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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과 전망/사회문화비평

분단체제에서 시인들이 사는 방식

by 전선에서 2014. 10. 16.

분단체제에서 시인들이 사는 방식

<사회문화비평> ‘분단과 통일시’ 3미8군민들레시집 출간에 부쳐

 



1017일 종로 5가 기독교회관에서 문학의 밤이 열린다. 이적, 박금란, 정설교, 문해청, 지창영, 이창기 권말선 등 시인 7명의 동인시집 미8군 민들레출판기념회 행사이다. 이 시집에 대한 평론 전문을 싣는다.




 

<평론>

-분단시대에 시인들이 사는 방식, 문사

 

                                                                                         한성(사회문화비평가) 


기에 있는 시를 쓴 사람들에게 시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들은 한결같이 모두 다 전선에서 치열하게 투쟁들을 하는 사람들이다.

사회단체에서 노동조합에서 그리고 언론사와 교회에서 또한 농촌에서 자신을 불태우고 있는 사람들이다. 압수수색을 당하는 것은 부지기수며 감옥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들을 시인이라기보다는 투사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다. 시를 쓰는 투사. 혹은 투사로서 시를 투쟁의 무기로 삼는 사람들. 여기에 가장 맞아떨어지는 말이 하나 있다.

 

문사. 그렇다. 이적 시인이 이 시집의 서문을 쓰면서 사용한 말이다. 매우 과학적인 개념이다. 이 땅에서 문사로 산다는 것은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이 땅을 가장 치열하게 보듬으려고 할 때 보일 수 있는 살이의 가장 전형적인 방식이다.

 

이 시집의 문사들이 한결같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살이의 특별한 방식을 취하는 것은 이 땅이 평화롭고 풍요롭기 위해서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제기하고 있는 과제 때문이다.

자주 민주 통일. 그것이다. 이 시집은 문사들이 자주 민주 통일에 대해 얼마나 치열하게 사고하고 행동하며 살아가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여기에 있는 문사들의 작품은 그 무슨 미학적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미학적 관점으로 보면 정치구호가 난무하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가능케 할 것이다.

그러나 문사들은 그 미학을 수용하지 않는다. 세련되지 못하고 서투른 표현들로 넘쳐나고 거칠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이것은 역으로 문사들의 시가 생생하고 감동적일 수 있는 원인을 구성해 준다.

 

문사들이기에 매서운 바람과 추위가 겨울나무들을 못 살게 괴롭혔지만 벌써 싹눈들이 나뭇가지에서 눈 감고도 태양을 우러러 망울져 있다는 것에 눈을 던졌을 것이었다. 머지않아 세상이 뒤집히고 더 이상 독재로는 탄압할 수 없을 만큼 잎이 만개하게 될 나무가 문사들에게는 자주 민주 통일을 꿈꾸는 나무로 다가와서는 시가 된다(박금란, 저항의 봄).

 

자주 민주 통일은 그렇게 문사들에게는 심장이고 피다.

 

녹슨 철모 뚫고 피어나는 민들레

 

클로버의 잎사귀에서도 문사들은 여지없이 통일을 읽어낸다. 네 잎은 행운인데 다섯 잎은 외로움이라고 표현한 뒤 그 외로움을 없애줄 수 있는 것이 여섯 잎이라면서 이를 ‘6.15’라고 명명해버린다(이창기, 클로버).

 

여기에 이른바, 일반적 서정성은 설 자리가 없다. 분단을 외면하고 평화통일을 바라지 않는 데서나 나올 법한 서정성은 이 문사들에게는 사치일 뿐이다.

민들레는 녹슨 철모 뚫고 피어나는것으로 덩굴손은 구겨진 철마를 부여잡고 오르는것으로 문사들에게 읽히는 것이다(지창영, DMZ 데칼코마니).

 

단순히 언어유희가 아니다. 문사들의 가슴은 깊숙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한스러움 내지는 서글픔으로 출렁이고 있다. 색깔은 선홍빛이다.

 

남편이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아들은 민주화투쟁 과정에서 죽임을 당한 것으로 인해 통곡하며 여자의 한으로 구십 평생을 살았으면서도 암울한 세상 가슴 속의 눈물 강단진 마음을 된장찌개에 담아 고봉밥 차려주던 친구의 어머니우리 어머니 조선의 어머니가 되고 분단 철조망을 걷는 그 날까지함께 가야 할 어머니가 된다(문해청, 조선의 어머니).

 

그래서였을까. 한스러움이 주조를 이루는 문사들에게 투사는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옷차림새다.

대통령이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하면서도 통일의 속내인 친북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 종북몰이를 하는 것을 세치 혀라고 일갈해버린다(이적, 분단시대1-세치 혀).

그랬다. 명백히 응징이며 투쟁이다.

 

문사들에게 투쟁은 옹골차지만 그러나 꿈은 소박하다. 북한에 있는 출렁이는 붉은 바다’, 바다처럼 펼쳐진 넓디 너른 사과밭에 가서 봄날 꿀벌의 정다운 속삭임에하얀 꽃을 피우고 여름날 태양의 넉넉한 은혜에속을 영글어 가을날 부드러운 바람, 푸르른 하늘 빛에 달큰한 향기 채워 넣은 옹골찬 과실을 먹어보기 위해서다(권말선, 대동강과수종합농장).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파괴

 

민주주의는 문사들에게 통일과 함께 동전의 양면을 구성하는 필수적 범주다.

 

노동자들이 정권과 자본에 맞서면서 움켜쥐려는 민주는 사장 자택 월담하여 양주병을 깨고 이중회계장부 빼앗돼지사장 배도 찢어졌던것들을 주거침입, 절도, 상해를 뛰어넘는, ‘꺾어도 쉼 없이 벽을 타고 오르는 다섯 손가락 담쟁이 넓은 잎사귀처럼질긴 것이고 순결한 그

무엇으로 바꿔 놓는다 (문해청, 빈터에서).

 

문사들에게 민주주의는 어떻게 보든, 처참히 학살당해 있다.

 

전두환이 ‘805월 광주에 공수부대를 동원했던 것에서 부정선거로 얼룩진 박근혜 세력20132014년 국정원 선거개입 혐의를 밝히고자 길거리에 나선 시민들을 탄압하는 것에서 그리고 정치인이 종북단체해산법을 만들어야 한다며 통일애국단체 강제해산법을 발의한 것에서 문사들은 민주주의를 학살하고 있는 칼끝을 짚어낸다(박금란, 학살).

 

특히 국정원이 민주주의를 학살한 것에 문사들은 예리한 갓을 한껏 더 세운다. 분노는 때로 서글픈 조롱으로 형식변환을 이루기도 한다.

사위가 저물 무렵 그는 끌려갔다/협박당한 여동생이 녹음기 속에서 응얼거렸다/오빠는 남파간첩 맞아요/그들이 말했다/그래서 너는 탈북간첩이다/그도 흐느끼듯 말했다/간첩이 되라면 될게요//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파괴한다/너를 간첩으로 만들고야 말겠다’(이적, 분단시대2-국정원).

 

문사들에게 학살은 민주주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4.16 세월호 침몰 참사에서 아이들 또한 문사들에게는 학살당한 것이었다.

가족들이 바다에서/두 눈 시퍼렇게 뜨고/지켜보는 그 앞에서/거짓말 일삼으로/늑장을 부리며/책임을 회피하며//너희들은 어린 생명들/참혹하게/학살했다며 격한 분노를 토해낸다(권말선, 박근혜는 물러나라).

 

민주주의가 학살된 것에 대한 분노의 거의 대부분을 문사들은 권력의 심장부로 향했다.

헌법 제1조가 보장하는 국민의 권력으로 명령한다면서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마라, 오직 한 가지만 하라고 했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이제 그만 내려오라, 당신은 대통령이 아니다!’라고 한 것이다(권말선, 아무것도 하지 마라).

 

섣불리 불질했다간 그 불 네게로 향할 것

 

문사들에게 미국은 학살된 민주주의에 만큼이나 예리한 날을 세우는 영역이다. 나라의 자주화를 문사들은 나라의 생명으로 본다.

 

대구시 남구 봉덕동, 대명동에 있는 미8군 군사기지는 어린이에게는 깜디/코쟁이/양키라고 외치며/연탄재를 굴리고 짱돌을 던질 수 있는놀이터였지만 그러나 투쟁하는 청년노동자에게는 대구시 남구 봉덕동, 대명동에 있는 미국이다(문해청, 8군 봉덕동 아이들).

한미일 삼각 동맹이 땅 자주권 침탈을 목적으로하는 삼각 스텝이고 소나무의 진액을 빨아 처먹고 사는 바다 건너 송충이의 식성임을 알기 때문이다(이적, 분단시대 7-삼각 스텝).

 

문사들은 8군 이중담장 아래 피어나는 작은 민들레에게서 캠프워크 골프장 지나/캠프핸리 미군장교 숙소 너머/이중담장 이중철조망 없는/우리 땅 식민지 남녘하늘에서/분단조국의 북녘하늘까지/너의 곱고 하얀 씨앗으로/수천 만 생명의 꽃이 피는 꿈을 꾼다(문해청, 8군 민들레).

 

빚더미에서/농사꾼이 농사도 할 수 없는 이 땅에서/미국반대, 평화적인 조국통일을 소원한 게/도대체 무슨 죄가 된다는 말인가라며 감옥에서 탄식을 하는 것으로, ‘만약 제국의 철창에서 풀려나면/큰 울음을 울며/황홀하게 상처를 씻어주는 드넓은 바다/민족의 기상이 서린/동해바다로 가고 싶다고 하는 것으로 표현되기도 한다(정설교, 동해로 가고 싶다).

 

그러나 문사들은 자주가 저절로 오는 꿈이 아니라는 것을 웅변한다.

 

곡간을 파고드는 들쥐처럼/남의 땅에 기어들어/전쟁연습 일삼는/미제에 경고한다/멈추어라!//섣불리 불질했다간/그 불 네게로 향할 것이다/바람을 똑바로 보고 판단하라/역풍이 바다 건너 너를 덮치리라고 준열한 경고를 날리는 것이다(권말선, 한미연합전쟁훈련 반대!).

 

뒤 이어올 승리를 믿으며

 

그렇다면 문사들이 자주와 민주 그리고 통일을 통해 실현하려는 것은 무엇일 것인가?

 

그것은 숨죽였던 반도에 열리는 쾌청의 하늘/심봉사 눈을 뜨듯 천지가 개벽하고/제국(帝國)보다 찬란한 신국(神國)의 아침을 여는 것이다(지창영, 신국(神國)의 아침).

 

문사들이 이 시집을 내놓게 되는 세상은 지금, 시끄럽고 요란하다. 분단체제의 끝자락을 온갖 부정과 비리로 부여잡고 있어서다.

그 시집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분단시대에서 가장 치열하게 살고 있는 문사들을 예찬할 투쟁하는 대중들이겠지만 그 반대편에는 국가보안법도 필연적으로 있게 될 것이다.

 

반통일 반민주 악법이 또 다시 칼날을 벼를 것을 잘 알면서도 문사들은 끝내 신국의 아침을 무엇으로 열 수 있는 가에 대한 답 역시도 명쾌하고 과학적으로 제시해준다.

 

문사 박금란의 작품 희망에 있다.

 

‘3.1절 때도 그랬고/4.19 때도 5.18, 6.10 때도 그랬어요/곧 바로 뒤 이어올 승리를 믿으며/죽음 앞에 두려워하지 않으며 싸웠어요/어느곳에나 희망이 있어요/부당한 권력이 결코 못 빼앗아가는/우리들의 힘이 있으니까요

 

문사들이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해 지금 전선에 있는, 그리하여 그 전선에서 시를 온몸으로 만들어내는 이유이다.

 

하기에 문사들은 끊임없이 투쟁하게 될 것이다. 이 땅 투쟁하는 대중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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