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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권말선

[시] 허공을 딛고 서다

by 전선에서 2024. 8. 11.

허공을 딛고 서다

권말선

땅을 잃은 뿌리를 본 적 있는가
뿌리의 절반은 땅속에
나머지 절반은 허공에

맨발 드러낸 채 당황하던 뿌리는
어쩔 줄 몰라하다가
저와는 반대방향으로 뻗은
나뭇가지 올려보며 생각했을 게다
맨살 다 드러내고도 두려움 없이 당당히
철 따라 잎을 틔우고 꽃과 열매를 맺으려
허공을 더듬으며 뻗어 나는 가지
그를 보고 뿌리도 결심했을 게다
뒹구는 바위를 끌어안기로
그렇게라도 무너지지 않아야
저 당당한 가지를 받쳐주어야
앞으로도 맘껏 허, 공을 수놓을 테니
땅속에 안전히 뿌리내렸더라면
목도하지 못했을 찬연함이여
디딜 땅이 모자라는 두려움 보다
붙잡아 버텨주는 절반의 용기와
바라보며 끌어안고 의지하며
함께 꿈꾸는 동지가 있어
다시 우뚝 서는 나무, 나무여


바위 안고 버티는 뿌리. 구례 화엄사 아래 계곡에서 c)권말선
버티고 선 나무 c) 권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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