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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과 전망

철조망 속의 탄저균 실험실을 찾아서

by 전선에서 2015. 6. 20.

특별한 산책-철조망 속의 탄저균 실험실을 찾아서

<시사꽁트>용산 미군기지에는 아름다운 공원이 있고 탄저균 실험실도 있다.


 

 


8시가 넘었는데도 어둠은 어디에서도 그 기미를 보여주지 않았다. 초여름은 원래가 그랬다. 퇴근 이후 발걸음을 빨리했을 일행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악수 혹은 하이파이브로 인사를 하고는 숲속으로 들어섰다. 일행은 그렇게 우리들이 되었다.

 

공원은 푸르렀다. 공기의 촉감이 달랐다. 서울의 복판 같지가 않았다. 수도 한복판에 그렇듯 녹지대가 형성되어있다는 것에 다들 신기해 했다.

공원 옆에는 군부대가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군부대가 보인 것은 아니었다. 철조망으로 다가온 것이 군부대였던 것이다. 공원과 군부대를 철조망은 그렇듯 잘 경계지어주고 있었다.


아름다운 공원


"용산, 오산, 군산 기지에 쥬피터 관련 실험실 있는 것 맞다"

19일 국회 외교안보통일 대정부질의 답변에서 한민구 국방장관이 한 말이었다. 용산 미군기지에 탄저균 실험실이 있다는 사실은 그렇게 확인되었다.

쥬피터프로그램(JUPITR, 연합 주한미군 포털 및 통합위협인식)‘은 미국이 주한미군 기지에서 생물학전 등을 위해 운영하고 있는 연구소 프로그램이다.

 

쥬피터 프로그램의 실체가 처음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은 지난 해 12월이었다.

 

주피터 프로그램을 이끄는 사람인 미국 육군 ‘에지우드 화학 생물학 센터’(ECBC)의 생물과학 부문 책임자로 있는 피터 이매뉴얼 박사가 <화학·생물·방사능·핵 포털>(CBRNe Portal)이란 미국 군사매체와 인터뷰를 한 것이다.

 

그때 많은 사람들은 한국에 탄저균 실험실이 있다는 사실 만큼이나 경악한 것이 또 하나 있었다.

이메뉴얼 박사가 한국에서 설계된 틀은 미군의 아프리카·유럽·태평양사령부에 적용될 수 있다고 말한 것이 그것이었다.

 

한국은 생화학전 실험장

전문가들이 일치되게 했던 말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의식은 이내 잦아들었다.

 

언론에서 다루지 않아서 그랬겠지만 마치 남의 일 같기만 했던 탄저균이 실질적인 공포로 다가든 것은 미국이 최근 평택에 있는 오산미공군기지에 살아있는 탄저균을 보낸 사건이 일어나서였다.

주한미군은 이 사건과 관련하여 지난 달 28일과 29일 보도자료를 내 실수로 탄저균이 배송되었다는 것 그리고 연구원 등 22명에게 감염 증상은 없었다는 것 등을 발표했다.

 

그 뒤 언론들에서는 용산 미군기지에도 탄저균 등과 관련되는 실험실이 있다는 것을 보도해주었다. 65의무연대가 언급되었고 그 안에 있는 121후송병원이 특정되었다.

 

그 때문이었다. 우리들이 그날 저녁에 모여 용산에 있는 공원을 산책하기로 하고 술 한잔 하자고 했던 것은 <121Hospital>을 보기 위해서였다.



 


개새끼들

 

공원에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간혹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몇몇만이 간혹 눈에 띄곤했다. 고급주택이어서 사람들이 밖으로 나올 필요가 없는 것이라는 설명을 누군가가 했다.

말 대로 산책로 곳곳에 크고 넓고 높은 주택단지들이 있었다. 1층에 넓은 통유리로 골프연습장을 드러내보여주는 건물도 있었다.

누군가 탄성을 질렀다. 10평짜리 임대아파트 전세를 살아 집세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큰소리를 치곤했던 녀석이었다. 수십억짜리는 될 것이라는 말에 잔뜩 힘이 실려 있었다.

 

철조망을 따라 걸으며 우리들은 누구할 것 없이 역사를 떠올렸을 것이다.

 

이번에 니덤 보고서가 공개되었쟎아요미국이 한국전쟁 당시 생물무기전을 벌였다는 것을 담고 있는 국제보고서 얘기를 꺼낸 것은 은하였다.

걷고 있는 은하의 어깨 옆으로 견고한 철조망이 쉬지 않고 따라오고 있었다.

 

개새끼들

목줄에 매었음에도 주인한테 벗어나려는 듯 요란을 떠는 강아지를 보며 수건이가 욕을 뱉어냈다.

강아지에 대한 욕은 아니었다. 욕을 먹기에 강아지는 너무 이쁘고 귀여웠다.

 

맞아, 미국 이새끼들이 생체실험했던 731부대장까지도 한국전에 끌어들였쟎아

나윤이 바로 거들고 나섰다.





미국이 한국전에서 세균전을 했고 또 일본의 731부대의 이른바 노하우를 활용했다는 것은 북한이나 중국이 하는 주장이었다. 국제전문가들도 끊임없이 주장하는 내용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미국은 지금까지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원래, 그랬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이 미국이 세균전을 했다며 권위있는 국제전문가들을 불러들여 조사를 진행하고 여러 종류의 과학적 증거를 제시했지만 미국은 ‘공산주의자들의 선동이라며 일축하고 말았었다.

 

미국의 거짓말은 언제라도 역사적이었다.

 

많은 전문가들은  68 ‘스컬 밸리 사건과 관련해서도 미국의 거짓말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미국 유타주에 ‘그레이트 솔트레이크 사막이 있다. 그곳에 ‘스컬 밸리라 불리는 산등성이가 있으며 그곳은 양떼들이 길러지는 대형 목장이었다.

 

1968년 봄, 그곳에서 6000~6400마리의 양떼가 떼죽음을 당하는 원인모를 사건이 터진다.

주변 초본류와 죽은 양의 몸에서 신경가스(VX)의 흔적이 검출됐다당시 지역언론 그리고 <사이언스>는 재난이 벌어지기 하루 전날 미 육군이 신경가스(VX)를 공중에서 살포하는 실험을 벌였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스컬 밸리에서 40 떨어진 곳에 ‘더그웨이 육군 생화학 실험기지가 있었다. 그렇지만 당시 미 육군은 생물무기 실험에 대해 부인했다그리고 그 이후 침묵으로 일관했다.

지금까지도 미국은 68 ‘스컬 밸리 사건더그웨이 육군 생화학 실험기지에서의 실험설과의 관계문제를 부인하고 있다.

 

탄저균

 

은하 니, 우리나라에서도 탄저병이 돈 거 아나?”

그랬어?”

“2005년 경남 창녕에서 주민이 두 명이나 죽었어

창녕! 그기 내고향인데

나윤이 꼼꼼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탄저병에 걸려 죽은 쇠고기를 먹은 주민들 5명 중에서 이른바 ‘장 탄저병을 숨진 사고였다는 것이었다. 호흡기로 감염되는 것인 폐 탄저병과 구분해서 장 탄저병이라고 나윤이 덧붙혔다.

에휴, 헛똑똑이같으니라구. 지 고향에서 일어난 일도 모르다니

나윤이 면박을 주었다.

은하는 공세를 막기 위해서란 듯 나윤을 향해 큰 소리로 말을 했다.

그럼 니는 서울 삼각지 역 흰색가루 사건 아나?”

그럼 알지

다들 웃었다.

 

2001 1018일 서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에서 발견된 흰색가루 사건은 해프닝으로 밝혀졌지만 모를 사람들이 없었다. 당시 나라가 발칵 뒤집혔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그 몇 일 앞서서 미국에 탄저균 우편물 공격 사건이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기 때문이었다.

 

그해 105일 타블로이드지 <>의 직원이 탄저병 양성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사건은 시작되었다. 탄저균 포자가 든 여러 통의 편지가 에이비시(ABC), 엔비시(NBC) 등 언론사와 상원의원 사무실에 배달된 것이 확인되었다.

17명이 감염됐고 그 중 5명이 숨졌다탄저균이 포자 상태로 대기를 날아다니다가 호흡기를 통해 몸 안으로 들어간 것이었다호흡 곤란을 겪다가 죽었다. ‘폐 탄저병이었다.

 

용의자는 메릴랜드주의 미 육군기지 포트디트릭에서 일하는 연구원 브루스 아이빈스였다. 이 연구소는 더그웨이와 쌍벽을 이루는 미국의 대표적인 생화학전 기지다.

그 이후 연방수사국(FBI)이 수사망을 좁혀오자 아이빈스는 자살을 했다. 그 자살에 많은 의혹이 따랐지만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용산미군기지 65의무연대,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원투애니원후송병원>


121후송병원은 그리 멀지않은 곳에 있었다. 공원 중간쯤에서 우리들을 맞이해주었다.

그렇지만 121후송병원은 자신의 모습을 우리들에게 쉽게 드러내주지 않았다. 호락호락하지도 않았다. 철조망으로는 걸음을 멈추게 했고 우거진 나무들을 동원해서는 시야를 가로막게 하고 있었다.


“EMERGENCY”

마침내 121후송병원은 자신의 실체를 그렇게 우리들에게 드러내주었다.

그것으로 다 였다. 우리들은 그저 산책을 했던 것이다.

 

우리들의 특별한 산책은 조금 더 이어졌다. 13번게이트에 이르러 우리는 미군부대의 초입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민간인이 미군부대로 들어갈 때 이용할 수 있는 출입구 중에 하나였다.

 

몇 발자국 걷자 음료수 진열대가 나왔다. 그리 짧은 산책이 아닌 터라 목이 말랐다. 저녁을 먹지 않아 미국 초컬릿도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그 누구도 좌판기에 전시되어 있는 먹거리에 시선을 주지 않았다. 약속을 한듯했다. 겁이 났는지도 몰랐다. 캔으로 비닐로 완벽하게 밀봉되어있는 음료수나 초컬릿이 과학적으로야 탄저균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겠지만 심리는 그럴 수도 있었다.

 

수건이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으려 했다. 그렇지만 몸집이 큰 군인이 나와 제지를 했다. 군인이어서였을까. 동작이 빨랐다.

수건은 핸드폰을 내리며 야경 빌딩이 멋있지 않으세요. 야경...”이라고 얼버무렸다.

어느새 사위는 어둠이 많이도 깔려 있었다.

우리들의 산책을 그렇게 끝이 났다






우리들의 산책을 가로막은 것은 어둠이었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군인이었던 것이었을까

그러나 우리모두는 잘 알고 있었다. 우리들의 특별한 산책을 가장 결정적으로 막아나선 것은 우리들을 끝끝내 따라다니고 있던 철조망이었다.

 

어둠과 덩치가 큰 군인 그리고 견고한 철조망

, 우리한국을 둘러싸거나 내리누르고 있는 매우 구체적인 역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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