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에 대한 찬양, 고무
권말선
‘마을리장연합 통일마련대회의’ 때문에
첫새벽 장에 가신 아버지를 기다리며
아까부터 눈 빠지게
실겅 위 꿀단지만 쳐다 보고 있어요.
“아버지가 오시면 그 때 같이 먹자”
어머니는 다짐을 하며 밭에 가셨어요.
얼마 전 꿀을 먹어 봤다던 옆집 영희는
“꿀이 엄청 달고 향기도 끝내줘!”
손뼉을 짝! 치며 꿀 젖은 눈을 빛냈지요.
아버지 회의가 빨리 끝나고
아버지 먼 길을 부지런히 걸어
아버지 성큼성큼 대문을 들어오시면
깡충깡충 뛰어 반기며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저 맛난 꿀을 먹어야지
꿀단지에 살짝 흘러내린 꿀을 보며
혼자 실실 웃어도 보고
꼴딱, 침도 삼키며
아버지 어머니 오시기를 기다렸어요.
추울 땐 호르륵 꿀차 마시고
출출할 땐 가래떡 콕 찍어먹고
심심할 땐 한 숟갈 푹 퍼 먹고
오메, 얼마나 달달하니 맛날까
꿀...
먹고 싶다
꿀...
향기도 좋다지?
꿀단지에
슬쩍 손가락 넣어볼까
아니아니, 아버지 어머니 오시면!
나는 저 꿀이 정말정말 좋아라!
아직 아버지도 아니 오시고
어머니도 아니 오시고
빨리 모두 모여
저 맛난 꿀을 먹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꿀꿀거리며
꿀단지 옆을 서성이는 나를
누군가 째려보는 듯 기분 나쁜 느낌,
귀한 꿀단지 몰래 훔쳐가려
제 맘대로 얼기설기 엮어 놓은
꿀단지보안법이란 것이 있다던데
나의 이 달달한 꿀사랑이 마뜩찮은 놈들이
꿀에 대한 찬양,고무라며
경찰 출동시키고
꿀단지 근처엔 얼씬도 말라고
몽둥이 흔들어가며 겁을 주는 건 아니겠지요?
우리 가족 모두 함께
따뜻한 아랫목에 둘러 앉아
다음엔 더 큰 꿀단지에
더 향기롭고 맛난 꿀 모으자는
아버지 어머니 얘기에 귀 쫑긋 세우고
맛난 꿀 곁들여진 밥 먹으며
행복하게 살고 싶을 뿐이라고요!
한여름 알뜰히 모아 둔 보물
우리집 향긋한 행복인 꿀단지를
탐내고 깨트리려 수작부리는
꿀단지보안법 나빠요, 너무 나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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