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그리고 탄저균
<시사꽁트>다시 만난 동앗줄
야! 니가 미국을 알어?
2일 만에 풀려나온 막둥이 녀석은 무슨 일인지 내내 의기양양했다. 안에서 많은 것을 배우기라도 했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녀석을 마중 나온 예닐곱명의 동료들 중에 여자친구가 있는지도 몰랐다.
그럼 아빠.
둥이는 씨익 웃으면서 그렇게 말을 했다.
미국이 한국에 탄저균을 들어왔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곧바로 떠오른 것이 둥이 녀석이었다. 2학년인 녀석이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한다고 했을 때부터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었다.
녀석이 가만 있을 리가 없었다. 경찰에게 멱살을 잡히고 사지가 들려 끌려가게 될 것이라는 예상은 결국 맞아떨어진 셈이었다.
둥이와 마중나온 친구들을 식당으로 데려가 술을 시켰다.
술이 거나해질 무렵 난 민수가 죽어간 얘기를 해주었다. 누구에게도 해준 적 없는 얘기였다. 어제 일처럼 선명한 기억이었다. 둥이와 친구들의 눈에서 빛이 보였다.
뭐라고야?
민수가 눈을 치켜올려 뜨며 따지듯이 말했다.
난 대답하지 않았다. 되물은 것이 아니었다. 언뜻 들으면 그 무슨 외마디 같았다. 수도 없이 들었던 외마디였다. 총알이 우박처럼 소리를 내고 날아올 때면 의례히 들리곤 했던 외마디였다.
밖에서 비추는 서치라이트를 피해 창틀 벽에 기댄 그가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꼬나 물었다. 평소 민첩했던 팔놀림은 아니었다. 떨고 있을지도 몰랐다. 도끼눈처럼 뜬 그 눈이 가득 담고 있을 것이 무엇일지도 쉽게 짐작이 왔다. 절망이었을 것이다.
내뱉는 연기에 딸려나온 그 절망은 길게 원을 그렸다.
5월 말의 밤은 그렇게 푸근하고 고즈넉했다. 밖에서 또 다시 날아든 총알은 그 절망을 관통하며 벽을 울렸다.
광장을 울리는 총소리들에 꽃잎처럼 흩어지는 사람들의 무리를 우리는 총신을 움켜쥔 채 바라보아야했다. 전쟁을 실감했으며 다들 전투준비를 했다. 죽을 수 있다는 결심은 쉽게 왔다.
밖에서 들리던 총소리가 우리를 향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몇 시간 후였다.
몇 일이 지난 것일까.
눈을 뜨면 사위는 거짓말처럼 조용했다.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한 그 태연함에 난 진저리를 쳤다. 창문을 열었을 때 우르르 밀려들어온 것은 안개였다.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 위로 안개가 스멀거리며 기어다녔다. 바닥에 피는 이미 굳어있었다.
민수는 수시로 내게 확인하곤 했었다.
바로 그거야.
미국 항공모함이 일본을 향해 오고 있다는 말을 해주었을 때 그의 눈은 아이의 그것처럼 초롱거렸다.
그럼 그렇지 미국이 어떤 나라냐구. 저 씨발새끼들을 미국이 관두겠어.
맞아.
미국이 올 것이라는 말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그리고 언제부터 우리들 사이에 전염병처럼 일시에 돌았는지 사람들은 알지를 못했다. 하지만 그 말은 누구에게서도 의심받지 않았다. 누구할 것 없이 믿었으며 그 믿음을 굳히게 해줄 말 한마디씩을 이미 준비해두고 있었다는 듯이 다들 그렇게 소리 높혀 말했다.
사람들이 죽어가면서도 마지막으로 하고 싶어하는 말도 그것이었다. 조금 늦어지는 것이라고 머지않아 오게 될 것이라고...
복도에 화장실 근처에 쓰러진 사람들이 늘어나고 총소리가 더 잦아질 무렵에야 난 미국이 우리를 도와주러 올 것이라는 말이 낭설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해는 되었다. 사람들의 바램이었을 것이었다. 시민들을 학살하는 학살자를 경찰국가이자 민주국가인 미국이 관둘 리 없을 것이라는 바램은 그렇게 근거없이 키워졌다가 사람들과 함께 속절없이 쓰러져갔다.
미국 안온대! 라는 말을 했을 때 그때서야 민수는 모든 것을 포기했는지도 몰랐다. 뭐라고야? 라는 말이 그에게서 들었던 마지막 말이었다.
두 손을 뒤로 묶여 절뚝거리며 끌려나올 때 난 피가 흥건히 묻어있는 그의 옷자락을 보았다. 한 벌짜리 추리닝 옷자락이었다.
사람들의 피가 튀어 그 옷에 묻을 때면 그는 호들갑을 떨며 안타까워했다. 서울에 있는 유명 대학에 합격한 동생에게 주려고 산 옷이라고 그는 설명을 해주었다. 한동안 못받고 있었던 밀린 일당일 임금을 받아 술값으로 쓰고 난 뒤 꼬불쳐 두었다가 산 옷이라고 했다.
생사의 기로에 몰렸을 때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동앗줄이었다. 그것이 미국이었다. 그렇듯 미국은 민수와 사람들에게 은인으로 가르쳐졌었다. 6.25전쟁과 결부시켜지게 되면 그 은혜의 깊이와 수준은 끝없이 높아졌다.
그렇지만 거짓이었다. 사람들이 무리로 죽어가면서 남긴 유산 중에 하나가 미국에 대한 실체였다.
어려운 싸움이여. 저절로는 물러가지 않아.
알고 있어 아빠.
둥이도 그 친구들도 여전히 눈이 살아 있었다. 30여년 전 5월 내 눈이 그랬을 것이었다.
칼을 뺏으니 승산을 봐야지? 청년이 무서울 게 뭐가 있노.안긋나
그럼요. 아빠 환갑 전에 끝장을 봐야지.
다들 크게 웃었다. 나는 따라 웃지 못했다.
열린 창밖으로 안개가 점점 짙어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허벅지가 반응을 했다. 욱신거렸다.
그해 봄 수난을 겪었던 허벅지는 날만 흐리면 그렇듯 영낙 없이 통증을 보내고는 했다.
그 통증을 없애 줄 것이 둥이들 밖에 없다는 믿음이 꿈틀댔다. 동앗줄이었다. 청년들의 핏줄 같이 튼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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