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같지 않은 북중관계의 본질적 성격
<분석과전망>일반적인 국가관계에서의 갈등인가 혈맹관계에서의 균열인가?
북중관계 악화설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존 케리 미 국무부장관이 중국에 대북압력을 요청했다는 것, 그리고 중국의 대북원유 수출이 통계상으로 9개월째 ‘0’으로 나오고 있는 것 등을 그 근거로 해서 나오는 주장들이다.
매년 10월 25일이면 북한과 중국이 6.25 한국전쟁 때 이른바 ‘중국인민지원군’이 참전한 일을 함께 기념해 왔었는데 올해의 기념식에는 북한의 참석이 없었다는 것이 강조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근거들이 미약해 과도한 주장이라는 반론도 만만치가 않다. 북중관계 악화설에 동원되는 근거들이 미약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것들은 북중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부정하는 논거로 사용될 수는 없다. 현실이 북중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자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현 시기 북중관계와 관련하여 중요하게 제기되는 문제가 있다. 북중관계가 예전 같지 않은 것이 갖고 있는 성격을 어떻게 규정해야하는가 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북중관계는 잘 알려져 있는 대로 이른바, 혈맹관계이다. 사실이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명제이다. 일반적인 국가들 사이의 일반적인 관계만으로 설명하거나 해명하기 어려운 많은 부분을 북중관계는 갖고 있는 것이다.
북중이 맺고 있는 그 혈맹관계는 그러나 국가적인 매 사안 마다 일괄적으로 다 관철되는 것일 수는 없다. 국제관계 속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일반적인 국가들끼리의 관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북중 간에도 얼마든지 갈등과 대립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혈맹관계라고 해서 일반적인 국가들 사이에 나타나는 수준과 방식의 갈등까지도 발생 자체를 원천적으로 막은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인공위성을 발사 하게 되는 경우에 중국이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에 동참하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중국이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에 동참하는 것은 국제무대에서 국력이 만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일이기 때문에 일단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범주의 문제이다.
이에 대한 북한의 기본 반응도 반발이기는 했지만 그러나 그 반발의 면면을 자세히 보면 수위가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원론적이거나 추상적인 것들인 것이다. 북한 역시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차지하고 있는 현실적 위상에 대해 적절하게 이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사안은 일부 전문가들의 손에 들어가면 북중갈등의 한 사례인 것을 뛰어넘어 크게 과대포장된 다음 언론 등에 화려할 정도로 부각되기 일쑤였다.
"제국주의자의 책동도, 대국주의자의 압력도 우리 인민을 굴복시킬 수 없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6월 28일자에 실린 기사 내용이다. 노동신문은 1면 전체에 게재한 ‘위대한 사상의 힘은 무궁무진하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혁명과 건설에서 언제나 자주적 대를 확고히 견지해 오신 대원수님들(김일성·김정일) 영도가 있었기에 제국주의자들의 그 어떤 강권 책동도, 대국주의자들의 압력도 우리 인민을 굴복시킬 수 없었다”고 한 것이다.
주체사상과 자주를 강조한 것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사상교육문제였다. “적들이 끈질기게 들이미는 자본주의 독소가 우리 지경을 넘어서지 못하도록 모기장을 2중, 3중으로 든든히 치면서도 제국주의 사상문화적 침투책동을 물거품으로 만들기 위한 주동적인 작전을 전개해야 한다”는 문구에서 확인된다.
북한이 중국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 틀린 것은 아니다. 북중의 혈맹관계 역사는 북중 간의 갈등까지도 동반했었던 것이다. 더구나 예로부터 원칙적 차원에서 북한이 중국에 대해 지적을 하고 비판을 한 것 또한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반북적인 언론들에서는 북중 간의 갈등이 표출된 것이라며 신속하게 대응을 했다. 대서특필을 한 것이다. 언제라도 그러했다.
그들은 마찬가지로 언제라도 객관적이지 못했다. 그들의 분석이 객관적이지 못하는 것은 기술적인 실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분석에서 객관성을 거세하고 대신 그 자리에 정치성을 개입시킨 결과인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반북이다. 미국 내 반북적인 인사들에게서 흔히 볼 수가 있다. 한국에서도 적지 않다.
반북적인 정치색을 띠고 있는 전문가들이 보여주고 있는 특징이다. 어떻게 해서나 북중관계가 나빠져서 북한이 국제적 고립에 빠지기를 희망하는 주관적 열망이 그곳에는 흠씬 베들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북중 간의 갈등이 일반적인 나라들끼리의 관계에서 볼 수 있는 갈등임에도 불구하고 혈맹관계에서 이는 균열로 보려는 정치적 의도가 작동한 결과이다.
반북적인 그 분석들은 반북공세의 재료로 쓰일 때는 그 유용성을 적잖게 발휘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다. 그것을 빼고 나면 아무짝에도 필요 없는 것으로 되고 마는 것이 그들의 분석이다.
북중관계와 관련하여 현실은 두 가지를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북중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하는 것이 그 하나이다. 또 하나는 북중관계가 예전 같지 않은 것은 일반적인 나라들 사이에 있을 법한 갈등으로 인한 결과라는 것이다.
국가들끼리의 일반적 관계에서의 갈등을 혈맹관계에서의 균열로 확대하려는 모든 시도는 그저 반북일 뿐이다. 북중악화설에 대해서 사람들이 확인한 것은 또 다시 표출되고 있는 반북의식의 또 하나의 형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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