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통일준비’에 북한이 없다.
<분석과전망>북한에 일방적인 것이거나 북한이 반발하는 것이거나
"분단시대를 마감하고, 통일시대를 열겠습니다"라고 했다. 통일부와 외교부, 국방부, 국가보훈처가 그랬다. 19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통일준비’에 대한 업무보고를 하면서다. 그런데 그것에 북한이 보이지 않는다. 통일의 상대인 북한이 없는 것이다.
통일부와 외교부, 국방부, 국가보훈처의 ‘통일준비’ 업무는 평화통일기반구축법 제정, 한반도열차 시범 운행, 남북겨레문화원 동시 개설 추진 등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통일준비위원회와 통일헌장을 제정해 국민이 공감하는 통일 비전을 수립한다는 방침도 있다.
'평화통일기반구축법' 제정 추진에 대해 당국자는 정권 교체에도 흔들림 없이 통일을 준비하도록 제도화하자는 취지라고 했다.
양측의 수도에 서로의 인원이 상주하는 것으로 흔히, 수교나 관계 정상화와 연결되는 남북겨레문화원(가칭)도 그렇게 이해하면 되었다. 통일정책의 지속성 확보를 위한 제도화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들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중요한 조치들이다. 정치적 차원에 머물러 있는 통일준비를 법과 제도 범주로 이동시키고 있는 것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환호하는 전문가들이 없다. 일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 조치들의 세부로 들어가면 그것에 정책으로서의 면모가 없다는 것이 곧바로 확인되어서다. 법 제도 차원으로 내려온 줄 알고 있었는데 실상은 여전히 정치차원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정치홍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무슨 정치행위 정도로 보였다.
이유는 정확히 한가지이다. 북한이 없어서다.
정부당국은 통일정책의 지속성을 강조한다. 그렇지만 그 지속성은 북한의 동의 없이는 유지될 수가 없다. 업무계획에는 "북한과 함께하는 통일준비를 하겠다"는 문장이 있다. 그렇지만 업무계획 그 어디에도 북한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나 경로에 대한 언급은 없다.
통일정책에 대한 지속성을 보장한다는 취지에 의문이 가는 결정적 대목이다. 강조하려는 지속성은 찾기 어렵고 대신 또렷하게 확인되는 것은 일방성이다.
직접 확인된다. '한반도 종단 철도 시범 사업'에 대한 것에서 그 예를 찾을 수가 있다. 다른 사안도 그렇지만 한반도 종단철도 시범 사업도 우리정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다.
대통령 업무보고 전날인 18일 사전 언론 브리핑에서 "내용을 북한 당국에서 인지하고 있느냐"고 기자들이 질문을 한 이유이다. 그렇지만 당국자는 ‘아니다’라는 답을 태연하게 내놓았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접근하면 사실,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우리정부가 걸핏하면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구상'이라며 큰 의미를 부여하곤 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도 일방적이었다. 1차 남북정상회담의 디딤돌이 됐던 2000년 3월 김대중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이 그 전날 북한에 전달됐던 것과 극명하게 비견된다.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이 그랬듯이 ‘통일준비’에 대해서도 북한은 정부당국을 통해서가 아니라 언론을 통해서 접하게 될 것이다.
우리정부의 통일준비에 이렇듯 북한은 없다. 있는 것은 문제다. ‘통일준비’의 내용에 북한이 반발하는 것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이 그 하나의 예이다.
대표적으로 통일헌장을 꼽을 수 있다. 통일헌장 제정은 지난해부터 통일 방안의 큰 방향을 제시한다면서 추진하고 있는 사안이다. 통준위가 주도한다. 지난 1989년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계승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자주·평화·민주의 3원칙을 바탕으로 남북연합의 중간과정을 거쳐 통일민주공화국을 실현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북한은 이에 대해 크게 반발했었다. 지난해 12월 30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의 사설을 통해 "체제통일의 개꿈에 사로잡혀 있다"는 원색적인 표현을 동원했다.
통일헌장에 이어 평화통일기반구축축법 제정에 대해서도 북한의 반발은 충분히 예상된다.
이것들은 헌장은 물론 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북한의 의견을 반영하는 등 보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제기하고 있다. 없는 북한을 있게 해야하는 것이다. 일방성을 거세하는 문제이다.
문제는 더 있다. 전반적으로 보자면 문제는 ‘통일준비’가 거시적 차원의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방안은 전혀 없이 그저 아이디어 차원에서 나온 세부계획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한반도 종단열차 시범운행이나 남북겨레문화원 개설 등은 남북관계가 제대로 된다는 전제 속에서 비로소 가능한 것이지 남북관계가 안 좋으면 전부 실현가능성이 없는 것들이다. 더구나 그것들은 당장에는 5·24조치 위반 사항이다. 나진-하산 물류사업 등 남북 간 경제공동체 인프라를 구축하는 사업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것만으로도 ‘통일준비’들은 먼저 전제되어야할 남북관계 복원을 위한 전략적 접근은 전혀 없이 나오는 아이디어 수준에 불과하다는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남북관계복원은 현실적으로 금강산 관광 재개와 5.24조치 해제,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등을 그 핵심적인 문제로 안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전망이 마련되지 않은 가운데 시도되는 모든 ‘통일준비’들은 남북관계의 개선이나 발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들로 된다. 우리정부만의 일방적인 장밋빛 구상에 불과한 것이다.
남북관계는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8년째 사실상 파탄 상태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남북간의 대화는 지난 해 2월에 있었던 1차 고위급접촉 정도가 다이다.
우리정부의 통일관련 행보에 있게 해야할 것은 북한이고 없애야할 것은 북한의 반발이다. 양보이거나 배려조차도 아니다. 남북대화와 통일준비의 최소한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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