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말선의 ‘세포등판’
<사회문화비평>황무지에서 서울만큼이나 넓은 세계최대 축산기지로
세포등판.
권말선 시인이 최근 발표한 시의 제목이다.
참 모를 이름이다. 세포라고 해서 그리고 등판이라고 해서 그 무슨 생물교과서에서 나오는 단어로 볼 만도 하다. 하지만 북한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익히 잘 알려져 있는 단어다. 북한에 있는 지명이다. 강원도 세포군을 말하는 것이다. 등판은 북한에서 산등성이의 평평하고 넓은 곳을 칭한다. 구릉이다.
세포등판이란 강원도 세포군 일대의 구릉지역을 말하는 것이다.
세포등판은 북한이 강원도 세포군을 중심으로 이천군, 평강군 일대에 걸쳐 조성하고 있는 세계최대의 축산기지이다. 2012년 9월에 결정되어 개간공사가 시작되었다.
이곳에는 지금 소, 양, 염소, 토끼, 돼지 등 여러 종류의 수많은 가축이 길러지고 있다. 수 만 마리라고 했다. 축산물 가공기지까지도 건설되고 있다. 세포등판을 대규모 목장이라고 하지 않고 축산기지라고 말하는 이유다. 2015년이 완공 목표라고 한다.
1
권말선 시인의 시를 자세히 보면 시인이 유독 3이라는 숫자에 집중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첫 문장부터 3으로 출발시키고 있다. “바람포/비포/눈포 합쳐서/세포라 부른다지”라는 것이 그것이다.
북한은 노동신문 2013년 9월 20일자 <젊어지라 복 받은 대지여>라는 정론을 통해 세포등판에 대한 정보를 세상에 알렸다. 상세하다. 인터넷 곳곳에 그 원문이 그대로 실려 있다. 공안당국이 막아놓고 있는 자료는 아니다.
세포등판은 세 방향에서 들어오는 바람이 남쪽으로 통과하는 자리에 있어 매 계절 센 바람이 분다. 정론은 바람이 일단 터지면 등판 위에서 사람이 몸을 가누기조차 어렵다고 했다.
비도 보통 많이 오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정론에 따르면 2013년 7월 한 달 동안에 2012년 한 해 강수량과 맞먹는 폭우가 쏟아졌다고 했다. 비나 눈이 내려도 고스란히 내려앉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휘뿌려진다고 했다. 폭설 역시 마찬가지라고 했다.
비와 바람과 눈이 많다는 것은 그곳이 거의 황무지에 가깝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고원지대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그곳은, 사람이 살 곳이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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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사람들이 고원지대에 있는 그 황무지를 개간 한 것에 대해 시인은 “날포/발포/땀포/얼마나 쏟아 부었으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여기에 또한 숫자 3이 동원되고 있다.
사람들은 바람을 막기 위해 수백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 방풍림을 조성했다.
폭우에 대비해서는 하천정리 공사를 했다. 땅 깊숙이 물도랑을 낸 것은 냉해를 막기 위해서였다. 눈이 쌓여도 땅을 덜 얼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땅에 수십만t의 비료를 뿌렸고 밭에는 소석회를 뿌렸다. 토양이 산성화되어 있는 것을 알고 나서는 석탄도 대량으로 가져다 쏟아 부었다.
정론이 선전하는 것이 맞다면, 사람들은 바람 많고 비 많고 눈 많은 고원지대의 그 황무지를 그렇게 ‘옥토’로 만들어낸 셈이다.
정론은 ‘기승부리는 눈보라에 온몸이 순간에 얼어들고 땀방울이 그대로 얼음버캐가 되는 속에서 함마와 정대로 언 땅을 한점 두점 뜯어냈다’고 했다. 이어 ‘한 밤 중에 천막이 날려간 줄도 모르고 별빛이 내려다보는 등판에서 새우잠을 잤다’고도 했다.
세포등판 개간에 나선 사람들을 두고 정론이 ‘충신’으로 ‘애국자’로 부르는 이유일 것이다.
3
세포등판을 구성하고 있는 지역이 세 개의 군이라는 것에서도 숫자 3이 있다.
강원도 세포군, 이천군, 평강군이 그것이다. 넓고 크다. 세포등판이 북한의 언론을 통해 우리나라에 처음 알려졌을 때 사람들을 가장 놀라게 했던 것도 그 규모 때문이었다.
동양최대 목장이 대관령 삼양목장이다. 그 보다 무려 25배나 크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뉴질랜드의 마운트 펨버 스테이션(Mt. Pember Station)에 비해서는 2배가 크다. 세계 최대의 축산기지인 셈이다.
5만정보라고 했다. 서울시와 맞먹는 넓이다.
4
시인은 바람, 비, 눈과 관련한 것에서도 숫자3을 각각 만들어내고 있다. 바람에는 흙을, 비에는 땅을 그리고 눈발에는 씨앗을 개입시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시인은 황무지가 ‘젊은 꿈 가득 설레는 대지’로 바꾸어지기까지 ‘거친 바람에 한 줌 흙’과 ‘퍼붓는 비에 한 줌 땅’ 그리고 ‘냉기서린 눈발에 한 줌 씨앗’에 가해진 ‘하나된 뜨거움’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 ‘뜨거움’ 앞에서 기어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 들판을 그리워하고 마는 것이다.
여기에서 확인되는 정조가 있다. 슬픔이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시인이 시에서 자신을 ‘구름’으로 ‘지렁이’로 그리고 소나 말이 되게하는 형상을 가능케한다. 가슴 아린 슬픔이다. 그 슬픔이 분단의 서러움일 것이라는 것은 시를 읽는 사람은 금방 알아차리게 된다.
시인은 그렇게, ‘세포등판’을 통해서 분단의 아픔을 노래하고 있다.
5
시인은 왜, 3이라는 숫자에 집중을 했던 것일까?
세포라는 ‘세’에서 시작하여 바람, 비, 눈 그리고 세포군, 이천군, 평강군에서 취득한 것이었을 것이다. 3이라는 숫자가 우리민족이 좋아하는 숫자라는 것에 착안했을 지도 모른다.
시인은 3이라는 숫자를 세포등판 개간 역사와도 연동을 시키고 싶었던 것일까? 물론 알 수는 없다.
다만 “누구의 뜻, 사랑, 숨결은/고고히 흘러 흘러/그토록 풍성한 대지 가꿔 낼 힘 되었던가”라는 구절에 표현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한다.
물론 은유적이다. 은유가 시에서 쓰이는 기법이기는 하지만 여기에서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분단을 아파하고 통일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철창에 갇히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일수도 있다.
정론에 따르면 세포등판에 양목장이 건설된 것은 1946년이었다. 해방 이듬해였다. 김일성 주석이 일제의 군마가 키워졌던 곳을 사람들의 먹거리와 입을 거리를 위한 것으로 바꾸어놓은 것이다. 김일성 주석은 1948년에는 농기계들을 보내 종합농장을 창설하도록 했다.
그러나 세포등판은 전쟁을 맞아 폐허로 변해야했다. 세포등판을 개간하는 과정에 무려 3만여 발의 폭발물이 나왔다. 심지어는 미군 탱크 잔해까지도 나왔다고 했다.
세포등판에 대한 개발사업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로 이어졌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80년대에 소 80마리를 세포지구에 보냈다. 김일성주석 탄생 80돐을 맞이하여 해외동포들이 기증한 소라고 했다. 1996년부터는 축산업 발전을 위한 각종 사업들이 다양하게 모색되고 추진되었다고 했다.
정론은 이를 두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세포군의 축산문제에 대해 준 강령적 지침이라고 했다.
세포등판이 북한의 주요 관심지역으로 부상한 것은 2012년 9월 22일이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직접 나서서 개간 결정을 한 것이다. 세포등판이 기존 군 단위 축산업에서 국가적 차원의 초대형 축산업으로 전변되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1년도 안 걸려 세포등판은 개간성공에 이르게 되었다고 했다. 정론에 따르면 2012년과 2013년의 세포등판이 하늘 땅 차이로 변했다. 정론은 ‘세포등판에서 가까운 몇 해안에 대대적인 축산바람을 일으키고 그것이 온 나라에 료원의 불길처럼 퍼져가게 하자는 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이고 의지’라는 것도 밝혔다.
북한이 정론 등을 통해 세포등판을 바깥세상에 적극적으로 알리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세포등판 개간 사업을 ‘새로운 주체100년대의 웅대한 첫 자연개조전투’라고 선전하면서다.
정론은 세포등판을 대규모 축산기지로 변모시킨 것에 대해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구상이였고 간절한 유훈이였다’고 했다. 세포 땅을 두고 ‘대를 이어 백두산 위인 복을 받은 대지’라고 명명한 것과 연동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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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말선의 시 ‘세포등판’은 매우 서정적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편안하고 익숙하게 다가간다.
물론 위험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흔히 북한체제나 북한의 특정 인물을 ‘찬양’한다 싶으면 칼날을 예리하게 세워 달려드는 것이 있다. 국가보안법. 그 안에 있는 제7조 고무찬양조항이다. 시인은 이를 의식한 것일까 시는 들판과 그 들판을 일구는 사람 일반을 ‘예찬’하고 있다.
시 ‘세포등판’은 무엇보다도 쉽다. 70년대에 가수 남진이 불러 국민가요로 된 ‘님과 함께’라는 노래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로 시작되는 대중가요다.
모르기는 해도, 시인 권말선은 ‘님과 함께’를 방 천정이 날아가고 구들이 꺼지도록 불러가면서 작품 ‘세포등판’을 썼을 지도 모른다. 시인 권말선은 물론, ‘남진’처럼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은 아니다.
7
세포등판
권말선
바람포, 비포, 눈포 합쳐서
세포라 부른다지
드넓은 황무지 옥토로 일구기 위해
오랜 세월 꿈을 키우며 바쳐 온 날들
한 뼘 한 뼘 알뜰히 밟으며 가꾼 땅
그 위에 흘린 고귀한 땀방울들
끝 간 데 없는 들판 우에
드센 바람 막을 방풍림 둘러치고
푸른 풀잎 비단처럼 깔아
온갖 가축 풀어먹이자면
날포
발포
땀포
얼마나 쏟아 부었으랴
거친 바람에 한 줌 흙이라도 날아갈까
휘어져 퍼붓는 비에 한 줌 땅이라도 스러질까
냉기서린 눈발에 한 줌 씨앗 얼지나 않을까
하나된 뜨거움으로 일궈 놓은
젊은 꿈 가득 설레는 대지여
아직은 볼 수 없어도
아직은 밟을 수 없어도
가슴으로 느껴오는 광활한 들판
그 푸르름 손에 잡힐 듯 선해라
할 수 있다면 나도
한 자락 맑은 구름 되어
땀 식힐 그늘 만들어 주고 싶어라
할 수 있다면 나도
한마리 꿈틀대는 지렁이 되어
건강한 거름 한 움큼 보태고 싶어라
아, 할 수 있다면 나도
저 들판 한 번 신나게 뛰놀며
푸른 풀내음 한껏 취해보고 싶어라
강원도 세포군, 이천군, 평강군 드넓은 땅에
누구의 뜻, 사랑, 숨결은 고고히 흘러 흘러
그토록 풍성한 대지 가꿔 낼 힘 되었던가
꿈도
미래도
웃음도
파도처럼 넘실대라
풀빛바다 세포등판
그리운 들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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