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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권말선/그이의 환한 미소(두번째 시집)165

짧은 몽상 짧은 몽상 권말선 넓은 창을 보면 창가에 앉아 하염없이 창 밖을 바라보고 싶어 어두운 밤 달빛만 희끔하고 띄엄띄엄 늘어선 나무도 굳은 듯 멈춰있는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풍경을 그저 멍하니 바라봤으면 비오는 날 창으로 주룩주룩 빗물 흐르는 그 모습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어 첫사랑과 찻집에 마주 앉던 날 창가를 두드리던 비 눈물같은 비가 끝없이 흘러줬으면 어제처럼 또 저녁이 어스름 내리는데 벽을 가득 채운 유리창 밖으로 마음이 달아나 눈길을 거두어도 자꾸만 창 밖 어딘가를 서성이게 돼 아직도 마음은 서성이나봐 넓은 창을 보면 그 곁에 정물처럼 앉아 하염없이 창 밖 바라보고만 싶어 2012-02-05 2014. 3. 19.
내가 살고 싶은 집 사진 : 영화 '우리의 래일은 더 푸르다'의 한 장면 내가 살고 싶은 집 권말선 두꺼운 철문이 굳게 닫힌 집 그런 집 말고 마당 너른 집 대문도 초인종도 필요 없는 집 아침이면 이웃과 들에 나가고 저녁이면 사랑방에 모여앉아 지나 온 역사얘기 내일의 희망으로 마을마다 이야기꽃 넘쳐나는 곳 그런 곳에 작은 내 집도 있었으면 우리집에 달래 냉이 무쳐놨어요 언니, 언니 놀러 오세요. 울타리 너머 큰소리로 불러보면 환하게 웃으며 대답하겠지 그래, 부침개 한 장 부쳐서 갈게 야, 맛있겠다 쪼르르 먼저 뛰오는 아이들 신나는 발걸음 소리 이웃과 정 나누며 살고 싶어라 계절따라 마당가에 방긋방긋 키 작은 꽃들이 예쁘게 피고 텃밭에 딸기 고추 영그는 양을 키 큰 해바라기가 지켜주겠지 야트막한 담가에 골담초 웃고 그 옆엔 .. 2014. 3. 19.
세 살 규민이 세 살 규민이 권말선 가게 일 바쁜 엄마 아빠대신 일주일에 두 번 놀아 주고 책 읽어주러 세 살 규민이에게 간다 동화책 보여주면 책장 대충 휙휙 그러다 옆으로 쉭 던져불곤 뽀로로 책 펼쳐 놓고 응, 응, 으응! 제 친구들 나오는 책 보자며 우기고 음악틀어 놓고 노래 불러 줄라하면 두껑 확 열어제껴 CD 꺼내 흔들며 보물이라도 찾은 듯 헤벌쭉 웃던 녀석 이제는 맘 내키면 무릎에 앉아 곧잘 책도 끝까지 다 보고 풍선, 강아지, 돼지, 고양이 형아 책 표지의 어여쁜 누나 사진 좋아하는 게 점점 늘어나는 귀여운 고집쟁이 세 살 규민이 선생님이랑 노는 시간 너무 짧고 티비랑 노는 시간 더 길어 심심한 너도 영어 수학 유치원 태권도 친구랑 노는 시간 모자라 우는 형아도 골목길 마을길 신나게 뛰놀며 재미난 우리 놀이.. 2014. 3. 19.
[시] 풍명실업고등학교 풍명실업고등학교 권말선 가난해서, 너무나 가난해서 주경야독 하던 시절 낮에는 수출용 양복 만드느라 밴딩나이프에 손가락 베어도 보고 화장실 변기에 앉아 하염없이 졸다 화장실 자주 간다고 핀잔도 듣고 졸면서 가위질하다 분임언니에게 등짝을 맞았던가 욕 먹었던가 그래도 재밌었지 친구도 많았고 첫사랑 편지, 면회 기다리는 설레임 작업시간 내내 졸지말고 열심히 일하라 최신가요 빵빵 틀어주면 신나서 흥얼흥얼 가끔 받는 시골 계신 아버지 편지 눈물나게 가슴 쓰려 달려가고팠던 적 고생스런 엄마의 한숨소리 귓전에 들려 고개 파묻고 엉엉 울고팠던 적 그리운 친구 만나러 기차역 가는 상상 그러느라 맘 어설픈 날도 많았었지만 돌아보면 학창시절 함께 웃던 친구들 얼굴 참말로 그리워 시골초등학교 분교도 아닌데 우리같은 애어린 산업.. 2014. 3. 19.
낮새 밤쥐 낮새 밤쥐 권말선 역적질을 하는 것도 아니요 사기질로 떼돈 벌어 숨긴 것도 아니고 통일이 곧 온다기 고맙고 기뻐서 노래 좀 들었다고 공부 좀 하였다고 쥐들이 내 주변을 얼씬얼씬, 무슨 소릴 하고 있나 누구를 만나나 허구헌날 염탐질을 한단다 멀리 있는 벗 그리워도 이래서야 어디 안부나 묻겠나 온라인 강의로 시 좀 배울려도 이래서야 어디 맘 놓고 공부 하겠나 오랫만에 친구가 만나쟤도 이래서야 어디 냉큼 기차를 타겠나 정말로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니 이래서야 찝찝하게 무슨 자유가 있나 훠이 훠이 모두 저리 꺼져라! 제 구린 것 가리려 남 뒤 밟는 놈, 영장들고 떼로 와서 온 집안 뒤지는 놈, 권력빽 믿고 오라가라 해대는 놈, 그리고 무엇보다 남과 북 모두 행복할 통일이 내일이라도 올까 어떻게든 .. 2014. 3. 19.
어느 잠 못 드는 밤에 어느 잠 못 드는 밤에 권말선 늦은 밤 잠 못 들고 뒤척일 때는 마음 속에 길 하나 만들어 본다 숲길과도 같은 길, 들 사이로 난 길 좁다란 골목길, 길게 뻗은 마을 길 아무 길이면 어떠랴 길 끝에 그대만 그대만 있으면 된다, 어차피 마음의 길 바람 시원하게 부는 길, 아니 꽃길이었으면 소북히 눈 쌓인 길이라 할까 어차피 마음의 길 눈 감고도 걸을 수 있고 어디선가 소리도 들려 새 지지대는 소리 키득대는 꽃들의 수다소리 느린 걸음으로 아주 느린 걸음으로 걸으리 발자욱마다 그리움 부푼대도 아주 천천히 늦은 밤 잠 못 들고 뒤척일 때는 마음으로 만든 길 한없이 걷다가 길 끝에서 손 흔드는 그대 만나면 조용히 길을 접고 숨을 것이다, 그대와 함께 2012-01-01 2014. 3. 19.
겨울밤 겨울밤 권말선 할머니 호옥호옥 낮은 숨소리 자식손주 먹으라 고구마 구워놓고 업어 가도 모를 초저녁 깊은 잠 호옥호옥 후 호옥 나를 왜 구웠냐 스물스물 화내는 고구마 달래느라 후후 호호 접시 가득 노오란 속살 딸 아들 한 입씩 먹여 놓고 엄마는 달콤한 행복 한 입 배고픈 달님 기웃기웃 킁킁 나도 한 입... 입맛 다시며 아까부터 달빛으로 창문 두드리다 빈 접시에 투덜 터덜 되돌아서서 '내일 또 고구마만 울겠군!' 노랗게 시샘하는 밤 2011-12-31 2014. 3. 19.
꽃길 꽃길 권말선 님 먼 곳으로 떠나신다기 흰 꽃 송이송이 길 위에 깔아 가시는 걸음 환하게 밝혀 두었네 동짓날 추위 눈발이 날려 하얀 꽃길에 내려 덮이네 님 가시는 길 차가울까봐 겉옷 벗어 꽃길 위에 덮어 놓아도 야속한 눈은 자꾸만 날려 나보다 슬퍼하는 하늘 붙잡고 이제 그만 우시라 같이 울었네 그리운 님 다시 오실 길 그리운 님 다시 오실 길 붉은 꽃길로 단장하려네 꽃들의 노래소리 이어진 길로 가실 때처럼 환히 웃으며 오시라 산 마다 들 마다 마을마다 붉은 꽃 지천에 피워 두려네 님, 그리운 님 다시 오실 님 길 끝에서 날마다 기다리려네 2011-12-26 2014. 3. 19.
아버지 2 아버지 2 권말선 열 살 무렵 학교에서 돌아오니 퍽석 무너질 것 같던 초가지붕대신 매끈한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우리집, 튼튼한 벽돌들로 마당이 가득찬 것이 쪼꼬만 눈엔 큰아버지댁 기와집 부럽잖게 멋져보였던 기억이 아버지를 생각하면 빠지지 않고 먼저 떠오른다 고생 끝에 장만한 마당 넓은 집 비 들지 않는 지붕으로 고쳐 놓으신 그 마음은 얼마나 그득하셨을까 환갑 겨우 넘기시고 고난했던 삶 접어 떠나시던 날 비가 소롯 내렸었던가 안녕히 가시란 인사대신 속으로 속으로만 기도같은 노래를 불러드렸다 자식들 위해 내 한 몸 힘들어도 온 정성 다해 좋은 것으로 채우고픈 凡父든 國父든 아버지 마음은 똑같아 그래야 그 마음에 행복이 든단 걸 나이 들어가는 이제사 느끼게 된다 귀엽다 사랑스럽다 곰살스런 표현은 속으로만 챙기.. 2014. 3.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