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5합의와 ‘코리아 포뮬러’
<분석과 전망>대결이냐 대화냐-10월, 큰 갈림길 앞에 선 미국
자주통일연구소 한성
갑작스럽게 부각되는 ‘코리아 포뮬러’
8.25남북합의가 나온 뒤 정부는 매우 특기할 만한 제안을 한다.
8.25합의를 발판으로 삼아 ‘남북 간 핵 협상’을 하자고 한 것이다. 8월 28일, 북핵 6자회담 한국 수석대표인 황준국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통해서였다.
28일자 한겨레신문 보도에 따르면 황 본부장은 한 세미나에서 “이번 남북 간 합의 이행 과정이 잘 진행되고 분위기가 성숙될 경우 핵문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빠른 시일 내에 핵문제도 남북 간에 직접 논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소 생뚱맞기는 하지만 이른바 ‘코리아 포뮬러’다. ‘코리아 포뮬러’는 ‘6자회담을 우리가 주도해서 풀어간다는 구상’이다.
‘코리아 포뮬러’가 우리 외교가에서 정식화되어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4년 말 즈음이었다. 외교부 장관 윤병세가 한 방송 대담에 나와 언급을 했다. 그 때 윤 장관은 황준국 본부장이 그 ‘코리아 포뮬러’를 구상 주도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에 이르는 통로가 북미 양자협상이라고 보지 않는다"
러셀 차관보가 2014년 12월 16일 워싱턴 DC 소재 브루킹스연구소 주최 세미나에서 한 말이다.
특별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은 당시 예사롭지 않게 취급되었다. 미국이 시도했던 북한과의 물밑접촉이나 비밀대화들이 성과 없이 끝난 뒤에 그 말이 나왔다는 것 때문이었다.
러셀 차관보의 그 말이 있기 한 달 전 미국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의 방북이 결행됐었다. 하지만 그 행보는 북한에 억류됐던 케네스 배, 매슈 토드 밀러 씨를 데리고 나온 것을 제외하고 북미관계 발전과 관련된 그 어떤 내용확보에도 실패했다.
이는 ‘코리아 포뮬러’가 북미 교착상태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것임을 보여준다.
정부입장에서 접근하면 북미핵접촉에서 별다른 성과가 나오지 않아 미국이 손을 잠시 떼는 조건에서 그 잠시 동안이라도 한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지 않겠는가 하는 문제의식을 담은 것이 그 ‘코리아 포뮬러’로 보이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 황 본부장에게서 ‘코리아 포뮬러’가 언급되는 것도 그 때문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의 미 시드니 사일러 6자 회담 특사가 사퇴를 했다. 사일러 특사는 대북채널인 뉴욕채널의 주체이기도 하다.
지난해 9월 사일러가 특사로 기용되자 많은 전문가들이 주목을 했었다. 2011년 5월부터 3년 넘게 백악관에서 한반도담당 보좌관을 지내는 등 실력 있는 한반도 전문가여서였다. 비밀 방북도 여러 차례 한 인사였다.
사일러 사퇴에 대해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임기 말까지 북한과의 관계 진전을 시도하지 않을 것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사 사일러의 용도가 한계에 도달해 폐기한 것이라는 부연설명도 나왔다.
그에 따르면 최고의 대북인적 자원인 사일러 특사를 폐기해버릴 정도로 지금의 북미관계는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셈이다.
‘코리아 포뮬러’가 8.25합의와 결부되면서 북미대화의 징후로 될 것인가
‘코리아 포뮬러’는 그렇지만 북미교착상태 보다 북미접촉과 더 관련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2011년 초 당시 이명박 정부는 6자회담 재개 과정이라면서 3단계 접근법을 제시했다. 남북대표 접촉→북·미회담→6자회담 재개였다.
북미회담 앞에 남북접촉이 배치된 것이 특기했다. 6자회담의 틀에서 남과 북의 위상을 한껏 높혀낸 모양새였다. 중국과 러시아 일본 등은 주변부로 밀어내고 우리민족끼리와 미국이 부각되는 구도다.
이를 북한은 곧바로 수용했다. 리용호 북 외무성 부상이 7월 22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위성락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회동을 한 것이다. 6자회담이 열리지 않는 기간에 남북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이 개최되는 것은 처음이었다. 당연, 주목을 끌었다.
북미관계정상화의 또 하나의 로드맵이었던 2012년 2,29합의가 나온 것은 그로부터 몇 개월 뒤였다.
‘11년 발리 남북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은 ‘코리아 포뮬러’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코리아 포뮬러’는 애초, 북핵문제에 개입하려는 우리정부의 적극적 태세였다. 그렇지만 ‘코리아 포뮬러’가 북미핵양자협의에 개입력을 가질 수 있는 체계라고 보는 전문가는 없다.
‘코리아 포뮬러’는 사실, 생뚱맞은 것이다. 핵보유국과 핵 없는 나라 간의 협상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야 원리상 당연하다.
남북 간 핵협상이라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성립되지 않는다. 북핵의 본질적 성격은 남북 간 문제가 아니다. 북핵문제의 본질이 북미대결전의 중심이라는 현실은 남북 간 핵협상을 성립시키지 못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되는 것이다.
이처럼 ‘코리아 포뮬러’는 실체적 허구인 것이다. 그렇지만 북한이 개입해 ‘코리아 포뮬러’가 정치적 실체로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11년 7.22 발리 남북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이었다.
남북 6자회담대표 회동은 남북 간에 최소한의 신뢰가 형성되고 북미대화가 진전이 예상되는 경우라면 북한이 남한에 어떤 배려를 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또 하나의 역사적 사례가 되었다.
지금 시기 황 본부장이 ‘코리아 포뮬러’를 8.25합의와 결부시켜 부각시키는 것은 마치 ‘11년 남북비핵화수석대표 회동이 이루어지고 그 몇 개월 뒤 2012년 2.29합의가 되는 일련의 과정들을 연상시킬 만하다.
물론, 사실상 없어진 6자회담이 다시 재개될 수 있는 징후는 어디에서도 확인되지 않는다. 북미대화도 어디에서 그 계기를 찾게 될지 어떤 기미도 드러내놓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리아 포뮬러’가 느닷없이 부각되는 것을 두고 북미 간 새롭게 시작되고 있을 지도 모르는 물밑접촉의 한 표현으로 보고 싶어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의 고도화는 북핵문제 해결에서 이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체계를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북미관계는 어느 순간 전혀 모르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오지는 않았다. ‘코리아 포뮬러’가 8.25합의와 연계되면서 북미접촉의 여부를 드러내 보여주게 될지는 조금만 더 지켜 볼 일이다. 오래 걸릴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북한이 인공위성도 쏘고 4차핵시험도 할 수 있다는 10월이 점점 다가오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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