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자주통일연구소
  • 자주통일연구소
시::권말선/그이의 환한 미소(두번째 시집)

100일, 광화문에서

by 전선에서 2014. 7. 25.







100일, 광화문에서


                    - 권말선



이미 젖은 몸이나마
마구 쏟아지는 비
피한답시고
작은 우산 받쳐 들고
집으로 돌아가면 된다
나는


넓은 바다 한 가운데서
낡아진 구명조끼 하나 입고
아니 그마저도 없이
두렵고 춥고 떨리고
보고팠을 텐데

피할 곳도 없이
움직일 수도 없이
두렵고 춥고 떨리고
너무도 간절히 보고팠을 텐데


너는
아직 집으로 다 돌아오지 못하고 있구나


다리가 아프다고
배가 고프다고
비에 다 젖었다고
호들갑을 떨지 못했다
엄살을 떨지 못했다
네 앞에서


희망의 끈 놓지 않으려
아등바등 매달리다
손가락이 부러졌다.
손톱이 빠져나갔다.
그러느라 얼마나 울었으랴
두렵고 아프고 힘들었으랴
얼마나 사무치게 보고팠으랴
아, 분홍꽃 같은 

너는


'특별법 제정!'의 뜰
광화문에서
그러나 아가야
거침없이 쏟아지는 빗줄기가 된
너는
너는 무섭게 울부짖더구나
너는 더이상 두렵지 않은 듯
'진실을 밝히라!'며
회초리같은 빗줄기로
세상을 때리더구나


100일을
함께 기억하던 그 날


아무도 구해주지 않았던
기만의 바다를 헤치고 돌아 온 너는
성난 비가 되고
번개가 되고
군중의 외침 
거센 구호가 되고
'세월호 가족'의 선봉
진실을 밝혀야 할
선명한 이유가 되었고


아, 꽃 같은 너에게
꽃보다 어여쁜 너에게
꽃보다 붉은 너희들 앞에 우리는
'세월호 진실'
반드시 가져다 줄 다짐
불끈 쥔
힘찬 주먹이 되었다.


'시::권말선 > 그이의 환한 미소(두번째 시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 땜에 멍든 마음  (0) 2014.10.20
세포등판  (0) 2014.10.02
사잇길  (0) 2014.09.25
빈 방  (0) 2014.09.11
나이  (2) 2014.09.03
대한민국은 지금, 팽목항  (1) 2014.07.15
밤 비 내린다  (0) 2014.07.08
나의 스무 살은  (0) 2014.06.27
이희영 선생 영전에 드림  (0) 2014.06.18
어느 날, 서명을 받으며  (0) 2014.06.1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