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눈 내리던 날의 기억
권말선
한겨울,
새벽인데
잠에서 깼다.
그대를 만나기로
약속된 날
설렘을 못이겨
혼자 몰래
마당으로 나왔다.
아,
차갑고도
따뜻한 기운!
세상이
두껍고 하얀 담요 아래
고요히도
잠들어 있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깨끗한 눈길을 걸어
가로등 환한
그 아래에 섰다.
눈은
아직도 모자라단 듯
소록소록 내리고
내리고 또
쌓였다.
불빛을 가만히
올려다 본다
비밀을 들킬새라 하늘은
아득한 곳으로 달아나 버리고
눈송이만 보송보송
연신 내렸다.
그 날은 새벽부터
몹시 설레었고
꿈에도 그리던 그대를
만났으리라
우리는
영화를 보았거나
산책을 했거나
차를 마셨으리라.
허나
세월 지난 오늘에 와
기억 남는 건,
가로등
붉은 빛 사이를
무심히 흔들리며
천천히 내리고
내리던
하얀 눈송이
눈송이들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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