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임배추
권말선
우리 공장에 절임배추는 없어요
<들기름에볶은김치>만 있어요
국물 적당히 머금은 김치볶음
보기만 해도 군침 돌지요
아침부터 쏟아지는 조장 언니 목소리
“왜 이렇게 일머리가 없냐,
빨리빨리 해라,
거기서 뭘 하고 있냐!”
등 뒤에서도
눈앞에서도
호통이 날아올 땐
시나브로 지친 마음
그만 절임배추가 되지요
우리 공장에 절임배추는 취급 안 해요
묵은지처럼 알맞게 잘 익은
노동자가 되려면
호통도 견뎌가며
나날이 배우고 익혀야 해요
절임배추는
온갖 양념에 묻혀
인내의 시간에 묻혀
자기를 다 녹이고 나서야 비로소
묵은지가 되니까요
우리 공장에 절임배추 하나
김치가 되려
묵은지 되려
이제 막 버무려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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