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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권말선

[시] 그 놈들, 이제 다 물러갔소?

by 전선에서 2018. 3. 18.

 

그 놈들, 이제 다 물러갔소?

- 충남아산 유해발굴현장, “그들은 악마였다”

 

         권말선

 

경찰 놈들이랑 향토방위대인가 하는

총 들고 인상 찌부린 몇 놈들이 우리를

일정때 금광이 있던 산자락으로 끌고 갈 때부터

어째 느낌이 쎄하드라고

뒤통수에 대고 누가 자꾸

'가지마라, 야야, 거 따라가지 마라!'

내 얼라 때 죽은 울 어메인가 싶기도 하고

울 할매가 울며 부르는 것 같아서 섬찟하드라고

그래도 설마허니 뭔 일이야 있겠나 싶었지

저 여남은 놈들이 얼추 봐도 백 명은 넘어 뵈는

이 사람들 한티 설마허니 심하게 해코질 하긋나

뭔 방공교육인가를 시킨다드만 그런거겄지

지 아무리 총을 들었기로 다 이래저래 안면도 있고

저 맨 앞에 가는 놈이사 친구놈 동생인디…

설마설마 했지 저 놈들도 다 사람들인디…

 

아이고, 아지매! 등에 업은 아 자꾸 울어싸서 어쩌요

아직 젖도 안 뗀 거 같은디 얼라 놀랐는갑소,

저그 영식이 안사람도 끌려와부렀네

쌍가락지 낀 손 부끄러하던 날이 엊그제 같은디,

손주가 인민군 따라간 뒤로 경찰이고 우익놈들이고

빨갱이라고 조리돌림하던 웃집 할배까지 끌고왔구먼

에이, 호로자슥들! 이 전쟁통에 뭐 얻어 먹을거 있다고

쪽바리 물러갈 때 지은 죄 들통날까 발발 떨던 놈들이

인쟈는 미국 놈들 등에 업고 총 들고 설쳐쌋는 꼴이라니

에잇, 퉤!

 

"타다다다 탕 탕...!"

고 쪼마낳고 딴딴한게 가슴팍에 사정없이 팍 박혀불더니

아이고야, 더럽게 아프네, 옴짝달싹 못 하겠네

구덩이로 몸이 펄썩 떨어지던 것까진

얼라들이 울고 어매들이 소리지르고

여기저기서 윽 윽 신음소리 터지던 거 까진

기억이 가물한데 이 매캐한 냄새는 또 뭐까

내 몸뚱이 우로 그 우로 또 그 우로 겹겹이

그 놈들이 울 동네 사람들 다 총질로 

모진 놈들, 기어이 싹 다 죽여부렀네

총질도 모자라 몸뚱이에 불까정 놨네

알아보도 못하게 흔적도 없어지게

싹 다 불질러부렀네

 

그 놈들이야 죽이면 끝인 줄 알았것지만

우린 죽어서도 죽은게 아니여

매일같이 총 맞아 죽는 꿈을 꾸고

총소리에 놀라 자지러진 애들을 달래고

불에 타 죽는 악몽에 시달리고

죽어서도 죽지 못하고 부들부들 치를 떨고 있잖여

행여 놈들이 들을세라 속엣말로 웅성웅성

"저 놈들 또 오면 인쟈 우리 한번에 달려듭시다

더는 죽이지 못하게 우리가 먼저 죽입시다

마을에 남은 사람들 한티 전갈을 해야 할낀데요

동네사람들, 더는 여기 산으로 올라오지 마소

양코배기 미국 놈들, 총 든 경찰 놈들

향토방위대, 서북청년단, 인간도 아닌 그 놈들

쳐다보지도 말고 말 붙이지도, 따라오지도 마소...

말이라도 해 줘야 할 낀데요."

 

갑작시리 볕이 환히 들고

풀내음 꽃내음이 막 번지는 대명천지 여기가 어덴가?

불에 타고 세월에 묻혀버린 우리를 어찌 찾아냈으까?

도망치지도 못하고 통곡도 못했지만

억울해서 차마 썩지도 못했던 우리 뼈무덤

쉬쉬하며 풍문으로만 돌던 이야기로

67년 만에 우리를 찾아냈다네

불에 탄 흔적도 보인다며,

쌍가락지도 찾았다며,

어린아이도 여럿이고 아녀자들도 많다며,

총알이 머리를 뚫고 갔다며...

산 사람들이 저리 많이 와서

죽은 우리를 찾아냈다고 햇빛아래 뉘여놓는데

그러면... 그 미국 놈들 이제 영 다 물러간게요?

완장차고 설치던 우익 놈들도 다 잡아들인게요?

 

그 놈들 따라가지 말라고 아가, 아가 울며 부르던

우리 어메, 할매 아직 구천을 떠돌며 서럽게 우는걸 보니

악마 같은 미국 놈들 우리 땅서 여적 설치는갑소?

총들고 히히덕 거리던 놈들도 아직 그대로인갑소?

그렇다면, 그렇다면 날 깨우지 마소

콩 볶듯 따다닥 울리던 총소리

살도 피도 눈물도

울음까지도 다 삼키던 화마

그 뒤에서 웃던 놈들 아직 살아있다면

피투성이 한 많은 이 땅에 얼굴을 처박고

우리는 이대로 더 울어야겠소

날 깨우지 마소

날 깨우지 마소

저 놈들 다 쳐 죽이기 전에는

제발 나를, 우리를 깨우지 마소!

 

 

 

http://www.vop.co.kr/A00001266561.html 

두세 살 아이와 엄마 유골까지....충남아산 유해발굴현장, “그들은 악마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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