자고 다시 날개를 펼쳐 북으로 남으로 날아보자고 목 놓아 울부짖고 싶은 선택의 날이다 2022. 3. 8. [시] 내 감나무에게 내 감나무에게 권말선 너랑 나랑은 동무였다 어린 발돋움 어린 매달림 다 받쳐주고 다 받아주던 너는 내 동무였다 너에게만은 낯가림 모르던 꼬마 늘 네 근처를 뛰놀던 아이 우린 서로 만문은 ¹ 동무였다 봄이면 왕관 같은 꽃을 겨울엔 달디 단 곶감을 여름엔 네가 툭 쳐서 떨궈준 옆집 살구를 줘 먹으며 자랐다, 또 네 긴 가지 그늘에 숨은 딸기랑 무리 ² 도 따먹으며 아무 때나 올려다보며 홍시 달라 칭얼대던 밟고 기대고 매달리며 올라가겠다 졸라대던 내게 너는 보모였고 놀이터였고 또 선생이었다 나이 오십 넘어서도 여전히 너는 나의 동화 고향집을 추억하노라면 맨 먼저 떠오르는 갈망 그래 나는 아직도 나무란 나무를 보면 맥지 ³ 오르려 욕심내나 보다 허나 돌아보건대 내 사랑은 얼마나 얄팍한가 그토록 아끼던 그토록 아.. 2022. 2. 21. [고사문] 2022 임인년 대보름 지신밟기 유 세차 임인년 정월 대보름을 맞이하여 아직은 겨울날의 쌀쌀함이 대지에 가득하고 몇 년간을 이은 코로나로 지친 몸과 마음이나 도도한 역사를 품고 밝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용산구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지극한 마음을 모-두 담아 용산미군기지 온전한 반환과 코로나 퇴치 그리고 용산구민의 만복을 기원하며 용산구민들과 용산풍물패 미르마루가 꽹과리, 태평소, 징, 장구, 북을 앞세워 용산의 곳곳을 다니며 지신밟기를 했습니다. 2022년 정월 대보름 지신밟기는 먼저 용산에서 태어나 일제의 심장에 수류탄을 날렸던 이봉창 의사를 기리며 이봉창 광장에서 시작했습니다. 용산행복중심생협 앞에서 이 땅의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민들의 만복을 빌었고 외세에 맞서 동학농민항쟁을 펼쳤던 녹두장군 전봉준의 뜻을 기렸습니다. 효창공원에서는.. 2022. 2. 18. [시] 삼지연시 가는 길 삼지연시 가는 길 권말선 백두밀림 사방에 휘감은 채 저도 나무인 양 해님 향해 솟은 지붕들 빨강 파랑 노랑 초록으로 손짓하는 저기 삼지연시로 갈래, 가 볼래? 색동의 집집이 기지개 켜는 아침과 꽃 같고 새 같은 아이들 뛰노는 한낮과 밀림의 자장가 이슥토록 물드는 밤 동화책 속인 듯 꿈속인 듯한 마을들 너와 나 다르지 않으니 거기서 기꺼이 우리도 나무인 양 뿌리 묻고 살아볼래? 누구라도 언제라도 가 보고 싶은 백두산이 너른 품으로 안아주는 곳 길 잃고 헤매면 손잡아 이끌어줄 밀림의 나무들이 거리를 지키는 곳 친근한 그리움이 날마다 손짓하는 저기 삼지연시로 지금 가 볼래? 마을마다 거리마다 집집마다 수많은 사연 감동으로 넘실대고 하나의 핏줄로 맥박치는 거기, 우리 그리던 고향이라 우기며 살아볼래? 새들도 황.. 2022. 2. 18. [시] 덕분에 사는 삶 덕분에 사는 삶 권말선 사람들 덕분에 산다 쌀과 찬거리 책과 꿀과 차 그리고 잘 있냐는 전화 한 통 그 따수운 사랑 덕분에 무사히 하루하루를 산다 사랑도 강물 같아서 유유히 흘러야 더 아름다운 법 그러니 그 맥을 이으며 살자 사람들에게서 받은 정을 누군가에게로 계속 흐르게 하자 내게서 끊어지지 않게 하자 세상 의지할 곳 찾지 못해 홀로 떠나는 사람들 다시는 없어야겠기에 36.5℃ 사람의 온기 태어날 땐 그저 받았으나 살면서는 정으로 지키는 온기 오늘은 누구에게 나눌지 내일은 무엇을 나눌지 더 고민하고 더 궁리하자 벗이여, 우리 그렇게 살자 덕분에 살아온 삶이었듯 더불어 살아갈 삶이기에 2022. 2. 4. [시] 학살자를 보았다 학살자를 보았다 - 산내 골령골, 노근리 쌍굴다리를 다녀와서 권말선 우리는 보았다 1950년 여름의 골령골 전쟁보다 한 발 먼저 달려와 미친 듯 날뛰던 학살의 만행을 끝도 없이 트럭에 실려 온 사람들이 한 순간 주검이 되어 구덩이에 묻히는 걸 그날, 선량한 사람들에게는 총을 든 군인도 경찰도 학살의 지휘관 미군도 모두 적이었다 우리는 또 보았다 전쟁을 모르던 산골사람들 전쟁을 핑계로 허허벌판으로 내몰고는 비행기에서 포탄 마구 쏟아붓는 걸 노근리 쌍굴다리 아래 살자고 들어간 사람들에게 다 죽이겠노라 작정하고 쉴 새 없이 총알 퍼붓는 걸 울음을 뺏긴 아이들, 피를 토한 어른들 미군이 저지른 72시간의 학살을 우리는 아직도 보고 있다 우리 가까이 있는 학살자 미국을그때 그들이 퍼붓던 총포는 이제 전쟁연습으로 .. 2021. 11. 28. 이전 1 ··· 6 7 8 9 10 11 12 ··· 5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