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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권말선/그이의 환한 미소(두번째 시집)

[시] 오랜만에 서점에 들러

by 전선에서 2016. 2. 6.



오랜만에 서점에 들러


                권말선


어릴적엔 서점에 가면

이 서점 책을 다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었지

몇 날 몇 일이고 서점에 앉아

책만 읽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었지

나중에 커서 서점 주인이 되면

손님을 기다리는 한가한 시간 

서점 책을 죄다 읽으리라

막연한 상상에 즐거워했더랬지

그랬었어, 어릴 때


인터넷으로 책을 사고

중고로 책을 사고

강연장에서 책을 사고

그러는 사이 점점 서점은 멀어지다

약속시간이 남은 어느 날

시간 떼우러 들른 

광화문 한 서점에서 

그만 놀라 길을 잃었지

서점이 책만 파는 곳이 아닌

만물상이 되어 있었던게야

눈이 휘둥그레져 돌아다니다

책 아닌 펜 앞에 멈춰 서서

살까나 말까나

한지에 펜으로 시를 써 볼

궁리에 빠져 요것조것 쳐다보다

흠, 나중에 인터넷으로 사야겠다

다시 서점을 배신하고 돌아섰지

너 그럴 줄 알았다며 원망도 않는

기대도 안했다며 붙잡지도 않는 

저 서점은 몇 년 후엔 다시

만물상 아닌 또 무엇으로 바뀌어있을까

어째 그게 다 내 탓인 것도 같고

너무 변해 서먹하기도 한

그런 맘으로


술이 기다리고

시가 기다리고

사람이 기다리는 곳으로

낮술에 슬쩍 기댄 정신 붙들며

터덜터덜 만물상을 빠져나왔지

근데, 그 펜 살걸 그랬나

그 놈으로 한지에 시를 쓰면

어쩐지 멋있을 거 같았는데

어쩐지 폼 날 거 같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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