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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권말선/가끔 힘들어하고 우울해하는 그대에게(첫번째 시집)

아버지

by 전선에서 2014. 3. 19.



아버지


               권말선


아버지,
또 다시 기차에 오르시어
먼 길 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기차가 떠나가는 그 순간부터
내 마음도 함께 기차에 실려
아버지 가시는 길 따라갔어요

들판을 지나고 숲길도 지나
낯설은 마을에 닿으셨을 때
마중 나온 사람들 환호성,
노래로 음식으로 꽃으로
기꺼이 반기는 그 모습에
아버지 빛나는 얼굴 우러르며
감격에 겨운 내 눈굽도 뜨거웠어요

드넓은 호수를 바라보실 땐
오래된 그리움에 잠기셨을까
깊고도 투명한 호수가에서
아버지 마음도 저 물과 같겠지
가만히 웃으시는 모습 속에는
지나간 시절 눈물겨운 이야기,
시린 날들의 뼈아픈 사연도
다 흘려 보낸 듯 온화한 표정

아버지,
이제야 비로소 알겠습니다
사랑도 기쁨도 평화로움도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이
진정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타지의 장터며 멋진 건물들
마을과 너른 산야 돌아보시고
풍요한 것, 아름다운 것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얼굴을 올려다보면
이제는 그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조용한 미소에도 어려있고
그윽한 눈길 속에도 담겨있는
깊은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아버지 마련하신 너른 땅에서
아들 딸 모두 모여 땀 흘리면서
쌀이며 채소며 과일농사도
부지런히 짓는 모습 그리시겠지요
생각만 하여도 기쁘실텐데
조용히 고개만 끄덕이시는
아버지, 아버지...!

기차는 또 다시 꼬리를 물고
긴 길을 달리고 또 달리는데
창 밖엔 한무리 병사들 행렬
태양이 광야를 달구던 날에
백마 탄 초인이 지나셨던 길
이제는 당신께서 지나가소서
당신이 오시도록 예비됐던 길
고결한 존엄으로 빛나는 이여
천년토록 만년토록 받들리니
세상의 모든 길을 지나가소서
꿈인 듯 생시인 듯 퍼져가는
천둥같은 만세소리 귀를 울려도
아버지 표정은 처음 그대로
창 밖을 바라보며 온화합니다.

먼 길을 마치고 돌아오시곤
잠시의 쉼도 없이 다니시면서
그리웠던 가족들 돌아보시고
사랑으로 챙기시는 모습 보면서
아버지 참사랑에 나도 모르게
뜨겁게 목젖이 아파옵니다

낯설은 타지의 많은 이들이
그토록 아버지를 우러를때에
뿌듯한 기쁨에 들떴지만은
고단할 아버지 걸음걸음에
뒤돌아 눈물도 훔쳤답니다.

아버지,
오늘처럼 내일도 먼 훗날에도
존경을 한 몸에 받으소서
아버지, 아버지여
태양처럼 따사로운 우리들
아버지시여!


(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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