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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권말선/그이의 환한 미소(두번째 시집)

가을산책

by 전선에서 2014.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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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책


            권말선



내가 거리로 나선 게 소문났는지

가을이 성큼성큼 따라 나온다

 

바닥을 뒹구는 잎 하나

내리쬐는 햇살 받더니

하품 한 자락 길게 하고

건방지게 돌아눕는다

바스락,

뒤척이는 저 게으름

 

푸른 하늘 베고 누운

앙상한 가지들

하늘빛에 흠뻑 물젖었고

푸르름 한 방울 금방이라도 뚝!

땅을 베고 누운 낙엽 위로

떨어질 것 같다

 

고요한 듯 시끌한 가을 오후

은행잎은 나 몰래

어제보다 좀 더 노오래지고

아무도 앉지 않는 빈 의자

햇살과 바람만 분주히

몰려왔다 스쳐가곤 한다

 

앙탈 부려봤자 소용없대도

한 번 뻗대보자는 심산인게지

철쭉은 기어이 빰빠밤 꽃나팔 불며
하나 둘 셋 넷 다섯... 
봉오리들 깨우느라 용을 써 댄다

10월도 하순인데, 저러다 서리맞을라

 

그만 집으로 가려는데 아쉬운 얼굴의

달님이 쪼르르 배웅 나온다

 

그 아이 살폿 감은 눈썹마냥

어제는 그렇게 가늘더니만

오늘은 뭘 먹고 불었나

둥실해진 내 눈두덩 같은 너,

까만 하늘에 걸친 나뭇잎 곁에서

저는 달'잎'이라며 깔깔 웃어제낀다

 

푸른 향 바스락대던 가을아

오늘 하루 잘 놀았구나

갈꽃은 더 곱게 피우고 

갈잎은 떨구게 되겠지

잔가지 잘 여미려무나

밤바람이 꽤 차다


짓궂은 바람이 와삭!

나뭇잎 한 장 떼먹고

달님 궁둥이 한 번

걷어차고 달아나는 걸

못 본 척 옷깃 여미고

집으로 총총 돌아왔다


또 보자, 모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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