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전망) 윤석열퇴진촛불의 의미와 진로(2)
전편에 이어 계속
국민들은 국민주권 실현 투쟁인 전민항쟁에서 네 번의 승리를 쟁취했다. 4.19로 이승만 친미경찰독재정권을 몰아냈고 부마항쟁으로는 박정희 친미군부독재체제를 몰락시켰으며 6월항쟁으로는 전두환 친미군부독재정권을 축출하고 직선제를 되찾았다. 이어 2016년 촛불항쟁을 통해선 박근혜 친미보수정권을 퇴진시켰다. 다들, 위대한 승리였다.
4번의 위대한 승리는 그러나, 제대로 결속되지 못했다. 국민주권 유린에 맞서는 것이었을 뿐 국민주권을 온전히 실현하는 데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던 것이다. 경찰독재를 종식시켰던 4.19는 장면 내각을 거쳐 박정희 친미군부독재정권으로 귀결됐으며 박정희 유신체제를 붕괴시킨 부마항쟁은 전두환 친미군부독재정권으로 이어졌고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직선제를 쟁취했던 6월항쟁 역시 노태우 친미보수정권을 거쳐 김영삼 친미보수연합정권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박근혜 퇴진촛불 또한 문재인 정부를 거쳐 윤석열 친미검찰독재정권에로 귀결됐다. 네 번의 전민항쟁은 전략적으로는 한국사회 발전에 귀결되기는 했으나 현실적으로는 역사적 역행으로 이어지는 굴곡을 거치게 된 것이다.
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죽 쒀서 개줬다’고 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그렇다면, 왜, 죽쒀서 개주고 말았던 것인가?”라고 묻고 있다.
1)미국의 한반도지배전략이 근본원인
전민항쟁의 성과가 유실된 것에 대한 국민들의 문제의식은 통렬하다. 죽 쒀서 개주고 말았던 가장 근본적 원인은 분단체제가 위기에 몰릴 때마다 미국이 작동시켰던 한반도지배전략에서 찾을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미국이 대한종속체계에 의거해 기획한 한국사회 권력재편 때문이다.
이승만 친미경찰독재정권이 4.19로 몰락해 분단체제가 위기에 봉착했을 때 미국은 한국 보수를 끌어들여 통치 수단이었던 경찰을 군사로 대체하는 것으로 독재체제를 유지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박정희 친미군부독재정권이었다. 당시 CIA 국장이었던 앨런 덜레스는 1964년 5월 3일 BBC 인터뷰에서 "재임 중 CIA의 해외 활동으로서 가장 성공을 거둔 것은 5·16군사정변이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미국은 이어 박정희 친미군부독재정권이 위기에 몰렸을 때는 유신체제의 심장 박정희를 이른바, ‘김재규의 탕탕절’로 제거하고 그 자리에 새롭게 육성한 친미군부 전두환을 앉혔다. 또한 국민들이 전두환 군부에 5월 광주항쟁으로 맞서고 종내는 독재체제를 혁파하기 위해 6월항쟁에 나섰을 때는 직선제를 받아들여 노태우 보수정권을 출범시켰다. 김영삼 정권 출범 역시 마찬가지로 미국이 대한종속체계를 작동시킨 결과였다. 김영삼 정권은 독재체제와 군부체제가 동시에 몰락된 조건에서 미 대한종속체계가 보수적 개혁인 김영삼을 보수 영역으로 끌어들인 결과였다.
미국의 대한종속체계는 개혁정권 하에서도 치밀하게 가동됐다. 대표적인 사례로 김영삼 정권 말기의 IMF사태나 6.15시대 때의 남북군사충돌 등을 들 수가 있다. IMF사태는 미국이 한국사회에 신자유주의를 전면화시킨 것으로 이로 인해 김대중 대통령은 서민경제론으로 주창했던 자신의 경제철학 ‘대중경제론’을 시도조차하지 못하고 폐기해야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 발생했던 남북군사충돌은 남북관계 발전이 민족공조로 올라타는 걸 막기 위해 미국과 한국 보수가 가동시킨 안보군사기제였다. 개혁정권 시기 미 대한종속체계는 이처럼 개혁정권의 권력운용이 국민주권 실현에로 이어지는 걸 저지하거나 왜곡했다.
미 대한종속체계의 작동은 또 다시 친미보수정권의 등극으로 이어졌다. 노무현 정권이 남북관계 발전을 조국통일로 이어내지 못한 결과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되고 뒤 이어 박근혜가 들어선 것이다. 이에 국민들이 다시 전민항쟁으로 박근혜 정권을 퇴진시켰다.
박근혜 퇴진촛불의 성과로 출범한 문재인 개혁정권은 국민주권 실현에서 진전을 이뤄낼 수 있는 역사상 최적의 조건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은 박근혜 퇴진촛불의 요구였던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에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히 남북관계를 민족공조 궤도에 올려 태우는 데에서도 실패한 것은 치명적이었다. 미국이 ‘조국사태’를 비롯해 ‘9.19남북군사합의’에 대한 직격과 한미연합군사훈련 지속 등 대한종속체계를 총체적으로 작동시킨 결과였다.
하지만 개혁정권이 국민들의 주권의식 발전을 추동하고 국민주권을 실현시킬 수 있는 정치공간을 탄탄하게 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는 미국과 한국 보수에겐 미 세계패권이 약화되고 있는 상황 그리고 특히 북이 핵보유 전략국가로 등극한 상황과 맞물리면서 분단체제 유지를 위협하는 최대의 정치적 위험일 수밖에 없었다. 구체적으로 그 이후 개혁정권이 다시 등장하게 되는 경우 개혁정치가 사회대개혁으로 이어질 수 있고 민족공조가 실현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이에 미국과 한국 보수는 검찰을 동원해 문재인 개혁정권의 무능과 실정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갔으며 그 결과 검찰은 미국의 지휘를 받아 ‘조국사태’로 역공을 가하는 ‘검찰쿠데타’를 통해 권력의 중심에로 올라서는 데에 성공했다. 그 귀결이 윤석열 친미검찰독재정권의 출범이다.
미국은 이렇듯 전민항쟁이 있고 난 뒤 권력재편을 통해 전민항쟁의 의의를 무력화했다. 죽 쒀서 개주게 된 것은 결국, 미국의 대한종속체계에 의거한 권력재편이 그 근본원인이었다.
2)개혁의 한계와 정략적 관점도 근본원인
죽 쒀서 개주고 말았던 데에서 또 하나의 원인으로 개혁의 한계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된 개혁의 정략적 관점과 태세를 들 수 있다.
개혁의 한계는 미국의 한반도지배전략에 대한 개혁의 관점과 입장, 태세에서 비롯된다. 미 한반도지배전략에 대한 개혁의 관점과 입장은 보수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개혁이 미 한반도지배전략의 한축인 대북적대체계에 대해서는 일정한 비판적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보수가 전면적인 ‘복종’ 태세를 보이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순종’ 태세라고 할 수는 있다.
개혁의 한계와 정략적 관점은 군부독재를 종식시킨 6월항쟁의 결과가 군부의 잔재인 노태우 보수정권으로 귀결되는 과정에서 대표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미 정보기관의 총 지휘가 김영삼 지지와 김대중 지지 그리고 김현희 ‘칼기 폭파사건’ 등 세 갈래로 진행됐다는 것 그리고 그 결과가 김현희 ‘칼기 폭파사건’에 힘입은 노태우의 당선이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개혁이 미 대한종속체계에 맞서 한국사회발전 요구에 충실했다면 즉, 정략적 관점을 앞세우지 않았다면 미 대한종속체계가 기획했던 양김분열을 통한 노태우 당선전략은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개혁의 한계와 정략적 관점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세 번의 민주당 정부의 권력운용에서도 보다 또렷이 확인할 수 있다. 특히, 6.15와 10.4 그리고 4.27과 9.19 등 남북합의 문서 모두가 ‘종이 쪼가리’가 되고 말았다는 것에서 선명하다. 경찰독재와 군부독재엔 반대했지만 분단체제에 대해선 극복이 아니라 순종하는 것을 존재방식으로 채택한 데서 비롯된 개혁의 본질적 한계였으며 아울러 민족문제를 정파적 이익에 복속시키는 정략적 관점이 불러온 정치적 참사들이었다.
3)진보의 미약과 전략적 오류가 결정적 원인
죽 쒀서 개주고 말았던 원인에서 실천적으로 가장 주목해야할 데는 진보의 미약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된 전략적 오류이다. 전민항쟁의 역사는 전민항쟁이 투쟁하는 국민들로 꾸려지는 전선과 그에 결부된 당에 기반해야만 국민주권을 온전히 실현시킬 수 있음을 철리처럼 기록해두고 있다. 이러한 한국사회발전의 합법칙적 원리에 가장 철저해야할 데가 바로 진보이다.
진보는 그러나 4.19 때 당과 전선을 아예 갖고 있지 못했다. 그 결과 4.19의 의의는 장면내각에 계승될 수가 없었으며 종래엔 박정희의 5.16쿠데타에 의해 괴멸되고 말았다. 미약한 진보는 미국의 한국사회 권력재편 전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6월항쟁 땐 당은 없었지만 전선은 있었다. 1987년 5월 27일, 박종철 학생 고문치사사건과 전두환 정권의 4·13호헌조치를 계기로 야당과 재야민주세력의 연대연합으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를 출범시킨 것이다. 그러나 진보는 ‘국민운동본부’에 국민주권 실현 전망을 세우지 못했다. 그 결과 ‘국민운동본부’는 진보의 상층역량이 개혁정당에 개별적으로 진입하는 정치공학적 기반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보수와 개혁 가릴 것 없이 정치권 그리고 관료집단에 진출해 있는 이른바 386정치인들이 그 외화이다. 당이 없는데다가 전선도 제 역할을 못한 것에 따라 미국의 권력재편 기도는 저지되지 못했고 그 결과가 노태우 보수정권의 출범이었다.
진보는 6월항쟁 이후에야 비로소 전선과 당을 국민주권 실현 즉, 한국사회변혁운동과 조국통일운동에서 승리의 관건으로 설정했다. 그에 따라 학생운동의 결집체 ‘전국대학생협의회’가 건설되었고 노동자들이 ‘7.8.9노동자대투쟁’을 통해 민주노총 건설에 돌입했으며 그 뒤를 농민운동이 이었다. 청년운동 역시 활성화됐고 빈민운동도 시작을 뗐다. 각계각층의 조직화는 마침내 1991년 12월 1일 전선체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건설로 귀결됐다. 이어 제기된 민중의 정치세력화로 ‘국민승리21’이 창당되었으며 민주노동당을 통해 진보정치의 위력을 과시했고 통합진보당으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진보는 박근혜 퇴진촛불 때 전선과 당이 다 있었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은 그에 앞서 괴멸적 타격을 받아 역량이 소진된 상태였으며 ‘전국연합’의 뒤를 이은 한국진보연대의 역량 또한 민주노총을 망라하지 못하는 등 진보는 전반적으로 미약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진보는 결국, 전민항쟁이 역동적으로 만들어주는 정세에 대한 장악력은 물론 돌파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 그 결과 문재인 개혁정권을 견인하는 데에서 실패를 했고 결과적으로는 박근혜 퇴진촛불이 제기한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에 성과를 내지 못하고 말았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 진보는 전략적 오류까지 노정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된 이후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 전선에서 전면 철수를 한 것이 그것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 하에서 적폐의 역공이 본격화되었을 때 전선에 복귀하지 않았던 것은 치명적이었다. 2019년 서초동촛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진보진영의 다수가 서초동촛불을 외면했다는 것은 사실, 대단히 위험한 것이었다. ‘조국사태’가 적폐의 역공이자 부활 도모라는 걸 외면했다는 점에서다. 특히 ‘조국사태’가 미국과 한국 보수가 기획한 ‘검찰쿠데타’라는 본질을 보지 못했다는 것은 더욱 치명적이었다. 진보는 서초동촛불에 내걸린 ‘조국수호’라는 구호를 왜곡해 부각시킴으로써 서초동촛불에 역동적으로 흐르고 있던 국민들의 검찰개혁을 통한 적폐청산과 사회개혁 열망을 폄훼하기도 했다.
기술적 오류가 아니다. 분단체제에서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은 분단체제에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적폐들의 반발과 저항 그리고 특히 역공을 통한 부활 기도를 제압하는 투쟁을 동반하고 있기 때문에 혁명에 버금가는 복잡하고 간고한 투쟁으로서의 위상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는 박근혜와 그 일당들 몇몇을 축출하는 것을 적폐청산의 다로 여겼다. 특히 적폐의 역공과 부활도모에 맞서 싸우는 것을 민주당을 중심으로 하는 개혁세력만의 임무와 역할로 한정시켜 버리는 치명적 오류까지 범했다. 분단체제에서 진보가 개혁에 대해 일면 타격을 하면서도 일면 단결을 해야한다는 한국변혁운동과 조국통일운동에서의 통일전선 원리에 따르면 이는 심각한 전략적 오류다.
진보가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된 이후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 전선에서 대거 철수를 하고 이어 문재인 정부 하에서 적폐의 역공이 본격화되었을 때조차도 전선에 복귀하지 않았던 것은 결국, 적폐청산투쟁과 사회대개혁투쟁에 대한 잘못된 관점과 입장이 작동한 결과이자 특히 한국사회변혁운동과 조국통일운동이 승리의 보검으로 정립한 통일전선 원리를 홀시한 결과였다. 이는 진보진영이 이후 진보의 확장을 도모하는 데에서 반성적으로 꼭 짚어야되는 전략적 대목이다.
국민의 네 번에 걸친 위대한 승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가 죽쒀서 개 준 격이 되고 말았던 원인은 미국과 보수 그리고 개혁에 있지만 주체적 관점에서는 진보가 진보의 지위에 부여된 진보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이 결정적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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