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만불시대 기반 구축’과 ‘통일기반 구축’
<논평>현실과 동떨어져 보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거창한 신년사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을미년 신년사를 발표했다. 새해를 하루 앞둔 31일이었다.
경제 활력 회복과 통일기반 구축이 주요내용이었다. 짧았다. 박대통령은 그 간단한 신년사에서 ‘한강의 기적’을 언급했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개념이 지난 유신시대 때 대표적인 정치언술로 사용되었다는 기억을 많은 사람들이 떠올렸다. 박대통령은 아울러 짧은 그 신년사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언급했다.
박 대통령이 먼저 강조한 것은 경제 활력이었다.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라고 했다.
“경제회복의 불꽃을 크게 살려내고, 창의와 혁신에 기반을 둔 경제로 체질을 바꿔가면서 국민소득 4만불 시대를 여는 기반을 다져가겠다”고 한 것이다.
그동안 우리정부는 창조경제라는 개념을 자주 사용하고는 했다. 그런 점에서 박대통령이 신년사에서 ‘4만불 시대’라는 개념을 쓰고 있다는 것은 ‘창조경제’라는 정치적 언술에 ‘4만불 시대’가 보태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창조경제’와 ‘4만불 시대’. 그럴 듯하다.
그렇지만 국민들의 체감을 다른 것으로 확인된다. 31일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가 전국 휴대폰 유권자 1천명을 상대로 30일 하루 동안 임의전화걸기 방식으로 여론조사를 했다.
“52.1%”
'새해 살림살이가 더 나빠질 것'이라고 답한 응답자의 비율이었다. 과반을 넘긴 수치이다. '더 좋아질 것'이라는 답은 24.7% 밖에 되지 않았다.
‘창조경제’도 ‘4만불 시대’의 징후도 여기에는 투사되어 있지 않다.
지난 해와 비교해보면 이는 더욱 또렷해진다. '더 좋아질 것'이라는 것은 지난해에는 35.3%였다. 그에 비하면 올해는 10.6%p나 급감한 것이었다. 그리고 '더 나빠질 것'이라는 비관론은 43.9%에서 52.1%로 8.2%p 급증한 것이었다.
박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중요하게 밝힌 또 하나의 것은 남북관계 문제였다.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단절과 갈등의 분단 70년을 마감하고 신뢰와 변화로 북한을 이끌어내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통일기반을 구축하고 통일의 길을 열어갈 것”이라고 했다.
이 짧은 문장에도 남북관계 발전의 목표와 방도 그리고 그 기초까지도 다 언급되어있다.
이 문장에 따르면 통일기반을 구축하는 것이 우리정부가 내년 남북관계에서 성취해야할 목표이다. 방법은 북한을 신뢰와 변화로 이끌어내는 것으로 정리되어있다. 이는 북한에 대해 신뢰하지도 변화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그 전제로 깔고 있음을 보여준다. 개혁개방이라는 개념이 갖고 있는 내용이 바로 이것이다.
박 대통령은 통일기반 구축을 튼튼한 안보에 기초하게 될 것임도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의 안보는 현실정치적으로 한미동맹과 뗄레야 뗄 수 없는 문제이다. 그 자체라고 해도 과하지가 않다.
남북관계에 대한 박대통령의 구상은 따라서 한미동맹에 기초하여 북한을 개방시켜서는 통일기반을 구축해나간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짧은 신년사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언급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읽히는 대목이다.
박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남북관계발전과 관련된 사항을 언급한 것은 통일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인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29일 북한 김양건 통일전선부 부장에게 1월 중 서울이나 평양에서 만나자고 제의를 한 것과 직접 연동된다.
현 시기 남북관계가 대북 전단 살포 문제나 대북인권공세 등으로 얼어붙어있는 상황에서 통준위의 대화 제의는 남측의 ‘대화 의지’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렇지만 내용을 제대로 천착해들어가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통준위가 이날 제시한 이른바 평화통일 6대추진 방안을 볼 필요가 있다.
△언어.민족유산 보존사업, 스포츠 교류 등 민간교류 확대(광복 70주년 기념 남북축구대회, 평화문화예술제, 세계평화회 개최)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적 문제 근원적 해결 △DMZ 세계생태평화공원 조성 착수 △보건.영양개선사업 및 생활.인프라 개선 등 개발협력 추진, 산림 녹화, 생태, 환경 보전, 수자원 공동 이용 등 융합적 사업 확대 △통일시대 대비 법률과 제반제도 준비 △나진-하산 사업 같은 국제사회가 공유하는 경제협력사업의 추진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북한이 관심사로 표명해온 ‘5.24 조치’ 해제나 금강산 관광 재개, 남북경협 재개 등이 없다. 우리정부의 대북대화제의의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견해에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입을 모으고 있는 이유이다. 통일뉴스는 29일자 기사에서 “남측, 그것도 박근혜 정부의 관심사안만 잔뜩 늘어놓은 셈”이라는 지적을 내놓았다.
우리정부가 자주 보여왔던 대북대화의 자기중심성이라고 할 만했다. 대화의 전제인 북한에 대한 인정도 북한과 공존하겠다는 문제의식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설령, 대북대화가 실현된다하더라도 그 성과가 의심될만한 반북적인 대화 제안으로 봐도 무방해 보였다.
"괴뢰들이 쩍하면 통일대박을 부르짖고 통일준비위원회를 내온다, 통일헌장과 통일헌법을 만든다 하고 분주탕을 피웠다"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가 30일자 논평을 통해 한 말이다. 대화 제의에 답을 해오기는커녕 대화제안의 주체인 통준위에 대해 강력한 반발을 표시한 것이다. "북남관계를 파국 상태로 몰아넣은 장본인은 다름 아닌 남조선 괴뢰패당"이라며 "남조선 당국은 시대착오적인 대결정책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였다.
대통령의 신년사에는 단순히 보면 ‘4만불시대 기반 구축’과 ‘통일기반 구축’이라는 장미빛 미래가 언급되어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르다. 현실은 박 대통령의 신년사의 그 거창함이 현실과는 얼마나 동떨어졌는가를 너무나도 쉽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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