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고 하얀 씨앗’은 ‘우리민족끼리’
<문화비평>분단의 아픔과 조국통일의 희망을 노래하는 문해청 시인의 <미8군 민들레>
최근, 시 동인지 <분단과 통일시>가 3집인 <미8군 민들레>를 출간하여 문학계는 물론 통일운동진영에도 적잖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국사회가 그 발전의 요구로 제기하고 있는 자주와 민주 그리고 통일을 적극적으로 천착하는 작품들로 구성되어있어서이다.
<분단과 통일시>는 작품 중에서 문해청 시인의 ‘미8군 민들레’를 그 대표작으로 설정하고 있다. 표제작으로 된 이유이다. ‘미8군 민들레’ 전문 그리고 그에 대한 간단한 시평을 아래에 싣는다(글쓴이 주)
미8군 민들레
문 해청
미8군 이중 담장 아래
피어나는 작은 민들레야
혹독한 겨울을 이기고
너는 잘도 피어나는구나
미8군 송수탱크 아래
이천동 대봉동 봉덕동은
대구시 중구 남구를 갈라놓은
이중철조망 분단의 땅이다
미8군 이중담장 따라
피어나는 작은 민들레야
참으로 고운 너는
분단의 이중철조망 아래
참혹한 더위에도
칼바람 추위에도
참으로 올 곧게 피어나는구나
미8군 이중담장 60년 세월
환갑 지난 육신은 시들어도
밟히고 뜯겨도 다시 살아나는
질기고 강한 작은 민들레야
민초의 한을 품고
사시사철 깊이 뿌리 내리는
너의 강철 깡다구로
진정 진솔하게 피어나는구나
미8군 이중담장 아래
피어나는 작은 민들레야
캠프워크 골프장 지나
캠프헨리 미군장교 숙소 너머
이중담장 이중철조망 없는
우리 땅 식민지 남녘하늘에서
분단조국의 북녘하늘까지
너의 곱고 하얀 씨앗으로
수천 만 생명의 꽃이 피는 꿈을
오늘도 나는 꿈꾸고 있구나.
<미8군 민들레>에 대한 시평
미군기지와 민들레.
누가 보아도 극적인 결합이다.
미군기지는 어린이 ‘문해청’에게 그저 놀기 좋은 놀이터였다. 그 미군기지의 이름은 캠프헨리. 그리고 캠프워커.
캠프헨리는 대구광역시 남구 이천동에 있다. 주한미군 대구 기지 사령부가 있는 곳이다. 기지 명칭은 1960년에 만들어졌다. 한국전쟁 시 경북 안동시에서 전사한 프레드릭 F. 헨리 중위의 이름을 땄다.
이름으로만 보자면 시인과 같은 해에 태어난 셈이다. 그러나 그곳이 군사기지였던 것은 시인이 태어나기 한 참 전의 일이다. 1921년 일본 제국 육군의 대구지역 식민지 사령부였던 곳이었다.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5동에 있는 캠프워커 역시 마찬가지이다.
어린이 ‘문해청’에게 놀이터였던 미군기지 그리고 민들레는 그러나 시인 ‘문해청’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들게 된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점령군’으로 우리나라에 온 것이 미군이었다.
“본인이 지휘하는 승전군은 오늘 북위 38도선 이남의 조선 영토를 점령한다”
1945년 9월 7일 일본 요코하마에 있던 태평양방면 미 육군 총사령관 육군대장 더글라스 맥아더가 우리나라의 하늘에다 대고 뿌린 ‘조선인민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의 ‘포고문 제1호’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그 뒷날인 9월 8일 인천시민들은 인천에 상륙한 거대한 미군무리를 보았다. 4만5천명이었다. 하늘에는 전투기가 날았고 미군대열의 맨 앞에는 장갑차가 길을 트고 있었다. 완전무장한 ‘점령군’ 미군은 그렇게 우리나라에 온 것이었다.
그로부터 우리나라의 ‘모든 주민’은 맥아더의 “권한 하에서 발표한 일체의 명령에 즉각 복종”해야했다. 그리고 “점령군에 대한 반항행위 또는 공공의 안녕을 교란하는 행위를 감행하는 자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엄벌”에 처하게 되는 처지가 되었다. 포고령 제3조에 그렇게 명시되어있었다.
미군기지와 민들레라는 전혀 상반될 듯이 보이는 이 두 개의 오브제의 충돌을 통해 시인이 보여주려는 것은 일단, 분단의 슬픔이다.
군사적 자주권을 한국가가 갖게 되는 자주권의 대표적인 징표로 보는 것일까? 대구를 남구와 북구로 분단시키는 것이 캠프헨리와 캠프워커라면 주한미군 전체는 우리민족을 남과 북으로 갈라놓는 상징으로 시인은 접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인은 우리땅이 미국의 식민지라는 인식을 이 작품에서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우리 땅 식민지 남녘하늘’이라는 싯구가 그것이다.
민들레는 겨울에 죽는다. 그러나 봄이 되면 다시 꽃을 피운다. 그런 민들레에게서 사람들은 죽었던 것은 줄기였을 뿐 겨울에도 뿌리는 죽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다. 민들레가 질긴 생명력, 민초를 상징하게 되는 이유이다.
작품에서 시인은 미군기지를 우리민족의 자주성을 짓밟는 상징으로 설정하고 여기에 아무리 짓밟아도 살아나는 민들레를 정면에서 충돌시키고 있다.
“혹독한 겨울을 이기고/너는 잘도 피어나는구나”
“분단의 이중철조망 아래/참혹한 더위에도/칼바람 추위에도/참으로 올 곧게 피어나는구나”
시인은 작품에서 분단의 아픔을 뛰어 넘어 통일의 희망까지도 노래하고 있다. 민들레의 씨앗으로 ‘우리 땅 식민지 남녘하늘에서 분단조국의 북녘하늘까지’ ‘수천만 생명의 꽃이 피는 꿈’을 시인은 설계한다.
시인은 민들레에게서 조국통일의 주체 내지는 동력까지를 읽어낸다. 조국통일과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것이 1972년 7월 4일 남과 북이 합의한 <7.4공동성명>이다. 남북 간에 조국통일과 관련해 가장 최초로 원칙, 방도, 주체 동력을 합의해낸 역사적 문건이 그 성명이다. 그 성명은 ‘자주’가 원칙이고 ‘평화’가 방법이라면 ‘민족대단결’은 통일의 주체이자 동력이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밝혀놓고 있다.
‘곱고 하얀 씨앗’
시인이 미8군 담장 아래 피어있는 민들레를 통일의 주체로 동력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싯구이다.
‘곱고’에서 우리민족의 심성을, ‘하얀’에서 백의민족을 읽어낸다는 것은 우리민족에게는 보편이다. ‘곱고 하얀 씨앗’이 우리민족을 의미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너의 곱고 하얀 씨앗으로
수천 만 생명의 꽃이 피는 꿈을
오늘도 나는 꿈꾸고 있구나.
그런 점에서 시인의 ‘곱고 하얀 씨앗’은 2000년 6.15공동선언에 명시되어있는 ‘우리민족끼리’의 싯적 표현이다.
이명박 정부 그리고 지금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 여전히 횡행하고 있는 남북 간의 대립과 대결 하에서 더욱 더 소중해지고 있는 개념, 우리민족끼리를 시인은 작품 ‘미8군 민들레’를 통해 그렇게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문해청 시인
1960년 대구 출생
1991년 전노협창립기념공동시집 『너를 만나고 싶다』(개마고원)
1992년 『실천문학』 가을호에 「길따라 돌아간다」를 발표하면
서 문단에 나옴
2012 시집 『긴 바늘은 6에 있고 짧은 바늘은 12에』(두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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