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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권말선/그이의 환한 미소(두번째 시집)

[시] 웃고 있는 주한미군에게

by 전선에서 2016. 7. 17.



웃고 있는 주한미군에게


           권말선


“기름 새는 미군기지 주한미군은 책임지고 정화하라!”

용산 미군기지에서 흘러 나오는

오염지하수 집수정이 놓인

이태원 광장 한 켠

피켓 들고 시위하는 내 앞을


부인과 어린 남매 

단란한 가족의 모습으로

지나가던 주한미군

잠깐 멈춰 서서 

딸아이 귀에 뭐라 속삭이니

무지개색 원피스

뽀글머리 곱게 땋은 

통실한 얼굴의

세 살 남짓 귀염스런 아이가

광장 한 복판으로 달려나가 쫑알대며 춤을 춘다

- "레리꼬, 레리꼬(let it go, let it go)"*

- 빙그르르 촤악~! 

딸아이가 팔을 뻗어

손가락 쫙 펴는 순간

광장이 얼음판으로 변하는

아마도 마법이 일어났으리라

그렇게도 즐겁게 웃는 걸 보면


그러나 주한미군이여

그걸 보는 내 마음까지 차갑게 얼어감을

어쩌면 너도 느끼고 있었겠지

네가 바라보는 정면에 펼쳐진

“용산미군기지 내부오염 조사하고 정화비용은 미국이 책임져라!“는

영어와 한글의 피켓도 

네 눈으로 분명 보았겠지!


아, 어여쁜 딸아이와 즐거운 한 때가

너의 땅, 너의 고향 미국에서였다면

그 작은 몸짓을 예쁘게 바라봤을 텐데


그러나 지금 내 앞에서 

웃고 있는 주한미군이여, 한 번 쯤 생각해 보라

네 어여쁜 딸 아들이 좀 더 자랐을 때

할아버지가 침략자로 들어선 땅에서

아버지가 점령군으로 행세한 땅에서

어린 시절 보낸 걸 알게 된다면

제 할아비와 아비를 어떻게 여길까

저를 품에 안고 어르고 달래던 이가

선량한 우리 민족 먹이감쯤으로 여기며

철조망으로 칭칭 감아 반으로 갈라놓고

장갑차와 콜라병으로 짓이기고

탄저균과 발암물질, 싸드로 고문하던

실은 악마였음을 알게 된다면

깨닫게 된다면!


너도 숱하게 듣고 보았겠지

‘양키 고 홈’ 외침부터 

‘평화협정체결하고 미국은 떠나라!’까지

어쩌면 이제 내성이 생겨

그런 구호쯤이야 

그런 저항쯤이야

심장에 한 톨 

죄책감으로도 남지 않은 것이냐

괴팍스런 네 마법에

죽어가는 우리 땅 보이지 않는 것이냐


그러나 주한미군이여

나의 간절한 바램 담아 시위하노니

네가 흘려버린 우리의 절규

고통의 무게 고스란히

네 아들들과 딸들에게 넘겨지기를

70년 넘게 우리에게 강요했던 수난

두 배, 세 배 되받아 곱씹고 감당하며

뼈저리게 아프고 아프고 아프기를

그리하여 대대로 이어질 네 후손 

저 먼 미래 한 점 핏방울에서라도 

다시는 너와 같은 침략의 광기 깃들지 못하기를


오늘 내 앞에서 웃고 있는

주한미군 네 위선의 행복 앞에서

나는 바라고 또 외치노라



* 미국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주제가 가사

- 오마쥬 : 증오의 불길로써(김상오,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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