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네가 없는 아침
권말선
그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네가 사라지고 없는 걸 알게 된다면
어떨까 우린
오래고 깊은 속박
의식의 지배자로 군림했던
네가 사라지고 없는 첫 아침
고개를 쳐들 수조차 없음에
한 번도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던
태양을 오롯이 우러르는 마음은
기쁨에 겨워 어디로든 나가
맨발로 사방을 뛰다닐지도
동무를 만나 반가운 마음에
터진 말문을 주체 못할지도
갓 알을 깬 젖은 병아리처럼
탐색과 환희에 몸을 떨지도
그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텅 빈 네 자리를 확인한다면
어떨까 우린
하늘과 땅을 뒤집어
땅 속 울음을 쏟아내고
다시 하늘과 땅을 바로 세워
하늘의 설움도 받아내고
울음과 설움 한 데 섞어
끝없는 한풀이를 할지도
아, 그 날 이후 태어난 이들이
반쪽과 분단과 식민을 그저
역사책으로만 배우게 될
생경하고도 가슴 벅찬 모습,
민족과 통일만을 높이 받들고
살아가게 될 놀라운 모습이란!
오늘 아침 사람들이 눈을 떴을 때
너는 영영 가고 없어야겠다
이제 사라져야만 하겠다
깊은 밤을 허둥대는 발소리
도망자들의 넘어지고 구르는 소리
반역자여, 침략자여, 적폐여
제국의 시녀 국가보안법이여
그만 자리를 비우고 떠나라
아무도 반길 이 없을 나락으로
8,000만의 횃불을 안고서
마침내
우리들 새 아침은 밝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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