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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권말선

[시] 철원 조선노동당사에게 듣다

by 전선에서 2022. 10. 13.

철원 조선노동당사에게 듣다
- 1946~, 참된 해방을 기다리는

권말선


사람들이 나를 여기 세웠을 땐
1946년, 해방 이듬해였지
왜놈의 자식들이 다니던
소학교 쓸어버리고 나를 세웠어
만약… 해방이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그 학교 나온 아이들도
제 부모의 뒤를 이어
네 밥을 빼앗고 
네 숨을 누르고
네 혼을 비틀었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구나

해방, 해방의 감격!
열에 들뜬 사람들은
무엇이나 다 하려 했지
“인민의 나라, 새 나라 건설!
모든 것을 우리 힘으로!”
토론하고 공부하고 노래하는 그들 덕분에
나도 덩달아 행복했지
만약… 그런 시간이 중단되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면 어땠을까
외세도 다 떠나고
해방의 물결 온 땅에 넘실거렸다면
그때보다 몇 곱절 더 많은 이들이
그때보다 더 풍년을 누리며
그때보다 더 많이 웃으며
삼천리가 좁다 하고 오르내렸겠지

어느 날 저-기 아랫녘에서
독수리떼 새카맣게 날아와
불소낙비 쏟아낸 후
이곳은 어둠, 먹구름에 잠겼고
나도 온몸에 총포를 맞고
쓰러질 듯 흔들렸지만
겨우 정신 차리고 둘러보니 
이 넓은 땅
나만 덩그러니 남았더군, 나만
그 착한 사람들
그 많던 건물들
그 실한 농토들 다 사라져 버렸지
누가 그들을 죽였지, 누가?
이북으로 이남으로 갈라대는
짙은 경계선
누가 그었지, 누가?

너도 유심히 보았을 테지?
내 안 곳곳에 터를 잡고 자라나는 풀포기와
나에게 둥지 튼 새들
곱게 내려앉은 햇살을
그때 하늘에서 땅으로 퍼부어대던
살육과 파괴의 무기 속에서
흔적 없이 사라지던 사람들
혼이 되는 그 순간에
겹겹이 나를 에워쌌지
여기 나를 세웠던 바로 그들이
지금 풀포기로, 새소리로, 햇살로
떠나지 않고 깃들어 있단다
큰 사랑이란 바로 이런 거지
살아서도 또 죽어서도
함께 하는 거란다

전쟁 끝나고 내가 선 곳은 
이남 땅이 됐다더군
외세가 그은 쓸모없는 경계선 때문에
슬픔과 공포에 갇힌 사람들은
어색한 걸음으로 내 앞을 서성였고
총칼 대신 이념의 칼을 겨누며
서로를 경계하곤 하지
생각할수록 가슴 아픈 일이야

거기
조그맣게 서서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
너를 붙잡고 
간곡히 물어보고 싶구나
오래전 해방을 맞았던 그들은
깨끗한 혼으로 내게 깃들어 있는데
오늘
너의 해방은
어디에 있느냐?
외세 없는, 간섭 없는, 경계 없는
네 참된 해방은 어디 있느냐?
너는 언제 입을 열어
해방의 노래
통일의 노래 
부르고 또 부르려느냐?
언제쯤 소리높이
맑은 노래 들려주려느냐?
죽어서도 떠나지 않고
참된 해방만을 기다리는
삼천리 풀 꽃 새 볕 혼들의
오래고 묵직한 염원
언제쯤 이루려느냐, 
언제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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