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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권말선

[시] 내 감나무에게

by 전선에서 2022. 2. 21.

내 감나무에게

권말선


너랑
나랑은
동무였다

어린 발돋움
어린 매달림
다 받쳐주고
다 받아주던
너는 내 동무였다
너에게만은
낯가림 모르던 꼬마
늘 네 근처를 뛰놀던 아이
우린 서로 만문은 ¹
동무였다

봄이면 왕관 같은 꽃을
겨울엔 달디 단 곶감을
여름엔 네가 툭 쳐서 떨궈준 옆집 살구를
줘 먹으며 자랐다, 또
네 긴 가지 그늘에 숨은
딸기랑 무리 ² 도 따먹으며

아무 때나 올려다보며
홍시 달라 칭얼대던
밟고 기대고 매달리며
올라가겠다 졸라대던
내게 너는
보모였고
놀이터였고
또 선생이었다

나이 오십 넘어서도
여전히 너는 나의 동화
고향집을 추억하노라면
맨 먼저 떠오르는 갈망
그래 나는 아직도
나무란 나무를 보면 맥지 ³
오르려 욕심내나 보다

허나 돌아보건대 내 사랑은 얼마나 얄팍한가
그토록 아끼던
그토록 아껴주던
너는 지금 없으니
너를 지키지 못했으니
널 떠나 잊고 사는 동안
너는 꽃도
홍시도
갈색 물든 잎도
훌훌 버리고 한 톨 미련도 남기지 않았더구나

그래도 여전히 넌 내 동무
심장에 박힌 채
때때로 울컥울컥 치솟는 그리움

나이 좀 더 먹으면
고향집 거기처럼
마당 있는 집, 
볕 잘 드는 따사롭고 조용한 곳에
네 자릴 마련하고
심장에서 고이 꺼내 심어주리라
네가 그랬듯 이번엔
내가 널 돌보며 살뜰히 키우리라
때때로 또 오래
네 곁에 잠들며 떠나지 않으리니
너는 다시 내 곁에서
철 따라 새순에 꽃 열매 맺으며
푸르르고 또 물들거라
어릴 적 네 곁에서 내가 그랬듯
아무런 근심도 걱정도 없이
온갖 새들과 더불어
웃고 또 노래하거라

너 그리웁구나
고향집
내 감나무
감나무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만문은 : 만문하다, '만만하다'의 비표준어
2) 무리 : '오이'의 방언
3) 맥지 : '공연히'의 방언

늙은 감나무, 인터넷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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