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에서
한성
글자는 오래도록 있었다.
사람을 한 시간 동안 가두는 우리인데도
담벼락은
어느 순간 누구에게 그리도 크고 넉넉한 낙서판이 되어 준 것이었을까
희미했다.
금세 눈에 띌만한 것도 아니었다.
바닥에서 주워 든 돌멩이로
가슴깊이 쌓여있는 그리움 찍어 내
한 땀 한 땀 썼을 것이었다.
“그이의 환한 미소”
‘볼라벤’은 전쟁처럼 왔다.
많은 것들을 허물어뜨렸고 거리의 몇 토막들과 집채의 일부도 그 뒤를 따랐다.
포성이 멎은 듯이 맑아진 날 오전
철문을 열고 운동장으로 들어섰을 때
그 글자는 그대로 있었다.
전사들에게 그리워할 수 있는 환한 미소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환한 미소는 누구의 것인가
잘못한 것이 없지 않나요. 잘못된 것은 국가보안법이지 않나요.
‘자주민보’에 실은 85편의 기사를 국가보안법으로 단죄해버리는 것에 대해 그렇게 말했지만
굴비처럼 묶여
돌아오는 길
그리움은 기어코 목젖까지 타고 올랐다.
그래요. 북은 국제법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지만 대한민국의 국가보안법상으로는 반국가단체지요.
그래요. 갇힌 것은 친북해서 그런 것이 아니지요.
갇힌 것은 반북하지 않아서였다.
글이 행여,
잘못된 것들을 허물어 내거나 날려버릴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리하여 사람들이 글을 붓대포라고 불러줄 수 있다면
붓대포가
거치되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
또 다시 태풍이 지나갔지만
9시 20분부터 10시 20분까지 좁은 운동장의 담벼락에
그 글자는 또 그대로 있었다.
‘그이의 환한 미소’
(청계산에서 2012.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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