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자주통일연구소
  • 자주통일연구소
시::권말선

[시] 시금치는 분홍색이다

by 전선에서 2021. 2. 23.

시금치는 분홍색이다

권말선

온라인 장터 <언니네텃밭>에서
황선숙 언니의
겨울시금치 1kg을 샀다
들에서 캔 냉이처럼
긴 뿌리를 가진,
뿌리채 내게로 온
시금치는 분홍색이다
꿀을 머금은 사과꽃잎처럼
잠든 아가의 날숨처럼
세상에나, 곱기도 하지
뿌리는 발그레한 분홍색이다

전남 무안에서 올라온 
한 통의 편지 같은
시금치의 겨울 이야기가
분홍 뿌리에, 황토 사이에 묻어있다
긴 겨울 개쑥갓, 비름, 까마중 틈에서
더러 눈 속에 파묻히기도 하고
흰서리발에 까무룩해지기도 하고
종일 찬바람에 떨기도 하며
얼었다 녹았다 또 얼었다를
묵묵히 견뎌내다 보니
그만 발그레해졌단다

가을의 씨뿌림부터
겨울의 거둠까지
몇 달의 시간이 고스란히
한 접시 정겨운 찬으로
식탁에 놓였다 한다
뿌리가 주는 아삭한 식감과 단맛은
제게는 겨울을 이겨낸 훈장이고
내게는 겨울을 이겨낼 위로라 한다
그러니 너도 온갖 추위 다 견디는
달고 든든한
뿌리가 되라 한다

해마다 겨울이면 무안의 황토텃밭
뿌리 어여쁜 시금치는
된장국으로도
고추장무침으로도
샐러드, 튀김
잡채, 스파게티에도
골고루 어울리게
얼었다 녹았다 또 얼어가며
분홍, 초록의 편지지에
달달한 겨울기운 쟁여 넣고서
까치발로 서서 기다리고 있을게다, 나를

 

 

'시::권말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 꽃과 고기  (0) 2021.07.04
[시] 일본의 국경장벽  (0) 2021.04.25
[시] 다 멈추어라!  (0) 2021.04.21
[시] 백두산은 자란다  (0) 2021.03.27
[시] 송전삼거리  (0) 2021.03.16
[시] 국가보안법, 네가 없는 아침  (0) 2021.01.13
[시] 가을나무에게  (0) 2020.11.10
[시] 일장기는 왜 붉은가?  (0) 2020.11.05
[시] 구례를 생각하며  (0) 2020.11.01
[시] 정히 받습니다  (2) 2020.10.2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