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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권말선456

[시] 쇠말뚝 쇠말뚝권말선조선에서 더는 인재가 나지 말라고땅은 병들고 넋은 사라지라고반도 땅 혈맥마다 뼈마디마다호랑 정기 끊으려 박아 넣은일제 쇠말뚝뿌리 한 줄 못 가진 저 흉물다 뽑아 내던졌더니 패망 후에도 침략 야욕 못 버리고뿌리도 내리고 줄기도 뻗으라고이젠 아예 다른 것을 심었구나인간 쇠말뚝대학교수로, 언론인으로종교인으로, 국회의원으로여기저기 촘촘히도 박아두었구나장관, 정부 요직, 대통령까지도!쇠말뚝 뽑히지 말라고 유황, 시멘트 들이부었지인간 쇠말뚝엔 제국의 돈과 권력 쏟아부었겠지그저 부리기 좋은 종놈 신세인 줄 모르고민족을 배반한 쓰레기 된 줄 모르고독도도 역사도 주권도 민족 자존심도제국의 품에 다 갖다 바치고 있구나그러나 우리는 침략에 순응하지 않았고쇠말뚝에 항일의 혼 다치지도 않았다오히려 더 강해졌고 더 영.. 2024. 9. 1.
[시] 반역의 무리여 눈을 감아라 반역의 무리여 눈을 감아라 권말선 “독립군들을 모두 죽이고 불태우고 빼앗자!”며미쳐 날뛰던 일본 앞잡이 간도특설대가 있었지“일본의 식민지배가 영원할 줄 알았다.”던기회주의에 절은 반민족의 혓바닥도 있었지“아가야, 너는 아세아의 아들, 대왕의 용사”라며파리한 죽음 속으로 등 떠밀던 인면수심도 있었지세월 속에 묻힌 줄 알았으나부끄러움 뒤에 숨은 줄 알았으나생각해 보니 저들은 단 한 번도반성한 적 없었지 부끄럼도 몰랐지단 한 놈도 갇힌 적도 빼앗긴 적도 없었지어쩌면 우리가 방심했을 때부터였을까그래서 어쩌면 우리를 만만하게 보았을까지금 또다시 제국의 충실한 앞잡이로 살아난 것은독립기념관에 버젓이 나타나 독립에 대못을 박고사도광산에 강제로 끌려간 아비 영혼에 못질하고성노예로 끌려갔던 어린 가슴에 못질하고독도에 깃.. 2024. 8. 12.
[시] 허공을 딛고 서다 허공을 딛고 서다권말선땅을 잃은 뿌리를 본 적 있는가뿌리의 절반은 땅속에나머지 절반은 허공에맨발 드러낸 채 당황하던 뿌리는어쩔 줄 몰라하다가저와는 반대방향으로 뻗은나뭇가지 올려보며 생각했을 게다맨살 다 드러내고도 두려움 없이 당당히철 따라 잎을 틔우고 꽃과 열매를 맺으려허공을 더듬으며 뻗어 나는 가지그를 보고 뿌리도 결심했을 게다뒹구는 바위를 끌어안기로그렇게라도 무너지지 않아야저 당당한 가지를 받쳐주어야앞으로도 맘껏 허, 공을 수놓을 테니땅속에 안전히 뿌리내렸더라면목도하지 못했을 찬연함이여디딜 땅이 모자라는 두려움 보다붙잡아 버텨주는 절반의 용기와바라보며 끌어안고 의지하며함께 꿈꾸는 동지가 있어다시 우뚝 서는 나무, 나무여 2024. 8. 11.
[시] 까치와 뱀과 밤나무는 몰랐던 이야기 까치와 뱀과 밤나무는 몰랐던 이야기 권말선우리가 마주 보고 앉아 웃던 날에 그녀는 창밖만 보면 까치를 찾았고 까치처럼 볼록 퉁기는 목소리로 어, 까치가 새로 집 짓는다 어, 오늘은 까치가 세 마리네 저 까치 두 마리 서로 싸운다 고 조잘댔지, 까치 까치 까치 그랬지 우리가 마주 앉아서도 웃지 못할 때 나는 창밖을 무심코 바라보다 어제 밤비에 논과 논 사이 도랑물 콸콸 불어난 걸 새삼 놀라워하며 저 물에 뱀 몇 마리 떠내려가겠네 며칠 새 도랑 다시 홀쭉해졌을 땐 뱀 몇 마리 젖은 풀숲 슥슥 헤치겠네 뱀 이야기 속으로만 뱀 뱀 거렸지 둘이 철부지처럼 좋아라 웃던 날에 창밖은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났고 놓친 접시 조각에 베인 듯 아플 땐 봄 지나 또 여름이었지 남이야 상처로 쓰리건 말건 까치는 뱀은 풀꽃, 밤나.. 2024. 7. 31.
[시] 백정 백정권말선여덟 시간 내내 고기를 썬다 산더미처럼 쌓인 고기 뭉치 지방은 적당히 발라내고 살코기 붉음이 돋보이도록 자른다 썬다 휘두른다제법 능숙해지는 칼질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칼과 손은 이미 하나다 칼날 둔해지면 야스리 움켜잡고 날을 간다, 앞뒤로 슥 삭 슥 삭 살점마다 허옇게 들러붙은 기름덩이갈 끝 얹기만 해도 단박에 떨어지게살코기 콱 물고 버틴 뼈다구살짝 힘만 주어도 금세 발라내게바짝 간다, 세운다 칼날, 휘두를 준비가 됐다 어쩌면 전생에 백정이었을까 등판 넓고 피부 거무스름한 사내 남이 정한 신분쯤은 무시하고 제가 닦은 눈빛만은 쨍한 그런 탐관오리 수탈도 양반네 멸시도호시탐탐 집적대던 왜놈도 양놈도움켜쥔 칼 잘 세워진 날로 죄 발라내던 솜씨 좋은 그런 백정이면서 의적 때론 의병이었을까 긴 세월 슬었.. 2024. 7. 13.
[시] 눈,사람 눈,사람권말선본디 나의 온 곳은  저 먼 하늘뿌리 당신도 나도 시나브로 잊고 살았던 아득한  인연의 고향 그 어디쯤 지상 한 점에 발 딛고 고개 젖혀 막연히 올려다보던 당신의 얼굴 발견하고 마냥 설레며 당신 발아래 한 점으로 무사히 내려앉던 순간이여 커다란 손 시리고 아리도록 정성스레 이리저리 간지럽히며 당신보다 조금 작은 나를 마침내 일으켜 세웠을 때, 우리 두 사람 마주 보며 고요히 웃었지, 그랬지 허나 우리들 사랑의 온도 따라 시절 무심히 녹아내리고 이별하는 연인들 다 그러하듯 당신의 안녕, 안녕만을... 본디 내 머물렀던 곳 저 하늘과 잇닿은 땅속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 머물 당신 기억 속으로 먼 먼 후일 금세 다시 알아볼 당신과 나 눈맞춤 그리오며 기꺼이 기꺼이 안녀...ㅇ 2024. 7. 1.
[시] 골담초 골담초권말선새삼 이름을 묻지 마오 버선꽃이라 멋대로 불렀으면 됐지 이제와 굳이 꽃들이 어우러진 마당 지나 앞집 담벼락 그늘 아래 외따로 떨어져 피고 지고 피고 지느라 외로움은 가시로 돋았소 그리움이 갈증으로 덮친 날엔 이끼 무성한 수챗물 퍼마시다 목구멍에 걸린 실지렁이 난동에 꽃잎 끝까지 고열을 앓았지만 그래도 그 시절이 좋았소 마당을 오가는 이들 중 더러는 다가와 웃어 주기도 했으니 이제는 인적 다 끊어져 골목엔 흙먼지만 뒹굴고 수챗고랑 이끼도 가루졌는데 다시 무엇으로 채우리오 이 기갈, 어지럼 추억으로라도 묻지 마오 아침저녁 정히 부르지 못할 이름이면 이제사 굳이 2024. 6. 9.
[시] 의자 의자권말선왔나 마이 늦었네 밥은 먹었나 힘들었재 맨날 서서 일하이 얼마나 다리가 아푸겠노 퍼뜩 여 좀 앉아 쉬라 아이고, 야야 몸이 천근 같을 낀데 일 좀 덜하마 안 되나 다 잘할라꼬 백지로 용 안 써도 된다 힘들면 다음에 해도 되고 천처이 해도 마 괘안타 니 몸이 젤 중하다카이 와, 하마 일랄라꼬 앉은 짐에 좀 더 쉬지 야야…, 니가 고생이 많다 밥 꼭 챙겨 먹음서 하그라, 에이 지난해 가을 낯설은 먼바다에 뿌려드리고 난 뒤 무시로 허전하였는데 어느 날부턴가 밤늦어 돌아와 등짐 벗고빈 의자에 앉으면곁에 계시던 그때처럼 말 걸어주시는낯익은 어머니 목소리 2024. 5. 6.
[시] 목련 전설 목련 전설 권말선 만세의 그날 아침 삼거리는 어느새 흰옷 입은 사람들 상기된 목소리로 왁자하고 마당을 나서다 말고  가야 한다, 너희를 위해서도 꼭…  뒤돌아보며 입술 깨무셨지 버선목마저 새하얗던 어머니는 만세의 그날 이후 시내까지 내달렸던 사람들 사방에서 날뛰는 제국의 총탄에 더러 숨고 더러는 후륵 쓰러질 때 지척에 두고 마을 초입에서 그만 다리만 건너면 바로 삼거리인데 그만 어머니도 만세의 그날 지나 먼 먼 날 잊음을 잊은 이들은 하나 둘 풀 꽃 나무로 화하시어 저기 다리 밖 마을 초입엔 찔레 조팝 망초 흰옷 입은 그 님들이 여적지 만세만세 팔 흔드시고 학교와 정류장 사이 좁은 길가엔 들고나는 버스 손님 유심히 살피며 목련 셋이 나란히 마중 나와 서 있지 해지기 전 오리라 하셨던 어머니니 만세가 온 .. 2024. 4.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