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무꽃
권말선
어여삐 농사지어 꾸러미에 챙겨주신
땅땅한 순무 하나
부엌 창문 아래 숙제처럼 쟁여두고는
‘순무김치 담그는 법’ 검색하고
며칠
‘담아야지’ 생각하고
며칠
‘무청이 자라네?’ 쳐다보고
또 며칠
‘어머, 많이 자랐네!’ 하고는
또 며칠
그 사이 녀석은 홀로
제 몸의 수분 죄 끌어다 무청을 살찌우고
자란 무청 발돋움으로 햇빛을 따먹으며
양분이란 양분 다 끌어모은 끝에
노란 별꽃 타다다닥 터트렸다!
동안 얼마나 조마조마했으랴
혹시라도 냉큼 들어 올려
껍질 벗기고 조각을 내고
마늘, 고춧가루 휘휘 둘러
와삭와삭 씹어 삼키지나 않을까
발소리마다 놀래 잠 설쳤는지
쪼그라들고 검버섯마저 폈구나
흙 한 줌
없이
넉넉한 볕도
없이
물 한 모금도
없이
오로지 제 의지로만
노란 꽃무리 피워 낸
순무의 분투에
그제서야 정신 와닥 차리고
물병에 담아줄까
화분에다 꽂아줄까
씨를 받아야겠지
방정을 떨다가
문득
가진 것 제 한 몸뿐이어도
저를 믿고 당당히
꽃을 피워 올리는
너, 순무처럼
겨울 끝에 또 겨울 온대도
굴함 없이
희망의 꽃 피우리라고
네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작은 손 힘주어
악수를 나눠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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