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고추 한 봉다리
권말선
안동풋고추
한 봉다리 얻어 집으로 가는 길
가방 열 때마다 풀 냄새가, 고춧잎 냄새가
짭쪼롬한 쌈장 찍어 와삭! 깨문 듯 혀는 벌써 알큰함에 긴장하고
된장찌개엔 역시나 쫑쫑 썰은 맵싸한 풋고추가 제격이지
한 입 깨물면 입 안 가득 국물 흥건한 스읍 고추장아찌
가방 열 때마다 알싸한 내음 훅 훅 풍겨오고
마음은 왜 그리도 흐뭇한가
풋고추 한 봉다리
언제였더라
끝도 없이 넓었던 친구네 고추밭
비닐푸대 질질 끌며
고추고랑에 허리 꾸부리고
붉은 붉은 붉은 고추 똑 똑 따다
마당에 산처럼 쌓았었지, 어린 날
그 고춧가루
어떤 반찬에 어느 집 김장에
버무려졌을까, 지금은 다 사라진
언제간 마당가에
딸기밭을 만들고
꽃밭을 만들고
감나무를 심고
감나무에 오르고
고추도 잔뜩 심어야지
그리운 고향
돌아가지 못할 것에 대한
눅눅한 그리움
훅 훅 안겨온다
풋고추 한 봉다리
'시::권말선 > 그이의 환한 미소(두번째 시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 딸아이 입원한 날 (0) | 2016.12.23 |
---|---|
[시] 敵, 族 (0) | 2016.12.18 |
[시] 백남기 농민을 기리며 (0) | 2016.11.03 |
[시] 따뜻한 편지 (0) | 2016.10.10 |
[시] 마귀할멈 (1) | 2016.10.10 |
[시] 박근혜 골프장 (0) | 2016.09.29 |
[시] 서울에서 보성까지 317일 (0) | 2016.09.26 |
[시] 꽃밭과 4대강 (0) | 2016.09.18 |
[시] 2016 추석 소망 (0) | 2016.09.15 |
[시] 쌀값보장, 박근혜 퇴진 (0) | 2016.09.1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