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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과 전망

문재인을 어떻게 볼 것이냐

by 전선에서 2017. 4. 5.

문재인을 어떻게 볼 것이냐

<분석과전망>문재인에 대한 기대는 환상이며 문재인에 대한 비난은 욕심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4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를 찾아 분향하고 있다.(왼쪽 사진) 

        같은 날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 앞에서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문재인은 죽었다 깨나도 김대중 노무현을 뛰어넘지 못한다. 문재인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현실적이고 객관적인 평가다. 이것이 그 무슨 특별한 견해일 수는 없다. 미국의 대한반도지배전략이 관철되는 분단체제인 한국사회에서 개혁정치세력이 갖는 존재방식이다. 한계인 셈이다.

장미대선은 촛불이 일궈낸 소중한 정치적 성과다. 촛불이 친미반북정치세력의 심장부를 타격해 차려준 밥상이다. 촛불이 켜지지 않았다면 대선은 개헌드라이브를 통해 반기문을 대통령으로 하고 친박을 총리로 하는 친미반북정치세력들의 정권재창출프로젝트 하에서 진행되었을 것이었다.

 

촛불의 본질적 요구는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이다. 여기에서 촛불의 요구를 실현하는 문제와 제 정치세력과의 관계문제를 정확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 고리타분한 이론상의 문제가 아니다. 극히 현실적인 문제다.

 

개혁정치세력은 촛불항쟁의 본질적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정치주체가 못된다. 기껏해야 부분적으로 적폐청산과 사회개혁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게 개혁이다. 딱 거기까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정치세력이 촛불항쟁의 본질적 요구를 실현할 수 있으며 그리해야된다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적지않다. 

 

촛불이 친미반북정치세력의 심장부를 타격한 것이었다면 촛불의 요구인 적페청산과 사회개혁으로 표현되는 촛불의 요구는 친미반북정치세력의 기반을 송두리째 허물어뜨리는 것이다. 촛불의 근본요구는 친미반북정치세력의 청산인 것이다. 친미반북정치세력을 청소할 주체가 본디 개혁정치세력이 아닌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4.19와 부마항쟁과 5월 광주 그리고 6월항쟁 역사가 증좌해주고 있는 진리다.

개혁의 본질을 모르면 김대중 때 노무현 때처럼 세상 바뀌는 줄 알았다고 보는 사람들이 생긴다. 세상물정 모르는 발상이다. 되도 않을 욕심인 것이다.

 

개혁정치세력이 촛불의 본질적 요구를 실현할 수 있다면 그 개혁정치세력은 더 이상 개혁정치세력이 아니다. 현실이 그렇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이 촛불의 본질적 요구를 실현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완전 환상이다. 한국정치에서 미국을 빼놓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 때 생기는 치명적 오류 중에 대표적인 것이 이것이다. 진보연하는 사람들에게서 자주 발견된다.

친미반북정치세력에 대한 타격이 적폐청산 및 사회개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특별한 조건이 필요하다. 위력적인 진보정치세력의 존재다.

위력적인 것이라 해서 거창한 게 아니다.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 이정희 대표가 거대야당을 이끌고 한미FTA투쟁을 주도했던 것을 상기해보면 그림이 나온다. 이전 통합진보당 정도의 수준이면 족하다.

진보정치세력이 존재해야만이 친미반북정치세력에 대한 타격은 적폐청산 더 나아가 사회대개혁으로 온전하게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촛불항쟁의 본질적 요구는 이처럼 진보정치세력만이 실현시킬 수 있다. 하지만 현 시기 진보정치세력은 촛불항쟁의 본질적 요구를 실현시킬만한 태세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 진보는 있으되 미약하기 그지없다.

 

촛불항쟁과 같은 역사적 격변기에 우리사회에 진보정치세력이 없다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미국과 친미반북정치세력이 운용해온 분단국가의 필연적 결과다.

미국과 친미반북정치세력은 진보의 자주적 진출을 가로막고 왜곡하는 데에 숱한 공격을 해왔었다. 탄압의 수준이나 범위는 가히 국가적 범주였다. 역사 속에서 무수하게 있어왔던 단체 및 정치세력들에 대한 공안사건조작들이 그것들이다. 90년대 중부지역당 사건을 비롯해 가장 비근한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통합진보당 강제해산이다.

역사적 격변기를 주동적으로 맞이하려는 진보의 태세를 이렇듯 미국과 친미반북정치세력들은 사활적으로 저지해왔던 것이다. 물론 결정적 이유는 어려운 객관조건을 물리치지 못한 주체의 문제다.

 

역사적 격변기에 진보정치세력이 없다는 것은 사실, 대단히 슬픈 일이다. 진보정치세력이 약한 현실은 슬픈 정치풍경들을 다양하게 만들어내기도 한다.

민주당 경선과정에서 진보적 대중들 일부가 이재명에게 열광하고 행동했던 것을 꼽을 수가 있다. 이재명에 대한 열광은 소중한 것이기는 하지만 진보진영에 단일대선후보가 없는 것을 직접적으로 반영한 예다.

문재인에게 과도하게 진보적 태세를 요구하거나 더 나아가 문재인이 진보적 요구를 받지 않고 문제가 있다고 해서 극단적으로 비난하는 것 역시 진보정치세력이 약한 현실을 반영하는 정치풍경이다.

 

문재인은 한국정치사회의 개혁정치세력의 본류다. 한국사회발전의 전략적 과제인 자주 민주 통일의 범주에서 보자면 비미이자 비북이다. 친미는 아니지만 반미도 아니며 연북이 아니지만 반북 또한 아닌 것이다.

 

문재인에 대한 정확한 관점과 태세를 가져야만이 정권교체시기에 좌우편향에 빠지는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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