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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권말선

[시] 우리가 우리에게

by 전선에서 2018. 3. 12.



우리가 우리에게


         권말선

 


하얀 장갑 끼고 점잖은 양복 입은

콧대높은 정원사가 ‘특혜’라는 푯말을

우리 앞마당에 세워 놓고

옮겨다 심은 대기업과 권력이란 이름의 

요망스런 수목들에게만

때를 따라 철을 따라

거름과 비료 넘치게 줘 가며 기르는 동안

싱그럽던 풀향기 이리저리 흩어지고

그늘 짙은 ‘복지의 사각지대’ 생기고 말았어

서민이라는 빈곤층이라는

있지도 않은 없지도 않은 존재로

월세 수도세 전기세 가스요금에 치여

최저생계비의 비 한 방울도

최저임금의 빛 한 줄기도 없이

비정규 일용직 알바 전전하며

냉동만두에 소주 의지삼아

겨우 숨만 헐떡였어, 우리는

그러다 병이라도 들면 다치기라도 하면

건강보험 산재보험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

호미자락에 뿌리까지 뒤집어진 잡초처럼

빚에 쫓겨 절벽으로 내몰렸어

노랗게 메말라갔어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마지막 남은 통장의 잔고를 털어

마지막 월세를 내는 것 뿐

마지막 힘을 다해 밥과 김치를 얻는 것 뿐

마지막 힘을 다해 죽어가는 것 뿐

신문 방송이 빈곤사 고독사라며

그럴싸한 이름 붙이기 바쁠 때

복지도 관심도 정도 사그라든

그늘진 사각지대 어디선가 또

우리 죽어가고 있지는 않을까

 

정원사에게서 단정한 양복을

대기업에게서 넘쳐나는 특혜를

제멋대로인 권력에게서 권력을

푸르른 작업복을 입은 우리가 

빼앗긴 것 몽땅 앗아 와

보란 듯 '공동체' 깃발을 꽂고

스스로 빛이 되고 비가 되고

밥이 되고 김치가 되어

더 이상 굶어 죽지 않게 

사랑을 정을

더 이상 고독하지 않게

따스한 손을

빈곤에 내몰리지 않게

보듬어 주는

이웃사촌이 되어야해

우리가 우리에게




원룸서 숨진 쌍둥이 형제 "한 달 되도록 아무도 몰랐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3/06/0200000000AKR20180306129800054.HTML?input=1179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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