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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권말선

[시] 오후의 놀이터

by 전선에서 2022. 3. 30.

오후의 놀이터

권말선


햇볕이 눈썹 끝에 매달린 오후
한 떼의 아이들이 놀이터를 휘젓고 논다

병아리 같은 녀석 몇이 땅을 판다
토끼 같은 녀석들이 모여앉아 꽁알꽁알 속삭인다
치타 같은 녀석들이 쌩 쌩 뛰다닌다
어린 양들이 천천히 낮은 언덕을 오르내리고
사슴들이 우르르 모여 뿔 자랑을 하고
오리랑 게사니 콩 닥 콩 닥 시소를 찧고
겅 중 겅 중 조심스레 기린이
살 곰 살 곰 쑥스럼 타는 고양이가
어미 옆에 매달린 어린 캥거루가
뱀 꼬리 같은 자전거 바퀴 둘이
무대에서 춤추는 어린 사자들이
느긋무심하게 가로지나는 타조들이
줄 위에 쪼르릇 나앉은 참새들이

늦은 오후의 놀이터
마실 나온 게으른 암사자 얼굴 위로 쏟아진
볕은 눈썹 끝에서 쩍쩍 달라붙고
아이들 짹짹뺙뺙꺅꺅 웃는 소리
안갈거야안갈거야 앙앙박박 우는 소리
막 피어난 벚꽃잎에 스치는 바람결 소리
소리들은 잘 익은 자장자장 자장가로 스민다

오후의 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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