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산딸기는 없네
권말선
여기 맨살의 흙언덕,
초록이 커튼처럼 펼쳐진 위로
새빨간 열매 오돌토돌 박혀
예뻐라! 탄성이 절로 났던
산딸기 무성했다
지금은 다 사라져 버린 자리
쌀은 돈이 되지 못해도
돈은 쌀이 되는 세상에
산딸기라고 별수 있겠나?
쌀과 감자, 소나무와 민들레
싹싹 뽑아내고 들어선 산업단지
시뻘건 잇몸 드러내며
‘내 땅이야!’ 외쳐봐도
산딸기, 저 어린것이
별수 있었겠나?
지금보다 더 예전엔
농사짓던 사람들이
공장으로 쓸려갔지만
지금은 공장들이
점령군처럼 저벅저벅
논밭과 야산을 밀고 내려오지
쌀만 먹고서야
감자만 먹고서야
산딸기만 먹고서야
어찌 살 수 있겠냐며
공장 옆에 또 공장 짓겠다고
돈이 있어야 살 수 있는 거라고
으름장 놓더니 결국
산딸기는 사라졌네
농민이 밀려난 땅
공장이 차지한 자리
산딸기 뿌리내릴 한 뼘도
허락지 않는 언덕에
개망초도 달맞이꽃도
풀밭을 뛰 댕기던 메뚜기며
날개를 비비던 풀벌레
허공에 집 짓던 거미까지
누군들 버티겠는가, 누군들
다 뽑혔구나
다 쫓겨났구나
허전하여라 맨살의 흙언덕이여
빨간 잇몸 드러내며 하냥 웃던
빠알간 미소로 발길 멈춰 세우던
산딸기
돈이나 먹고살라며
다 던지고 가버렸네
없네,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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