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유효한 ‘옥토버 서프라이즈’
<분석과 전망>미국의 ‘종전선언 서프라이즈’와 그를 강제할 북의 ‘SLBM 서프라이즈’
북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미국의 일각이 제기했고 문재인 대통령이 받아들여 적극화하고 있는 이른바, 미국의 ‘옥토버 서프라이즈’가 역동적인 궤적을 그리고 있다. 추적해들어갈수록 상당히 흥미롭다. 물밑으로 가라앉아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옥토버 서프라이즈’를 다시 수면 위로 띄워 올린 건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지난 9월 22일 유엔 총회연설에서 종전선언을 언급한 것이다. 그에 앞서 9월 16~20일 있었던 김현종 안보실 2차장의 방미 그리고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의 9월 말 방미도 그 옥토버 서프라이즈에 힘을 보태는 행보로 보였다. 그럴 것이 김 본부장이 9월 30일, 스티브 비건 국무부 부장관과의 회담에서 종전선언에 대해서도 토론을 했다고 한 것이다.
그로 인해 미국의 옥토버 서프라이즈는 3차 북미정상회담이 아니라 종전선언을 내용으로 하는 것으로 교정됐다. 이를테면 ‘종전선언 서프라이즈’인 셈이다. 종전선언 서프라이즈는 마이크 폼페오 국무장관의 7~8일 방한과 맞물리면서 더욱 확고해지는 모양새를 띠었다. 김여정의 방미설도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일부 전문가들은 구체적인 그림까지 내놨다. 폼페오-김여정의 워싱턴 고위급회담을 정점으로 해 폼페오 장관과 강경화 외교부장관 그리고 리선권 외무상 3자가 판문점에서 만나 종전선언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상상력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 19에 확진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일거에 무너지고 마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 폼페오 장관의 방한도 무산됐다. 정세흐름에 민감한 전문가들은 그러나 ‘옥토버 서프라이즈’가 사라지지 않았으며 여전히 유효하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미국의 ‘종전선언 서프라이즈’가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만 자리에 또 다른 무엇인가가 올라올 것으로 그들은 예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눈길을 북의 신포 조선소와 그 인근에 있는 마양도에로 돌려놓고 있다. 그들은 어쩌면, 미국의 옥토버 서프라이즈를 ‘종전선언 서프라이즈’라고 명명한 것에 맞게 북이 ‘옥토버 서프라이즈’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며 그것을 ‘SLBM 서프라이즈’로 명명할지도 모른다.
신포 조선소는 원래 수상 선박 및 잠수함을 건조하는 규모는 크되 일반적인 조선소였다. 하지만 지난 7~8년 사이 SLBM과 관련된 각종 시설들을 속속 건설했다. 이로 인해 신포는 북의 명실상부한 ‘SLBM 전략기지’로 되었다. 그 인근에 있는 북 최대의 잠수함 기지가 마양도다. 한미군당국은 마양도에 잠수함 20~30척 가량이 배치돼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30척은 북 전체 잠수함(정)(70여척)의 30~40여%에 해당된다. 신포조선소와 마양도 잠수함 기지는 이처럼 북의 SLBM 전략거점이다.
북의 SLBM 전략거점이 북미대결전에서 발휘하게 되는 정세구성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위력적이다. 북은 6번의 핵 시험을 했고 사거리 1만3000㎞의 화성-15형 ICBM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다. 북이 미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핵 탑재 ICBM을 보유했다는 건 북이 핵 보유 전략국가라는 걸 의미한다. 하지만 북이 핵보유 전략국가로서 확보하고 있는 객관적 위상은 아직까지는 미미하다. 북이 핵보유 전략국가로서 더 높은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SLBM 전력 강화를 해야한다. 핵심은 긴 사정거리를 가진 SLBM를 탑재하고 긴 항속거리를 가진 대형 잠수함을 보유하는 일이다. 이른바, 안정적인 ‘2격 능력’을 갖는 일이다. ‘2격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인도 등 마사일 6대강국 밖에 없다.
지난 8월 국회에서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정경두는 북의 신형 잠수함 건조설을 내놨다. 지난 해 7월 북이 공개한 개량형 잠수함과는 다른 것이었다. 한미군당국이 말하는 개량형 잠수함은 SLBM 3발 가량을 탑재할 수 있는 3000t급이다. 북 신형 잠수함 건조 징후는 4년 전 쯤 처음으로 노출됐다. 당시 미국의 대북 전문매체 38노스가 신포조선소 야적장 사진을 찍어서 확인한 것이다. 그에 대해 군당국은 길이 90m 이상으로 배수량은 4000~5000t급, SLBM은 6발 가량을 탑재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괌과 하와이는 물론 잠수를 하면 미 본토까지도 안정적인 사정권에 둘 수 있는 능력이다. 다른 한편, 일부 전문가들은 핵추진 잠수함 건조설까지 내놓고 있다.
북의 SLBM 전략거점이 겨냥하고 있는 곳은 오직 미국이다. 그 위력은 미국이 오랫동안 누려왔던 핵패권에 치명적인 균열을 내고 당장엔 미국이 가하는 온갖 대북적대를 한꺼번에 무력화시키는 정치안보기제가 된다. 이른바, ‘게임체인저’다. 그만큼 그 의미는 크며 또한 매우 구체적이다. 종전선언이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중단시킬 수 있는 결정적 조건이라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정세는 그렇듯 단순하게 혹은 기계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힘과 힘이 부딪혀 위력한 쪽이 정세 향방을 결정하는 것이다.
종전선언만으로 구축되는 한반도 평화체제는 언제라도 깨질 수가 있어 공고한 평화체제가 아니다. 종전선언은 자칫, 평화협정 그리고 주한미군 철수를 늦추는 정치기제로 왜곡될 가능성을 다분히 갖고 있다. 추상적인 우려가 아니다. 종전선언은 평화협정을 멀리 밀어둬 이른바 미국 일각과 한국사회의 개혁진영이 추구하려는 ‘평화공존론’ 즉 ‘양국체제론’의 조건으로 얼마든지 악용될 수 있는 것이다.
종전선언은 원래대로 평화협정을 여는 문 즉,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의 결정적 조건으로 되어야만이 의미가 있다. 중요한 것은 종전선언을 미국이 원하는 기조로 진행되게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공조에 복무하게 해야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담보가 북의 ‘SLBM 서프라이즈’다. 북의 SLBM 강화전략은 일반적인 핵전력 강화활동이지만 현 정세에서는 미국의 ‘종전선언 서프라이즈’를 강제하는 결정적 기제로 작동하게 된다.
북은 지난해 7월 23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김정은 동지께서 새로 건조한 잠수함을 돌아보셨다”며 건조된 잠수함이 “동해 작전수역에서 임무를 수행하게 되며 작전배치를 앞두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는 그로부터 약 3개월 뒤인 10월 5일 ‘북극성-3형’ 신형 SLBM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물론, 잠수함이 아닌 수중 바지선에서 발사를 한 것이었다.
북의 1차 ‘SLBM 서프라이즈’로 상정해 볼 수 있는 것이 실전 배치된 새로운 SLBM을 10월 10일 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공개하는 일이다. 북의 2차 ‘SLBM 서프라이즈’는 11월 3일 미 대선 이전에 또 다른 새로운 잠수함으로 또 다른 새로운 SLBM을 시험발사하는 일이다.
북의 ‘SLBM 서프라이즈’는 미국의 핵패권에 치명적인 균열을 내고 미국의 대북적대를 무력화시키는 정치안보기제라는 점에서 트럼프 후보나 조 바이든 후보를 가리지 않고 구사될 일관된 전략이다. 이른바 ‘레드라인’을 넘어서는 것은 아니면서도 미국의 ‘종전선언 서프라이즈’를 강제할 결정적 기제인 것이다.
북은 머지않아 미국의 대북적대를 없애기 위해 ‘SLBM 서프라이즈’에 돌입하게 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종전선언 서프라이즈’ 등이 강제적으로 끌려나오는 매우 자연스러운 정치풍경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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