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전망> ‘새로운 진보정치’ 혹은 ‘체제교체’에 대한 한 노동자의 비판적 접근
“자주가 왜, 없지?”
8월 5일 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가 대선 출마선언문을 발표했을 때 진보당 당원인 한영국 용접공은 그런 생각을 했다. 출마선언문엔 민주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촛불항쟁이 현 시기 민주주의 과제로 제기한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에 대한 구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 부각돼 있는 건 평등이었다. 출마선언문엔 또한 통일 보다는 평화가 더 강조돼 있었다.
1.새롭게 제기되는 노동과 평등 그리고 평화
1)노동 중심의 나라
출마선언문은 모든 것의 중심에 노동을 세우고 있었다. 슬로건도 ‘일하는 사람들의 정치혁명’이었다. 정치교체나 세대교체 따위가 아니라 체제교체의 비전이라고 했다. 노동 중심성을 확고하게 체계화하겠다는 의중은 곳곳마다에 뚝뚝 흘러넘쳤다. 수사는 정곡을 찌르는 내용에 걸맞게 화려한 외양을 띠고 있었으며 인문학적 감수성까지 곁들여 선명하고도 깊었다. 국가발전 비전으로 제시한 5가지 공약 중에서 노동이 무려 세 가지나 됐다.
단연 돋보이는 건 ‘임금삭감 없는 주 4일 노동제’였다. 소득세 최고세율을 45%까지 높이고, 300대 대기업에 대한 법인세율도 30%로 인상하며 30억원 이상의 상속과 증여, 3억원 이상의 부동산 양도소득에 대해서도 90%의 높은 세율을 적용해 재원을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노동조합이 상식인 나라’ 또한 돋보였다. “살기 좋다고 소문난 나라들은 모두 노조 조직률이 높거나 단체협약 적용률이 높은 나라”라며 “산별, 지역별, 업종별 교섭을 보장하고 단체협약의 적용 범위를 급진적으로 확대하겠다”고 했다. 노동조합이 상식이 돼야 기본소득 없이도 사회보장과 안전망을 넓힐 수 있다고도 했다.
출마선언문이 노동 중심성을 얼마나 튼튼히 틀어쥐고 있는지는 민주당 집권 15년에 대한 평가에 노동문제를 기본 잣대로 세운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김대중 정부에 대해 대량해고를 양산하는 ‘정리해고’를 한 정권이라고 했으며 노무현 정부에 대해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기간제법’을 도입한 정권이라고 했다. 그리고 민주당 3기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도 ‘최저임금법’을 개악하고 ‘탄력근로제’를 확대해 노동자의 삶을 아예, 밑바닥에서부터 무너뜨린 정권이라고 했다. 반노동 집권이라고 직격을 한 것이다.
2)땅을 사고 팔지 못하는 나라
출마선언문에 또 하나 돋보인 것이 ‘땅을 사고 팔지 못하는 나라’로 만들 것이라고 한 대목이었다. 토지공개념을 전면 실현하겠다는 것이었다. 정부 소유의 땅을 확대해야한다면서 “정부가 한 번 사들인 땅은 누구도 소유하지 못하게 해야 집값을 잡고 서민들에게 저렴하게 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는 그것으로 “부동산 투기를 없애고 자산 불평등 시대를 끝내겠다”고 일갈했다.
출마선언문은 평화와 통일의 정책 기조로 “평화로운 한반도, 통일된 나라”를 제시했다. 4자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을 강조했으며 평화군축 방안 관련해서는 모병제 실시와 군비경쟁 중단을 언급했다. 그리고 2025년에, 연방통일공화국 건설의 1단계인 남북연합 시대를 열 것이라고 했다.
3)노동을 중심에 놓고 그것에 평등과 평화를 아우르는 새로운 진보정치
선명했다. 핵심 기조는 노동자가 중심이 돼 체제를 바꾸고 세상도 노동자 중심의 평등으로 일구자는 것이었다. 파격적이었다. 한씨는 진보정당의 대선 후보가 노동문제를 가장 높은 자리에 올려 전면화하고 있는 것에서 실현 가능성 문제와 별개로 참신함도 느꼈다. 마치, 지난 ‘97년 진보적 대중정당 ‘국민승리 21’의 대선후보로 나섰던 권영길 전 민주노총 위원장에게서 받았던 느낌과 비슷했다. 언뜻 보면 노동당 강령 같았다. 현 시기 시대적 의제인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 체계를 훌쩍 뛰어넘는 평등 노선이 강조돼 있는 데선 사회당 강령 같은 느낌도 들었다. 슬로건 그대로 ‘일하는 사람들의 정치혁명’이었고 ‘체제 변혁론’이라고 해도 될 법 싶었다.
출마선언문은 그렇듯 노동을 중심에 놓고 그것에 평등과 평화를 아우르는 새로운 진보정치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었다. 사실, 약간은 예고됐던 것이었다. 지난 해 7월 진보당 지도부 선거과정에서 한 후보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자주·민주·통일은 구리다”는 입장을 내놨었다. 또 다른 후보는 “독재 대 민주 구도가 무너졌다”면서 “미래의 진보가 추구할 핵심 가치는 노동”이라고 강조를 하고는 “노동 존중이 아니라 노동 중심 사회로 대담하게 나아가고, 궁극적으로는 노동해방을 지향해야 한다”고 했었다. “당 강령을 손질해야 한다”면서 “민주보다는 평등, 통일보다는 평화 의제를 제기해야 된다”는 획기적인 말이 나왔던 것도 그때였다.
2.한국 민주주의는 완성되지 않았으며 현 시기 민주주의 전선은 반보수개혁화 전선
출마선언문이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 보다는 평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민주와 독재 구도가 무너졌으므로 민주를 평등으로 대체해야한다는 진보당 일각의 주장과 더불어 6월항쟁 이후 한국 민주주의가 어떤 발전과정을 거쳤으며 현재 어떤 수준에 이르러있는 지에 대해 다시한번 고찰해 볼 것을 제기하고 있다.
1)민주주의의 새로운 전선, 반독재민주화 전선에서 반보수개혁화 전선으로
6월항쟁은 독재시대를 종식시켜 절차적 민주주의를 쟁취했지만 내용적 민주주의까지 쟁취한 것은 아니었다. 그로 인해 한국 민주주의 전선은 독재와 민주 구도에서 내용적 민주주의를 둘러싼 대결인 개혁과 보수 구도로 전환됐다. 한국사회는 6월항쟁을 통해 반독재민주화 전선을 해소하고 새로운 민주주의 전선으로 반보수개혁화 전선을 정립한 것이다. 반보수개혁화 전선은 보수정권 하에서는 반보수 투쟁이, 개혁정권 하에서는 개혁투쟁과 반보수투쟁이 중심이 된다.
반보수개혁화 전선은 6월항쟁 직후엔 전혀 짜여지지 못했다. 김영삼.김대중 양김분열로 반보수개혁화 전선은 아예 성립되지 않아 노태우 정부가 들어섰으며 이어 김영삼의 보수대연합까지도 허용했던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 투쟁 역사는 이를 개혁진영과 진보진영이 반보수개혁화 전선에서 범한 전략적 오류로 기록해놓고 있다.
보수정권 하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반보수 투쟁으로 2010년 지방선거에서의 반보수대연합을 들 수 있다. 민주당을 필두로 국민참여당, 창조한국당과 시민단체 등 개혁진영과 민주노동당을 비롯해 민주노총과 전농, 한국진보연대 등 진보진영이 다 망라됐다. 그 결과 지방선거에서 개혁과 진보가 의미 있게 약진을 했다.
개혁정권 하에서의 성공한 반보수개혁화 전선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2004년 17대 총선에서 선거제 ‘1인 2표제’ 도입이다. 이로 인해 진보정당 민주노동당이 10석을 얻어 제3당으로 약진했다. 민주노동당의 약진은 조봉암의 진보당이 해산된 이후 40여년만에 진보정치를 부활시켜낸 역사적 진전이었다. 민주주의 완성을 바라는 개혁적 국민의 열망이 오롯이 표출된 것이었다.
개혁정권 하에서의 반보수개혁화 전선은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제대로 꾸려지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 같은 경우, 새만금 간척사업 강행, 기업주 편향적인 노사관계 로드맵, 재벌규제 해제 정책 등을 펼쳤다. 심지어는 한미FTA 추진을 비롯해 이라크 파병,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인정과 평택 미군기지 제공 등 실제 보수진영과 구분되지 않는 정체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는 더 나아가 한나라당에 연정을 제기해 반보수개혁화 전선을 약화시키는 오류까지 범했다.
반보수개혁화 전선의 미약은 곧바로 보수정권의 재등극 그리고 민주주의 퇴행을 불러왔다. 대표적인 것이 이명박 정부 때의 천안함 사건과 박근혜 정부 때의 통합진보당 해산이다. 이 중 특히 통합진보당 해산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가보안법에 의한 통합진보당 궤멸은 보수진영이 분단체제에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있는 지, 개혁진영 또한 분단체제에 얼마나 촘촘히 포박돼 있는지 총체적으로는 한국의 분단체제가 얼마나 공고한 지를 가장 높은 수준에서 보여줬다.
2)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은 반보수개혁화 전선의 중심
개혁적인 국민들은 개혁진영과 진보진영이 보수의 반격을 무력화하지도 개혁을 진척시키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을 방관하지 않았다. 또 다시 전선에 나서 촛불항쟁을 전개한 것이다. 촛불항쟁은 보수정권을 무너뜨리면서 개혁.진보진영에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을 반보수개혁화 전선의 중심으로 움켜쥘 것을 제기했다. 개혁을 철저히 전개해 보수를 궤멸적 수준으로 약화시키고 그를 통해 한국사회 민주주의를 진전시킬 것을 시대적 의제로 제기한 것이다.
그렇지만 문재인 정부는 촛불항쟁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질 못했다.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비롯해 언론개혁 등에서 성과를 내지 못했으며 부동산정책 같은 경우는 완전히 실패했다. 그리고 최저임금 대폭 인상과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을 핵심 수단으로 하는 ‘소득주도성장 전략’으로 사회 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고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으로 ‘노동존중사회’를 실현하겠다고 한 공약을 2018년 하반기 때 사실상 폐기해버렸다. 문재인 정부가 조건이 그 어느 때보다 좋았음에도 개혁을 진전시키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반보수개혁화 전선을 제대로 치지 못한 것은 적폐청산.사회대개혁을 사회발전이 아니라 정략적 관점으로 접근한 문제 그리고 무능 탓이었다.
진보진영 역시 반보수개혁화 전선을 제대로 꾸리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진보진영은 문재인 정부에 대해 견인을 목표로 하는 비판이 아니라 거의 내치는 수준의 적대적 타격 태세를 취했다. 반보수 투쟁에 나선 시민단체에 대해 그들이 개혁진영에 포괄돼 있다는 것을 이유로 침묵하거나 반대하기도 했다.
그에 대한 총적인 귀결이 반보수 투쟁에서의 철수였다. 치명적이다. 분단체제인 한국사회에서 반보수개혁화 전선이 반독재민주화 전선에서처럼 개혁진영과 진보진영을 그 주체와 동력으로 하게 된다는 것은 가히 철리다. 진보진영이 반보수 투쟁에서 철수한 것은 개혁진영에 대해 일면 타격 일면 연대라는 분단체제 하에서의 통일전선 원리를 사실상 부정한 것으로 명백히 전략적 오류다.
민주주의 역사는 문재인 정부 하에서 반보수개혁화 전선이 제대로 꾸려지지 못한 결정적 원인으로 개혁진영의 한계와 무능 그리고 진보진영의 전략적 오류를 지목하게 될 것이다.
적폐청산.사회대개혁에 대한 개혁진영의 한계와 무능 그리고 반보수 투쟁에서 철수한 진보진영의 전략적 오류가 불러온 후과는 엄중하다. 보수진영은 촛불항쟁 이후 행정권력에 이어 의회권력까지 내줬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기득권을 발휘하면서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을 완강히 저지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힘 당이 100석 넘는 국회의석을 점하고 있고 국가보안법이 존치돼 있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가세되고 있는 것이 이른바 윤석열.최재형 현상이다. 윤석열.최재형 현상은 보수가 진영을 가리지 않고 넘나들며 활동하게 되는 보수의 존재방식을 보여준다. 그들은 개혁진영에 있을 때는 개혁을 저지했었고 적폐의 복판으로 들어서서는 적폐의 부활을 적극 도모하고 있는 중이다.
이 모든 것들은 개혁정권은 반보수 투쟁에 기반해야만 창출할 수 있으며 개혁정권 수립 이후 개혁은 개혁진영과 진보진영이 전략적 연대로 보수진영을 궤멸적 수준으로 약화시키는 방향을 견지할 때 진전될 수 있다는 걸 또렷이 실증해주고 있다. 다른 나라엔 흐릿하지만 분단체제인 한국사회엔 또렷한 특성이다. 4월혁명과 광주 5월민중항쟁, 6월항쟁 그리고 촛불항쟁 등 수많은 전민항쟁을 조직했음에도 한국 민주주의가 아직도 완성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미국의 한국에 대한 지배력이 관철되고 있는 분단체제와 결부시키지 않고서는 온전히 설명할 수가 없다. 진보진영이 일궜던 촛불항쟁의 정치적 성과가 개혁진영에만 귀결되었던 것도 한국사회에 분단체제 원리가 작동한 결과다.
3) 평등은 개혁과 진보의 결합에서
한국 민주주의는 내용적 민주주의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복잡할 게 없다. 진보정치인 이석기 의원이 ‘혁명조직(RO) 총책으로 북한의 대남 혁명론에 동조하면서 대한민국 체제를 전복하기 위한 구체적 실행 행위를 모의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당하고 내란선동죄 등을 확정받아 8년 넘게 구속당해 있는 것을 비롯해 통합진보당이 하루아침에 해산당했던 것 그리고 최근엔 이미 오래 전 박물관에 갔어야 했던 국가보안법이 또 다시 예의 그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 등에서 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이것들은 분단체제인 한국사회가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으로 민주주의를 진전시켜야하는 단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한국사회 발전이 개혁진영과 진보진영이 개혁적 대중과 함께 보수진영을 궤멸적으로 약화시키는 반보수개혁화 전선에 의해 담보된다는 것도 선명히 알려주고 있다. 진보정치 발전의 길도 개혁정치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는 것에서가 아니라 반보수 투쟁에서 열리게 된다. 일찌기 민주노동당 약진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민주노동당은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 슬로건이나 ‘평등’ 노선 등으로 개혁진영과의 차별성을 부각시켜서가 아니라 개혁을 보수진영을 약화시키는 방향에서 전개했기 때문에 약진했던 것이다. 진보진영의 진출은 오직 보수진영의 궤멸적 약화에서 그 결정적 계기를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진보당이 슬로건으로 민주노동당이 내걸었던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과 비슷한 ‘일하는 사람의 정치혁명’을 걸고 노선 역시 민주노동당의 ‘평등’으로 채택하는 것은 따라서 한국사회 민주주의 현주소를 잘못 짚고 현 시기 주요전선이 반보수개혁화 전선이라는 현실을 외면한 것으로부터 나온 잘못된 주장이다. 이는 자칫, 진보진영 다수가 반보수 투쟁에서 철수하고 반보수개혁화 전선에서 이탈한 것만큼이나 심각한 전략적 오류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평등은 본디 한국사회의 민주주의가 완성될 즈음 즉, 보수진영이 궤멸적 수준으로 약화되는 지점에서 부각될 담론이다. 그리고 보수진영의 궤멸적 약화는 저절로 될 수 있는 게 아니며 개혁진영과 진보진영의 반보수개혁화 전선이 공고히 꾸려질 때에야만이 맞이할 수 있는 현실이다. 한국사회가 분단체제인데다가 보수진영의 건재와 반발이 강력할 뿐 아니라 개혁진영의 한계와 무능이 또렷하고 진보진영의 힘이 미약한 현 상황에서 민주는 결국, 평등으로 대체될 수가 없다. 평등은 양극화가 심화된 현 시기 민주 실현의 근본 담론으로서 위상을 갖고 있는 만큼 이후 개혁과 진보의 반보수개혁화 전선에서 부상될 계기를 맞게 될 것이다.
3. 통일은 없고 평화가 있으되 그 평화는 분단체제에 기반한 평화공존론이자 양국체제론
출마선언문이 평화를 강조하면서 남북연합시대를 열겠다고 한 것은 일반 평화운동진영의 대표적 논리인 군비경쟁 중단과 개혁진영의 지론인 국가연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운동의 본질에 대해 다시한번 고찰할 것을 제기하고 있다.
1)분단체제 해체 비전이 없는 한반도 평화
분단체제 하에서 남과 북이 함께 누릴 수 있는 평화는 사실, 존재할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분단체제가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간 각축장이 될 수밖에 없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숙명에 기초해 형성됐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미국의 한반도지배전략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분단체제다. 때문에 미국이 유지시키고 있는 분단체제 하에서 평화는 설령 구축된다하더라도 온전히 관리될 수도 제대로 실현될 수도 없는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평화일 뿐이다.
한반도 평화는 단정컨대,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철회 즉, 미국의 각종 침략전쟁 연습 중단을 비롯해 한국에 배치해놓은 침략 무력과 무장 장비들 철수에서만 보장될 수 있다. 이는 한반도 평화가 분단체제 해체 즉 통일에 정밀하게 포치될 때에야만 온전하고 항구적으로 담보될 수 있다는 걸 확정해준다.
미국의 한반도지배전략을 약화시키는 구상을 담지 못하고 있는 평화는 평화가 아니다. 환상 내지는 정략적 허구일 뿐이다. 평화단체나 개혁진영이 분단체제를 인정하면서 내온 평화론에서 또렷이 확인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출마선언문이 언급하고 있는 ‘평화로운 한반도’는 미국의 한반도지배전략을 애써 회피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성을 갖기가 힘들다. 출마선언문의 군비경쟁 중단이 ‘빈 말’처럼 보이는 이유다.
2)남북연합은 양국체제론에 기반한 한반도 평화의 틀
출마선언문이 2025년에 ‘남북연합 시대’를 열겠다고 한 것 또한 현실성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남북연합이라는 개념은 1989년 노태우 정부의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서 처음 나왔다. 화해와 협력인 1단계와 1국가 1체제 통일인 3단계 사이에 위치해있는 것으로 ‘남북 간 체제의 차이와 이질성을 감안, 경제·사회공동체를 형성·발전시키는 2체제 2정부 단계’이다. 그 사례로 들만한 게 유럽연합이다. 남북연합에 대해 통일연구원은 ‘국제법의 규율을 받지 않고 국내법에 준하는 특수한 법적 유대를 갖춘 특수한 결합체’인 낮은 단계 국가연합(커먼웰스:Commonwealth)으로 설명하고 있다. 정확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올 8.15기념사에서 ‘평화의 제도화’를 언급했다. 그리고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19일 '2021 한국정치세계학술대회'에서 남북협력을 통한 평화경제의 구상으로 '평화뉴딜'을 제안했다. 다, 남북연합의 구체들이다. 이것들은 남북연합이 통일 방안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의 틀로서 위상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정해준다. 월스트리트의 투자자 짐 로저스가 오래전부터, 남북이 천문학적인 국방비를 생산적인 자원에 대신 활용하기를 바란다며 남북연합을 제기를 했던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평화의 제도화’와 ‘평화 뉴딜’에서 간파할 수 있듯 남북연합은 통일이 아니라 평화공존론 양국체제론에 기반해 있다. 남북이 미국과 상관없이 평화를 구축해 공존하자는 환상 같은 게 평화공존론이며 그에 기초해 복잡하고 어려운 통일은 저 멀리 밀어두고 남과 북이 오랫동안 평화적인 나라 사이의 관계를 맺자는 것이 양국체제론이다. 다들 새로운 분단체제론들이다. 분단체제의 형태를 바꿔 어떻게 해서든지 주한미군을 존속시키려는 미국의 구상과 ‘이해찬의 30년 집권’ 같은 개혁진영의 장기집권론이 만나는 지점에서 만들어져 회자돼 왔던 것들이다.
6.15공동선언의 연합연방제 통일방안이 극히 중요한 결정적 이유다. 연합연방제는 조국통일운동에서 남과 북이 조국통일운동 원칙을 천명한 7.4공동성명 만큼이나 빛나는 전략자산이다. 연방제가 이후 남의 자주적 민주정부와 북의 사회주의 정부와 간에 실현할 수 있는 통일방안이라면 연합연방제는 현 시기, 남의 개혁정부와 북의 사회주의 정부 간에 이뤄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통일방안이다.
현 시기 조국통일운동에서 북미.남북관계가 교착인 조건에서도 연합연방제는 가장 전략적이면서도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문제다. 남북.북미 간 신뢰 회복과 화해 도모 등 모든 관계 개선과 교류의 정치적 성과가 모아지게 될 곳도 연합연방제이다. 그에 따르면 출마선언문이 개혁진영이 통일방도라고 제시하고 있는 국가연합제안을 언급한 것은 의도와 상관없이 연합연방제에 대한 회피로 보일 가능성이 크다.
이렇듯 출마선언문엔 통일이 없다. 그리고 평화가 있지만 그 평화는 미국의 한반도지배전략과 분단체제를 용인하는 가짜 평화이다.
4.분단체제 하에서 자주는 생명
자주나 반미가 출마선언문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알았을 때 한씨는 용접 작업과정에서 열을 받아 우그러지는 철판을 두드려 펴는데 쓰곤하는 ‘오함마’에 뒷통수를 한 방 맞은 기분이었다.
한국이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루었다는 경제발전 수치는 대미종속성 탈각의 근거일 수가 없다. 한국이 OECD에 가입해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눈에 곧바로 들어오고 손 안에 바로 잡히는 수많은 현실들은 70여년 한미관계의 본질에 그 어떤 변화도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또렷이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50년 7월 14일 가져간 국군작전권을 7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돌려줄 의향이 전혀 없다. 최근 들어선 북핵문제를 부각시켜서는 전시작전권 전환 조건을 어렵게 만드는 데에 골몰하고 있는 중이다. 그 뿐이 아니다. 세계최대 가는 대북침략훈련인 한미연합군사훈련을 1년 내내 끊임없이 벌이고 있다. 미국은 특히, 남북이 세 번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합의한 한반도 평화와 번영, 통일 구상에 대해 치밀하게 개입하고 노골적으로 간섭해 원천봉쇄 수준으로 가로막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는 물론 번영도 그리고 통일도 남북문제가 아니라 북미대결전 상에서의 문제라는 건 어떤 이유로도 부정될 수 없고 누구에 의해서도 외면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현실과 원리에 따라 확정돼 있는 철리가 있다. 한국사회에서 어떤 진보정치도 반미자주를 생명처럼 움켜쥐지 않으면 진보정치가 아니다.
5.힘들고 지쳐도 진보정당을 자주 민주 통일에 기반해 발전시키는 건 노동자의 권리이자 의무
진보당이 자주 민주 통일을 노동 평등 평화로 대체하려는 흐름을 보이고 있는 데에 대해 한씨가 짊어지게 된 긴장과 부담은 크고 무거웠다. 애를 써야만 버틸 수 있을 정도였다. 다들, 전략적 지위를 갖는 쟁점들이어서였다. 그렇다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진보진영 일각에서 경향적으로 확인되고 있는 이른바, ‘전략적 모호성’을 취할 수는 없었다. 오랫동안 노동운동과 전선운동을 해온 노동자의 기질과는 융합될 수 없는 것이었다.
출마선언문이 발표되고 난 뒤 많은 말들이 돌았다. 물론, 억측이 끼어들어 있기도 했고 때문에 공론화될 수 있는 양태도 아니었다. 진보당이 어쩌면, 자주 민주 통일 노선에 대해 확장성에 한계가 있는 것으로 평가했을 지도 모른다는 말이 가장 먼저 나왔다. 자주 민주 통일 노선이 주류정치로부터의 공격을 유발시켜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이어진 것으로 평가했을 지도 모른다는 말이 그 뒤를 바로 이었다. 자주 민주 통일은 전선운동에 맡기고 당은 노동문제를 중심으로 평등과 평화에 집중하려는 것일 수 있다는 말도 돌았다. ‘헌법 안의 진보’라는 개념을 떠오르게 하는 대목이었다. 일각이기는 하지만 확장성을 도모하기 위해 과거 민주노동당 때로 돌아가 ‘평등’으로는 이른바, ‘좌파 동지’들과, ‘남북연합’으로는 개혁진영과 연대를 모색하려는 구상일 지도 모른다는 말도 나왔다. 공론화되기 불가능한 극단적인 것들도 있다. 예컨대, 북이 지난 1월 조선로동당 8차 당대회 규약개정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론’을 삭제한 것을 폐기한 것으로 간주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씨는 어렵고 지쳐도 정면돌파를 해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 어디쯤에선가 불현듯, 수년 전 포항 ‘포스코’에서 대형 용광로 개보수 작업할 때가 떠올랐다. 수일동안 야근, 특근까지 해가며 정밀용접을 하는 작업이었다. 고도로 집중을 했지만 용접 쇳물에 ’슬래그’가 껴 들어 번번이 비파괴검사에 걸리곤했다. ‘가우징’으로 용접 부위를 통째로 갈아 없애고 다시 용접을 해야했다. 한씨는 일을 계획했던 대로 순조롭게 쳐 나가는 다른 동료들이 부러웠고 그만큼 참담했다. 가우징을 할 때마다 현장을 관둘까하는 유혹이 가우징의 뜨거운 열기처럼 온몸으로 엄습하곤했다. 그렇게 다른 현장으로 옮겨 간 플랜트노동자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한씨는 노조 위원장과의 의논 끝에 결단을 내렸다. 잠깐 쉬는 시간을 비롯해 점심과 저녁 식사시간을 금조각처럼 쪼개 정밀연습에 돌입하기로 한 것이다. 용접기 전기조절을 초정밀단위로 조정하는 가운데 자세를 안정성 있게 바꿔가며 집중성을 최고조로 높이는 게 관건이고 승부처였다. 포항 밤바다를 바라보면서 돌판을 깔고 삼겹살을 널겠다며 실력 좋은 다른 용접공들의 도움도 샀다. 각고의 노력은 결국, 성과를 냈다. ‘비파괴검사’ 기사가 믿고 있었다는 듯 자기 일처럼 환호를 했으며 한씨는 주먹을 불끈 쥐고 가슴팎을 몇번이고 내리쳤다. 자기 실력을 냉철히 되돌아볼 대신에 어렵고 힘들다는 걸 구실로 현장을 ‘때려 치우는’ 청산 방식으로는 그 어떤 문제해결도 발전도 쟁취할 수 없다는 걸 한씨는 그때, 또 다시 뼈저리게 깨달았다.
“노동을 진보정치의 핵심가치로, 중심 세력으로 조직해 진보정치의 본령을 세우고 그것으로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는 모든 이들을 넓게 규합해 나가겠다”
출마선언문의 가장 높은 지리에 가장 빛나고 있는 대목이다. 정치노선이자 조직노선이다. 집회때면 입는 조끼의 ‘노동해방’이라는 빨간 색 글귀만큼이나 또렷했다. 출마선언문이 한씨에게 움켜쥐라고 제시한 기치였다.
한씨는 이후 9월 정책당대회가 있기 전까지 노동 중심의 그 기치를 높이 들고 여러 동료들과 함께 여러 형태의 토론을 적극 조직하게 될 것이다. 진보당에서 실력 있는 분회장으로 인정받고 있는 만큼 동료들은 많았다. 주로, 노동해방의 기치로 현장 문제에 집중을 하면서도 ‘민중공동행동’의 반미자주화 사업과 6.15남측위원회가 벌이는 여러 통일행사를 비롯해 3월과 8월이면 한미연합군사훈련 반대 활동 등에 빠짐없이 참여하는 사람들이었다.
“노동이 중심이고 확장성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자주를 왜 홀시하는가!” 그리고 “보수세력이 여전히 건재하고 있는 터에 어떻게 민주가 평등으로 대체될 수 있단 말인가!” 또한 “미국이 대북적대를 높이고 한국엔 갖은 불평등을 강제하고 있는 터에 어떻게 평화만으로 통일을 설계할 수 있단 말인가!”하고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자주민주통일이 노동자 농민 빈민 등 민중은 물론 국민에게도 생명과 같은 것이라고 조근 조근 그리고 당당하게 해설하는 일이다. 민족의 맏아들인 노동자에게 주어져 있는 권리와 의무를 한씨는 그렇게 진보당의 열성당원답게 진공적이고 세련되게 행사하게 될 것이다.
'분석과 전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로운 북미대결전 (0) | 2022.03.27 |
---|---|
20대선 평가와 진보의 태세 (0) | 2022.03.23 |
2월, 명절을 맞이하며 (0) | 2022.02.01 |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과 조국통일 실현 노정 (0) | 2021.11.02 |
북의 대미 강온전략과 남북의 민족공조가 만날 때 (0) | 2021.10.21 |
민족공조에서 양국체제론을 넘어 연합연방제로 (1) | 2021.08.06 |
남북관계 개선 프로세스 더 나아가 민족통일기구 수립 구상이 될 수 있을 것인가? (1) | 2021.07.27 |
기본소득 그리고 공정 (0) | 2021.07.26 |
민주연립정부 수립을 내다보며 민족통일기구 수립을 중심으로 (0) | 2021.07.12 |
승리의 전망, 더 확고하고 더 선명해진 자주 평화 통일 번영에 대한 전략 (1) | 2021.06.1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