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그 후
권말선
목숨까지 위협하며 퍼부었던 폭설
산비탈 응달에만 희끗 남았을 즈음
살기 앞세운 계엄 폭설처럼 쏟아졌다
요망한 것들의 사악한 반란으로
오천만 생가슴은 물론이고
지난날 이 땅의 목숨이었던
어여쁜 산과 강, 작은 길
거기 깃든 나무와 풀과 돌
하늘에 의지한 별들까지도
그만 옛 기억에 움푹
찔리고 말았다
제 아무리 두꺼운 폭설이라도
설령 넘어지고 미끄러진대도
아파하고 때론 웃어가며
쓸고 밟고 던지고 굴리다 보면
결국엔 다 사그라지고 말듯
계엄이라는 검은 폭설도
그렇게 없애려던 것일까
선뜻 그 속으로 뛰어든 이들은
아아, 두려움 대신 발랄한 저항으로
아아, 주저함 대신 흥겨운 분노로
밀어버렸다, 저 반란 따위
막아버렸다, 아주 단숨에
사랑, 아니겠는가
나와 우리를 둘러싼 모든 이들을 향한
예의, 아니겠는가
먼저 가신 이들의 뜨거운 목숨에 대한
약속, 아니겠는가
오늘과 내일 먼 미래까지도 지켜내겠다는
경고, 아니겠는가
저 사람 아닌 것들의 발악 용서치 않겠다는
아직은 겨울
한기도 살기도 여전하다마는
그러나 두렵지 않은 것은
해를 거듭거듭하여 밝혀 온 촛불이
이제는 온 국민 가슴에 켜졌기 때문
역사의 맥과 한 덩이로 뭉쳤기 때문
온 세상 정의가 우리 편이기 때문
몇 겹의 폭설이라도 다 녹여내고
겨울의 빗장마저 다 풀어내고
만들리라, 새봄을 만들리라
심으리라, 새 씨앗을 심으리라
우리, 결국 결국 이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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