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혈맹관계 깨지나?"!
<분석과전망>중국의 '구동존이' 거론에 웬, 호들갑
'구동존이'(求同存異). 차이점을 인정하면서 같은 점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리진쥔 신임 주북 중국대사가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게 신임장을 제정하면서 이 구동존이라는 개념을 사용한 사실을 두고 연합뉴스 등 일부언론들이 적잖게 주목을 보내고 있다.
"중국은 새로운 시기와 정세 하에서 북한과 '상호존중, '평등상대', '구동존이', '협력공영'을 통해 양국관계의 건강하고 안정적인 발전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길 희망한다“
리 대사가 지난달 30일 신임장 제정 후 김 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리 대사가 구동존이를 언급한 것에 대해 연합뉴스는 14일 중국이 북한과 전통적 혈맹 관계 보다 정상적 국가 관계를 희망하고 있지만 북한은 전통적 혈맹관계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조선일보 역시 같은 기조였다. ‘혈맹관계 깨지나?’ 라는 14일자 조선일보 기사제목에서 확인된다.
연합뉴스는 “통상적으로 미국을 비롯해 체제와 가치관이 확연히 다른 서방국가와 관계개선을 추진할 때” 중국이 구동존이라는 말을 쓴다는 것을 그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연합뉴스의 이 분석은 ‘구동존이’에 대한 몰이해에 기초하고 있는 잘못된 입장이다.
정확히 서술한다면 의도적인 몰이해다.
구동존이라는 말은 중국의 주은래 총리가 써서 유명해진 개념이다.
1955년 4월 인도네시아의 반둥에서 제 1회 아시아·아프리카회의가 열린다. 제국주의의 압제에서 풀려난 아시아 아프리카 소위 제 3세계 국가들이 미국과 소련의 지배주의에 얽매이지 않고 독립적인 길을 모색하기 위해 개최한 국제회의였다.
중국 그리고 북한까지도 참석해 있는 이 자리에 대해 그러나 가만있을 미국이 아니었다. 미국은 친미 성향의 국가들을 추동해 그 자리를 공산주의를 성토하는 자리로 만들려고 한다.
가장 먼저 이라크 대표가 나서서 공산주의를 "낡은 식민주의"와 "유대 제국주의"에 이은 세 번째 위협이라고 연설하는 것으로 그 첫 출발을 뗀다. 필리핀은 소련을 일당독재국가라고 비난을 함과 동시에 미국의 선의를 높이 평가하는 연설을 했다. 심지어는 태국 대표는 중국이 태국의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면서 중국을 비판하기도 했다.
친미반소 더 나아가 중국에 대한 공격까지도 나오는 그 초기 분위기를 ‘구동존이’ 개념을 사용해 돌려세운 이가 바로 중국대표인 주은래 총리였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대다수 국가는 식민주의로 인해 불행과 고통의 역사를 겪었고 또 계속 겪고 있기 때문에 공통의 토대를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며 “만일 우리가 공통의 토대를 찾고, 식민주의에 의해 우리에게 덧씌워진 불행과 고통을 제거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쉽게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할 것이며, 서로에게 동정적이고 도움이 될 것이며, 서로를 의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서로에 대해 냉정하거나 적대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연설을 한 것이다.
주은래의 ‘구동존이’는 회의에 참가한 대부분 국가들의 지지를 얻었다. 그리고 반둥 회의를 정리하며 발표한 공동성명의 기초가 되었다.
‘구동존이’는 중국만이 갖고 있는 특화된 협상전술이 아니다. 어떤 나라든 일반적으로 운용하는 협상전술로 되게 된 것이다. 협상을 하게 될 때 서로 다른 점만 찾으려 한다면 협상은 공감대가 형성되지도 못하고 깨지고 말 것이다. 서로 같은 점을 찾으려고 해야만이 협상은 성공적으로 진행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구동존이’는 나라와 나라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정치세력들 간에 운용되는 소통 내지는 협력의 원칙으로 내세워지기도 한다.
2014년 초 당시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가 사용했던 말도 그 ‘구동존이’였다.
당시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황대표는 “새해부터는 새로운 다짐으로 국민이 바라는 선진정치를 꼭 해내야 한다”며 “하나가 되길 힘쓰되 상대방의 다름을 인정해주는 ‘구동존이’의 마음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한 것이다.
앞서 몇 개월 전에 당시 민주당에 대해 “민주주의 훼손세력과 무분별하게 연대해 자유민주주의에 기생한 종북세력의 숙주노력을 하지 않았는지, 또 지금도 비호하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야 한다”며 야당에 대한 ‘색깔론’을 펼친 것에 대한 자성의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여야가 소통의 자리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기 위한 수사로 황 대표는 ‘구동존이’라는 말을 거론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연합뉴스는 ‘구동존이’이에 대해 의도적으로 몰이해를 하고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국을 위한 것이다.
리 대사가 ‘구동존이’의 거론을 두고 북중관계 악화의 징후로 보려는 것은 본질적으로 북중관계가 소원해지기를 바라는 주관적 열망이 개입해들어 있는 극히 주관적 해석이다.
각 나라의 사회주의는 내용과 형태에서 다 같을 수가 없다. 정치체제와 경제체제 측면에서 서로 다른 차이점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매 나라가 처한 역사적 환경이나 조건으로부터 그 발전단계가 상이한 것이다.
북중 간에 확인되곤 하는 갈등의 요소들은 기본적으로는 여기에서 연원한다. 경제체제에서 자본주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사회주의 길을 개척하고 있는 중국과 이른바 주체사회주의의 길을 걷고 있는 북한과의 차이는 현실적으로 엄연하다.
북한 핵을 둘러싼 북한과 중국의 견해와 입장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중국은 북한이 핵강국으로 부상하는 것을 기본적으로 원하지 않는다. 핵패권을 분점하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당연한 자세와 태도다. 그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자체의 힘으로 북핵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미국으로서는 북핵을 둘러싼 북중 간에 같을 리 없는 이러한 입장에 주목을 하고 어떻게 해서든 북중 사이를 갈라놓아 중국이 북핵문제 해결에서 적잖은 역할을 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
북중 간에 불협화음이 보이기만 해도 이를 과도하게 부풀리는 미국의 행태는 이처럼 북중관계가 껄끄러워지고 악화되는 것을 바라는 주관적 희망이 쉼 없이 작동한 결과이다.
따라서 연합뉴스 등 일부 언론들이 리 대사의 ‘구동존이’ 거론을 북중 간 혈맹관계 파기정도로 해석하려는 것은 북중관계가 소원해지기를 기도하는 미국의 입장을 수용하여 과도하게 현실에 적용시킨 오류의 전형적인 예가 된다. 극히 정치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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