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잇길
권말선
큰 길 한 켠 없는 듯 있는
짧은 길
우리 전부 다 합치면 너보다 크다며
돼지감자꽃들이 전봇대와 입씨름 해대고
깻잎사귀들이 노랗게 분칠한 뒤
몰래 밤을 기다리며 설레는 길
선 듯 누운 듯 아무렇게나 모여 있는
잡초들 대낮부터 술주정 늘어지고
울타리 넘어 도망가고픈 어린 호박넝쿨
늙은 할매가 묵직하게 발목 잡아채는 길
학교 끝난 아이들 와- 소리에 들썩대는 길
이동면 송전리 농협 옆에서
송전우체국까지만 딱 나 있는 길
비오면 웅뎅이로 숨어버리는
부끄럼타는 머스메 같은 길
알고보면 묵직한 사연도 담긴 길
함부로 조국을 앓다 교도소 끌려 간
사내 하나 있었지, 그 사내에게
비밀 아닌 비밀 은밀히 실어나를 때도
또 은밀히 실어 올 때도
모른 척 눈감아 주며
오히려 지친 발걸음 위로해 주던 길
그러고보면 작지만 참 듬직한 길
그래서 더 정이 가는 길
우리동네 우체국을 향해 난
향기로운 길, 사잇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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