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저고리 남색치마
권말선
몇 해 전만 해도
초롱한 눈망울에
볼 빨간 여학생
그 보다 더 어릴 땐
“<조선학교> 차별 말라!”
거리에서 시위하는 어머니
치마자락에 매달리던
여리고 작은 소녀였겠지만
스물다섯 청초한 지금은
어엿한 <조선학교> 선생님
분홍저고리 남색치마
매무새 다듬는 그 손길
꼭 다문 붉은 입술은
<조선학교> 지키리란 앙다짐
생각해보니 그 모습
누군가와 참 많이 닮았어라
무심히 지나치는 일본인들에게
“<조선학교> 고교무상화 적용”
전단 돌리는 중년 여성과
해방의 날 <국어강습소> 만들자고
희망에 겨워 잠도 잊은 채
발품 뛰던 맨발의 할머니와
새 한 마리 어깨에 얹고
비바람치는 거리로 나선
소녀상 할머니 모습과도
닮았어라, 꼭 닮았어라
일본순사 총칼 앞에서도
“독립만세” 외쳤었던
머리 땋은 여학생과
항일의 불꽃 튀던 전장
백두산 솔밭 칡뿌리 캐며
등사기 돌리던 꽃분이와
총 잡고 군복 만들던
진달래 여장군과도
닮았어라, 꼭 닮았어라
분홍저고리 남색치마
차분하고 다정한 음성
스물다섯살 선생님에게
많은 얼굴이 떠오름은
당당히 살아가라 일컫는
그이들 생이 주는 당부
삶으로 전하는 가르침
어머니에게 물려받아
제자에게 돌려 줄
조선의 말글 조선의 얼은
선생님 걸음을 감싸는
분홍저고리 올올마다
남색치마 골골마다
고고히 살아 펄럭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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