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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5

[시] 염(殮), 연(緣) 염(殮), 연(緣) 권말선 세상에 올 땐 탯줄 끊어주며 어서 오라 하고 세상 떠날 땐 마디마디 꽁꽁 묶으며 돌아보지 말라 하고 묶였다 또 끊어지고 엮으면 또 풀어지고 모였다 또 흩어지는 우리네 연 멀고 먼 길 다시 오지 못할 길 가시더라도 잊지 말라고 풀리지 말라고 연의 끈 동여매 주는 염 아가 같은 울음 마지막 부름 못 들은 척 남기고 입술 꼭 깨물며 차마 뒤돌지 않으며 끝내는 마디마디 훌훌 다 풀고 한 줌 재로 가신 님 저 멀리서 기다리실 언제고 다시 뵈올 님, 고운 우리 님 2023. 9. 9.
[시] 강물 강물 권말선 저기 강이 흐른다 물이 흐른다 울렁꿀렁 부대끼어 결을 만들며 흐른다 흘러간다 제 가진 좋은 것은 다 숨 쉬는 이들에게 나누고 제게 던져진 아픔은 모조리 껴안고 떠난다 묵묵히 간다 쉼 없이 흐르는 강은 어머니다 생이다 역사다 어머니가 어머니의 어머니에게 이끌려 어머니가 또 나를 이끌어 흘러가고 내가 아이의 손을 아이는 언젠가 또 제 아이의 손을 잡고 흐를 것이다 물이 흐른다 생이 흐른다 사람이 역사가 흐른다 좋은 것은 뒤에 남기고 아픔은 쓰다듬고 달래며 흘러 결국 고운 것 아름다운 것만 전해주자고 그러자고 흐른다 흘러간다 결을 이루며 끝없이 간다 끝도 없이 2022. 5. 9.
[시] 어머니의 아가(我歌) 어머니의 아가(我歌) 권말선 무던아, 착하고 순한 우리 아가야 잘 먹고 잘 자느냐 잘 자라고 있느냐 엄마를 힘들게 하진 않느냐 이 할미가 너를 돌보다 잃어버린 줄 알았구나 엄마가 데려간 줄도 모르고 잃어버린 줄만 알았구나 네가 너무 보고파서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한다 할머니 보러 오렴 할미가 다 나으면 너를 보러 얼른 갈게 보고 싶은 무던아, 진짜 이름은 뭔지 몇 개월이나 됐는지 기억 따위 없어진들 어떠냐 꽃 같이 나비 같이 예쁜 아가 왼종일 밭매고 들어와도 무던히 기다려주던 어쩌면 그 아가 시집간 딸아이가 낳은 귀하디 귀한 아마도 그 아가 더 많이 사랑해주지 못했던 조금 더 안아주고 싶었던 후회와 아쉬움이 남아 성근 기억 한 끝을 붙안고 보채며 놔주질 않는구나 할미를 부르는 네 옹알이 먼 기억 속 네 .. 2022. 3. 18.
[시] 한 방울의 노래 한 방울의 노래 권말선 고향 떠나올 때 어머니 내 등을 쓸어주시며 어디든 가거라 끝까지 가거라 두려워 말아라 고향 떠나는 날 내 동무들 큰 강줄기로 작은 냇물로 가는 고랑으로 흩어질 때 서로 손 흔들어 주며 힘차게 나아가자 어디에 있든 서로를 그리워하자 어렵고 느린 걸음이라도 우리 닿는 그 끝 혹 상처에 패인 자리라도 다시 생명이 피어남을 믿으며 웃으며 어머니의 혼 어머니의 생명 어머니의 사랑 어머니의 그리움 다 쏟아붓고 나 다시 돌아갈 곳 있으니 길 잃지 말라는 한결같은 신호 그리워한다는 두근거림으로 언제나 기다려주는 품 나의 호수 나의 어머니 나의 심장이어라 2022. 3. 8.
[시] 늙으신 어머니를 위한 기도 늙으신 어머니를 위한 기도 권말선 * 생전 처음 당신의 아파트를 갖게 되어 설렘에 들뜬 어머니 이사를 한 달여 앞둔 어느 날 척추를 다쳐 몸져누우시더니 이런저런 겹 쌓인 병마에 그만 앓고 또 앓으셨다 어머니는 숱한 밤낮을 안개비 흩뿌리는 낯선 숲 속에서 길을 잃고 마구 헤매는 듯한 고통의 시간을 보내셨다 아득한 방황을 이기지 못하고 길 찾기를 포기하실까 두려워 어머니의 헝큰 잠을 쾅쾅 두드리며 나약해지지 마시라고 기도했다 ** 세상 가장 무거운 몸으로 세상 가장 두려운 꿈속에서 세상 가장 어두운 귀로 세상 가장 외로운 싸움을 마치고 드디어 새 집으로 퇴원하신 어머니 바스락거리는 하얀 얼굴 위로 희미한 미소 한 가닥 띄며 갑옷을 입지 않으면 쓰러지는 패잔병 같은 승자가 되어 침대에서 의자로 옮겨 앉으셨다 .. 2021. 8.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