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자주통일연구소
  • 자주통일연구소
분석과 전망

1.북의 연방제 안과 조국통일 3대헌장

by 전선에서 2019. 6. 11.

1.북의 연방제 안과 조국통일 3대헌장

<분석과 전망>평화적인 통일방안과 민족통일전선 그리고 민족통일기구

  

 

615. 6.15남북공동선언 19주년입니다. 남북은 6.15남북공동선언에서 최초로 통일방안의 방향성에 합의를 했습니다. 이른바, ‘연합연방제입니다남북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발전할수록 통일방안 문제는 현안으로 대두합니다. 통일방안은 민족통일전선 특히 민족통일기구와 직접적인 관련을 갖습니다남북 간의 통일방안을 살펴보고 그에 기초한 통일방안의 국가적 차원의 총화인 민족통일기구 그리고 민간통일운동까지 포괄하는 민족통일전선에 대해 정리하는 글을 몇 차례에 걸쳐 싣도록 하겠습니다.-글쓴이 주

 

 


  

북과 남은 통일에 대한 온 민족의 관심과 열망이 전례 없이 높아지고 있는 오늘의 좋은 분위기를 놓치지 말고 전 민족적 합의에 기초한 평화적인 통일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하며 그 실현을 위해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나가야 할 것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201911일 신년사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정상회담이 한 해 동안 세 차례나 진행된 것이 남북관계가 완전히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남에 그렇게 통일방안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북이 신년사를 통해 통일방안을 언급한 것은 1991년 김일성 주석의 신년사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의 전성기에 부응하는 주동적 조치라 할 수 있다.

 

북이 남에 통일방안 문제를 제기했다는 것은 현 시기 조국통일운동에서 통일방안 문제가 현안으로 등장할 것임을 예고해준다.

 

남과 북이 각기 다른 통일방안에서 공통점을 찾아내 통일방안의 방향성에 합의를 이룬 것이 20006.15공동선언이었다. 2항에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로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고 한 것이다.

 

북의 통일방안은 연방제다. 연방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상당히 많다. 미국, 러시아, 독일을 위시하여 스위스, 캐나다, 오스트리아, 호주, 멕시코, 아르헨티나, 말레이시아 등 무려 27여 개 나라에 이른다. 성립된 배경이나 성격 등이 나라들마다 물론, 조금씩 다르기는 하다. 미국은 1776년 독립을 전후해 동부 13개 주가 각각 독립성을 지니고 존재하는 국가연합 형태를 취하다 영국과의 전쟁을 거치면서 독립된 주들이 국가로 뭉쳐야한다며 1789년 연방제를 채택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통일독일은 동독의 주지사 여러 명과 서독의 주지사 여러 명이 광역지방자치를 하고 있으며 그 위에 전국총선을 통해 뽑힌 총리가 연방정부를 구성한다. 연방제의 본질은 1국가 2체제 2정부다.

 

남의 통일방안은 연합제다. 연방제 체제가 공고하다면 이 보다 느슨한 체제가 국가연합이다. 국가연합은 둘 이상의 독립 국가가 외교나 군사 따위의 일정한 범주의 국가 기능을 공동으로 행사하기 위해 평등하게 결합한 체제다. 가장 유명한 국가연합이 유엔이다. 유럽연합을 비롯해 독립국가연합 아세안 등 역시도 국가연합들이다. 국가연합 구성국들은 정치권 외교권, 국방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한다. 남북연합단계의 본질은 2국가 2체제 2정부다.

 

통일방안 문제는 민족통일전선 구축 문제와 민족통일기구 수립 문제 등을 포괄하는 것인 만큼 조국통일운동에서 관건적인 문제다. 민족통일전선은 남북의 정부 정당 각계각층 사회단체와 해외가 통일문제에 대한 총의를 모으고 실행하는 정치조직적 총화이며 민족통일기구는 그 위에 세우는 통일의 국가기구이다.

 

통일방안과 민족통일전선 그리고 민족통일기구 문제는 김정은 위원장이 2018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약속한 서울방문 사업과 밀접히 직결돼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방문은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이나 방러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과는 그 차원과 범주가 다르다.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에 진전이 이루어지고 남북관계가 완전히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는 것을 전제로 하며 통일을 예고하는 것이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이다. 이는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방문이 통일방안이자 민족통일전선이며 민족통일기구라는 것을 확정해준다.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에 대해 한 시인이 오셔요, 통일이라고 노래했던 이유다.


 

 


1.북의 연방제 안과 조국통일 3대헌장                                                   -민족통일전선과 민족통일기구를 중심으로

 

1)최고민족위원회와 대민족회의

 

김일성 주석이 연방제 안을 처음으로 내놓은 것은 1960815일이었다. ‘8.15 광복 15주년 기념연설에서 평화적 조국통일의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방편은 남북 총선거이지만 이를 남측이 받아들일 수 없다면 과도적인 대책으로서 남북 조선의 련방제를 제의한다고 했다. 4.19 이후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라는 구호가 나오는 등 발전하는 조국통일운동 정세를 반영한 것이었다.

당분간 남북의 현재 정치제도를 그대로 두고 두 정부의 대표들로 구성되는 최고민족위원회를 조직해 남북의 경제·문화발전을 통일적으로 조절하자는 것이 그 골자였다. 표면상으로는 연방제였지만 실제로는 국가연합에 가까운 것이었다.

연방국가 수립 방도로 설정했던 선거를 남측을 고려해 사실상 폐기했다는 것 그리고 최고민족위원회를 제시한 것이 주목할 대목이다. 민족통일기구인 최고민족위원회는 양 정부 대표들로 구성되는 상층 민족통일전선이다.

김일성 주석은 이어 73623조국통일 5대 방침을 발표한다. 남북 군사대치 해소 남북 합작과 교류 남북 각계각층 인민들과 각 정당 사회단체 대표들로 구성되는 대민족회의 소집 고려연방공화국을 국호로 하는 남북연방제 실시 고려연방공화국이라는 단일국호에 의한 유엔 가입 등이 그 주요내용이다. 727.4공동성명을 통해 남북이 합의한 조국통일 3대원칙을 조성된 정세의 요구에 맞게 구체화한 것이었다.

조국통일 5대 방침에서 주목되는 건 연방국호로 고려를 제기했다는 것 그리고 특히 대민족회의소집을 제기했다는 점이다.

대민족회의는 그 구성을 남북의 각계각층, 정당·사회단체 개별 인사와 해외교포단체들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듯 조국통일을 위한 민족통일전선이다. “통일문제를 인민의 의사와 요구에 맞게 해결하기 위해 남북의 각계각층 인민이 조국통일을 위한 거국적 애국사업에 참여해야 한다.”는 서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60년에 제기했던 민족통일기구 최고민족위원회를 아래에서 받쳐주는 하층 민족통일전선으로서 위상을 갖는다.

조국통일을 위한 남북 간 민족통일전선은 1948419일 평양에서 개최한 남북 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가 그 시원이다. 물론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해방 직후 남과 북이 함께 꾸렸던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도 있다.

대민족회의는 그 이후 명칭만 달리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남북정치협상회의(1974.11, 1977.1)를 비롯해 제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1983.1), 남북연석회의(1988.1), 남북정치협상회의(1989.1), 민족통일협상회의(1989.9), 당국·정당수뇌협상회의(1990.1), 민족통일정치협상회의(1991.1, 1993.8), 8.15 대민족회의(1995.8) 등으로 이어진 것이다. 북은 201669일에는 전민족적 통일대회합으로 남북해외 제 정당, 단체, 개별인사 연석회의를 제기했었다.

 

2)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과 낮은 단계 연방제 안

 

북의 완결된 통일방안은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이다. 김일성 주석이 198010월 제6차 당대회를 통해 제시했다. 핵심내용은 남과 북이 사상과 제도는 그대로 두고, 그 기초 위에서 같은 권한과 의무를 지닌 각각의 지역자치제를 실시하는 연방공화국 창립 남과 북이 동수의 대표로 연방국가의 최고민족연방회의를 구성하여 정치, 외교, 군사권을 보유 각 지역정부는 연방상설위원회를 조직해 남과 북의 지역 정부를 지도한다는 것 등이다.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에서 주목되는 것은 중립국가를 표방했다는 것과 최고민족연방회의가 정치, 외교, 군사권을 보유한다는 점이다. 중립국가 표방은 대외정책노선으로 자본주의 체제와 사회주의 체제 간 대결체제인 냉전체제에 남과 북이 얽매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어떠한 정치군사적 동맹이나 블럭에 가담하지 않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최고민족연방회의의 정치, 외교, 군사권 보유는 민족통일기구로서의 위상을 확고하게 보장하는 것이었다.

 

김일성 주석은 1991년 신년사를 통해 느슨한 연방제를 제안한다. "누가 누구를 먹거나 누구에게 먹히우지 않는 원칙에서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 제도, 두 개 정부에 기초한 련방제 방식"으로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며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 방안에 대한 민족적 합의를 보다 쉽게 이루기 위하여 잠정적으로는 련방공화국의 지역자치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며 장차로는 중앙정부의 기능을 더욱 더 높여 나가는 방향에서 련방제 통일을 점차적으로 완성하여야 한다."고 한 것이다.

느슨한 연방제낮은 단계 연방제로 불리워졌으며 최고민족연방회의의 권한은 느슨하게 하고, 대신 지역정부의 역할을 하는 연방상설위원회에 정치·외교·군사권을 주어 독자성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3)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

 

김일성 주석은 199346일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5차회의에서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을 발표한다.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에 대해 북은 민족대단결 사상과 그 실천적 경험이 가장 집약적으로 구현되어 있는 민족대단결 총서라고 했다. “조국통일운동사에 민족대단합의 새로운 장이 펼쳐짐을 알리는 포성이었으며 통일운동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역사의 분수령으로 된 일대 사변이라고도 했다. 항일투쟁 시기 조국광복회의 원리를 분단체제에 적용한 것이었다.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은 특히, 최고민족연방회의 등 상층 민족통일전선과 대민족회의나 연석회의 등 하층 민족통일전선의 결성과 운영 관련해 그 대강과 원칙을 밝혔다는 점에서 남과 북에 동시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4)조국통일 3대헌장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978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조국통일 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라는 논문을 통해 조국통일문제를 전일적으로 체계화한다. 72조국통일 3대원칙’, 80년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93전민족대단결 10대 강령<조국통일 3대헌장>으로 정식화한 것이다. 북 조국통일전략의 완성이었다.

 

5)북 연방제의 특성

 

북의 연방제 안은 남과 북이 같은 민족이기는 하지만 사상과 체제가 달라 하나의 국가로 합치기 쉽지 않다는 현실론에 착목한 것이었다. 남과 북이 안으로는 각각 체제가 다른 지방정부를 유지하면서 밖으로는 군사권과 외교권을 합쳐 하나의 연방국가로 만들자고 한 것이다. 다른 나라들이 같은 이념과 체제를 지닌 주들이 대내적으로 각각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대외적으로 하나의 강력한 국가 체제를 이루기 위해 연방제를 택하였다면, 북은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를 가진 남북 정부가 일시에 완전한 통일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연방제를 취하자는 것이었다.

 

북의 연방제는 다른 나라의 연방제와는 달리 연방제적 성격은 축소시키고 국가연합적 성격은 확장해놓은 특성을 갖고 있다. 북이 고려연방제를 영문으로 “Democratic Confederal Republic of Koryo"로 표기하고 있다는 것에서 가장 먼저 확인된다. federal(연방)이 아니라 Confederal(연합)인 것이다. 연방제에 국가연합적 요소를 보다 많이 그리고 분명히 포함시킨 것이 낮은 단계 연방제이다. 낮은 단계 연방제를 제기하면서 민족적 합의를 보다 쉽게 이루기 위하여라는 명분을 단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북이 연방제에 연합제 내용을 많이 포함시킨 것은 친미분단세력들이 존재하고 있는 남의 정치지형을 고려한 전략적 조치일 것으로 보인다.

 

북이 연방제를 확정하는 과정은 두 갈래로 진행되었다. 상층민족통일전선으로서 국가기구인 민족통일기구를 연방제 원리에 맞게 짜되 남의 현실에 맞게 변화시키는 과정이 한 갈래이고 그 민족통일기구를 받쳐주는 하층 민족통일전선 구축 문제를 제시하는 것이 또 하나의 갈래였다. 민족통일기구는 60최고민족위원회에서 출발해 80최고민족연방회의에서 연방제의 완성형태로 정점을 찍었다가 91년 남을 고려해 낮은 단계연방제에서의 민족통일기구로 변화되는 과정을 밟는다. 그리고 하층 민족통일전선은 48년 연석회의의 원리에 기초한 것으로 73대민족회의에서 출발해 연석회의 등으로 표현되었으며 93전민족대단결 10대 강령에서 사상이론적 토대를 확보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