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민주 통일
<분석과전망> 1-투쟁하는 대중들이 새롭게 재정립한 한국사회의 진보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진보라는 말을 입에 잘 올리지 않습니다. 당연하게도 보수라는 말도 더불어 잘 쓰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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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진보는 처음에는 독재 등에 대응하는 민주를 기본으로 개혁이나 평화 등을 일컬었다. 시기상으로 보면 한국전쟁 이후부터였다.
진보의 그러한 일반적 개념은 그러나 6월항쟁에서부터 그 이후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시기에 이르는 대중투쟁 과정을 통해 새롭게 정립되는 과정을 거친다.
6월항쟁은 한국사회 발전에서 제기되는 요구 중에 하나인 민주주의를 쟁취해낸 것이었다.
6월항쟁이 쟁취한 민주주의는 그러나 완성태가 아니었다. 대통령 직선제 그리고 이후 지방자치제 도입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절차적 민주주의였던 것이다.
완성의 길로 나아가야 했던 그 민주주의는 그러나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에 이르러 본질적인 문제와 한계를 드러낸다.
김대중 정부는 구제금융에 곧바로 발목이 잡혔다. 온 나라가 위기에 빠졌다.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했고 길거리에는 수만의 실업자가 넘쳤으며 지표상에서 중산층은 한없이 얇아지고 쪼그라들었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서는 쌀 개방이 이루어져 농민들이 도탄에 빠졌으며 심지어 이라크 파병까지도 해 시민사회진영을 경악시켰다.
구제금융과 쌀 개방 그리고 이라크 파병은 다들, 한국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과 관련시켜야만 제대로 설명될 수 있는 한국사회의 근본문제들이었다.
구제금융은 경제적으로는 미국의 신자유주의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강제되는 과정이었다. 정치적으로는 발전하는 노동운동 등 대중운동을 억압하여 오도하려는 분단지배체계의 한 작동형태이기도 했다.
쌀 개방 역시도 미국의 압력이었으며 이라크 파병 또한 미국의 직접적 요구였다.
구제금융이 내려먹여지고 쌀 개방 압력이 관철된 데 이어 우리나라의 청년들이 총을 들고 중동으로 가 전장에 뛰어드는 것 등을 지켜보면서 사람들은 ‘한국사회의 진정한 진보는 무엇인가’라는 준엄한 물음에 맞닥뜨려야했다.
답은 투쟁하는 대중들이 내놓았다.
6월항쟁으로 형식적 민주주의이나마 쟁취했지만 그 조차도 미국의 개입과 간섭 아래서는 발전될 수도 완성될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여의도 농민집회에 참석한 노무현 당시 대통령 후보가 농민들로부터 계란을 맞아야했던 비극적 사건이 이를 상징해준다. 미국의 제국주의성에 ‘노’라고 할 수 없는 한국정치의 구조 하에서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은 절감을 했던 것이다.
결국, 김대중 노무현 두 정부가 선명하게 각인시켜준 것은 자주 없이는 민주 없다는 것이었다.
자주 없이 민주도 없지만 아울러 자주가 없으면 통일 역시 없다는 답도 대중투쟁은 내놓았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에 남과 북이 합의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은 조국통일영역에서 획기적 진전이었다. 각각 통일의 이정표와 통일의 실천강령으로 평가받았다. 그대로라면 조국통일은 당장에 맞을 현실이었다.
특히 6.15공동선언이 민족공동의 이념으로 정립시킨 ‘우리민족끼리’는 72년 7.4공동성명에서 천명한 통일의 3원칙 중에서 ‘자주’와 ‘민족대단결’을 과학적으로 담아낸 중요한 개념이었다. 전 민족적 차원에서 우리민족이 미국의 제국주의성과 전선을 치는 넓고 넓은 민족통일전선이었던 것이다.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은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기 무섭게 곧바로 사문화되고 만다.
이명박 정부가 6.15, 10.4를 사문화시키고 난 자리에 들여온 것은 이전 보다 더 한층 강화된 한미동맹이었다. 반북이 심화된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분단체제에서 친미와 친북은 서로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또렷하게 보여주는 사례들이었다. 그를 통해 구체적으로는, 6.15, 10.4의 사문화를 통해 사람들은 분단체제가 친미를 기본으로 반북에 기반한다는 것을 또렷하게 확인했다.
결국, 이명박 정부의 사대적이고 반통일적인 행태에서 사람들은 자주 없이는 통일이 없다는 인식을 확고히 했다.
이것들은 한국 사회는 다른 나라의 사회와는 민주주의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나라의 군사작전권이 수 십 년 동안 줄곧 미국에 맡겨져 있다는 것이 사회 성격에서 차지하는 지위는 결정적이다. 아울러 분단이 70년이 넘도록 지속되고 있는 사회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는 민주주의 문제와 더불어 여기에 미국에 대한 문제와 통일에 대한 문제 등을 치열하게 결부시키지 않고 갖게 되는 사회성격 인식은 과학적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해준다.
예컨대, 6월항쟁 이후 사회체제를 ‘87년 체제’로 범주화한 것을 들 수가 있다. 백낙청 등 일부 지식인들이 주도한 것이었다. ‘87년 체제’라는 개념은 민주주의가 사회변화를 추동할 수 있다는 것에 방점을 찍은 것이기는 했지만 자주와 통일에 대한 담론을 담고 있지 못하다는 것으로부터 한국사회의 본질적 성격을 관통시켜 만들어낸 사회과학적 개념으로는 될 수 없었던 것이다.
민주주의와 더불어 미국과 북한에 대해 어떠한 입장과 태도를 취하느냐 하는 것이 한국사회 진보를 규정하는 잣대가 되었다.
특히 반미와 친북은 그 중에서도 더 중요했다. 분단체제라는 것이 그 기본이유다. 그렇다고 반미와 친북이 무조건적인 것은 아니다.
미국은 일반국가로서의 성격과 더불어 제국주의로서의 성격 또한 갖고 있는 나라다. 때문에 반미는 미국의 일반국가성은 인정해주면서도 제국주의성에 반대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 점에서 반제라는 말이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미 대사관 앞에서 전쟁반대를 외치는 대학생이 미국의 유명한 야구팀인 ‘양키즈’의 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과 연관시켜볼 만한 대목이다.
친북 또한 마찬가지의 원리다. 북한은 사회주의국가라는 것과 우리와 민족의 한 구성원이라는 두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친북이 북한의 사회주의성과는 관련이 없으며 북한의 민족성과 연대한다는 의미인 이유다.
한국사회의 진보는 이렇듯 대중투쟁을 통해 자주민주통일로 재정립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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