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동결과 평화협정을 위한 새로운 셈법
<분석과전망> 9월 북미실무협상에서 북미정상회담으로
최선희 북 외무성 제1부상이 지난 9일 미국에 ‘새로운 셈법’을 강조하며 9월 하순 북미실무협상을 제시했었다. 정세의 핵이다. 최 부상이 북미실무협상 시기를 왜 9월 하순으로 제시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북이 미국에 북미대화에서 제시한 시한인 ‘올해 안’에 맞춘 셈 법이다. 최 부상이 미국에 주문한 ‘새로운 셈법’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 또한 없다.
‘새로운 셈법’에 반응을 보인 것은 재밌게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존 볼턴 백악관안보보좌관을 경질하고 볼턴이 주창했던 ‘리비아 모델’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을 한 데 이어 18일에는 '리비아 모델'이 북미 대화에서 큰 차질을 초래했다고 털어놓으면서 "어쩌면 새로운 방법이 매우 좋을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볼턴 경질에 놀라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맥매스터 백악관안보보좌관 매티스 국방장관 해고 등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어서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하고 있는 대북강경파 운용방식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리비아 모델’을 부정하고 ‘새로운 방법’을 언급한 것에 대해서는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화들짝 했다. 볼턴 경질과는 그 정치적 무게나 의미가 확연히 달라서다.
미국의 전쟁세력들이 북 비핵화 방식으로 제기했던 ‘리비아 모델’은 미국의 적대적 비확산책의 한 종류다. 세 가지 또렷한 의미를 갖고 있다. 핵개발국을 대상으로 했다는 것에서 방식은 보상으로 접근한다는 것 그리고 종국적으로는 붕괴를 목표로 했다는 것 등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리비아 모델’을 공개적으로 부정을 하고 ‘새로운 방법’을 언급했다는 것은 그런 점에서 북미대화에서 협상 목표를 정권붕괴에 두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북핵문제 해결 과정에서 ‘보상’ 문제로 접근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해주고 있다. 중요한 것은 북을 핵개발국이 아니라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함의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1-북을 핵보유 전략국가로 인정하는 미국
북은 양탄일성국이다. 북이 원자탄과 수소탄을 보유하고 그 투발수단인 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보유했다는 것은 북이 확보한 핵미사일 수준이 최소한, 핵강국의 표준치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많은 나라들이 명시를 하지는 않지만 현실적으로는 북을 신흥핵강국으로 인정하고 있다. 4대핵강국이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양탄일성의 정치안보적 위력은 유엔의 5개 상임이사국이 다 양탄일성국이라는 것에서 확인된다. 60년대 말까지 이어졌던 중미대결전을 종식시키고 중미수교를 가능케 했던 것도 중국의 양탄일성이었다. 북이 양탄일성국이 되었다는 것은 70여년 간 적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과 군사안보적으로 대등해졌다는 것 뿐 만 아니라 미국의 세계 핵 패권을 근본에서 흔들고 있다는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치명적이다. 치명적인 건 더 있다. 북이 완성한 핵무력에 기초해 이후 ‘더 위험한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더 위험한 핵무기’는 미국의 세계적인 핵물리학자로 2010년 영변핵기지까지 방문한 적이 있는 대북전문가 지그프리트 해커 박사가 최근 들어 부쩍 쓰고 있는 개념이다. 2년 전 리용호 외무상이 언급한 ‘태평양상에서 역대급 수소탄 시험’과 관련돼 있을 것으로 보이는 개념이다. 이른바, 미래 핵이다.
북핵 협상에서 미국에 북의 ’더 위험한 핵무기’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다. 북이 양탄일성국에서 더 나아가 ‘더 위험한 핵무기’까지 만들 수 있는 능력까지 발휘하게 된다면 미국의 핵패권은 단숨에 파탄날 수 밖에 없다. 이는 현 시기 미국에 제기되는 절대절명의 안보과제가 북의 ‘더 위험한 핵무기’ 제조 능력을 제거 혹은 동결하는 것임을 확정해준다.
북의 ‘더 위험한 핵무기’ 제조 능력을 제거 혹은 동결할 수 있는 방도는 한가지 밖에 없다. 핵동결이다. 북핵을 현 수준에서 동결을 해야만이 미국은 북의 ‘더 위험한 핵무기’ 즉, ‘미래 핵’을 막아낼 수 있는 것이다. 해커 박사가 2~3년 전 북이 핵미사일 능력고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을 때부터 핵동결을 강조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해커 박사는 최근 한국에서 가진 한 강연에서 이론상으로는 북핵을 없앨 수 있어도 북핵을 개발한 사람 머리는 없앨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는 말도 했다.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상식이다. 미국 내 대표적인 반북인사인 조셉 윤 전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강조하고 있는 것 역시 그 상식이다. 최근, 향후 북미 실무협상에서 미국이 영변 외 추가 핵시설 폐기나 비핵화 로드맵, 검증 절차 등을 요구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그건 핵 감축 등 핵동결 범주가 된다고 이야기를 한 것이다.
북핵 동결은 북핵 폐기가 현실상 원리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북이 핵보유국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또 다른 형태인 셈이다. 북이 양탄일성국이라는 현실 그리고 북핵 문제의 해결 방도가 핵동결밖에 없다는 원리는 이처럼 미국이 현실적으로 원리적으로 북을 핵보유 전략국가로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이유들이다.
2- 영변 핵기지 폐기에서 핵동결로 그리고 한미연합군사연습 중단에서 평화협정으로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제재 해제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북핵동결에 대한 댓가로 지불해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규정이다. 전문가들은 제재 해제 문제 보다 체제 안전 문제가 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이 북에게 취할 안전보장책에서 첫 출발은 한미연합군사연습 중단이다. 대북적대의 일상적이고 치밀한 표현인 한미연합군사연습을 중단하지 않고서 북의 체제안전을 보장한다고 말 할 수는 없다. 한미연합군사연습 중단은 아이디어나 이벤트가 아니다. 지난 해 남북이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체결한 9.19남북군사합의 이행을 보장해주는 중요한 기제이기도 한 게 한미연합군사연습 중단이다. 한미연합군사연습 중단은 평화협정 체결로 이어지는 공정이라는 게 핵심적인 안보의미다. 현 시기 미국이 북에게 취할 안전보장책에서 가장 중핵적인 기제가 바로 평화협정이다. 물론 완벽한 것은 아니다. 북의 안전보장책은 이후 정세 발전에 따라 주한미군 철수라는 근본문제를 중심에 놓고 제기되게 될 것이다.
미국의 한미연합군사연습 중단과 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하기 위해 북은 이미 오래 전 전략적 조치들을 다 취해 놓았다. 핵시험 중단과 중장거리 미사일 시험 중단 그리고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 및 풍계리 핵시험장 폐기 등이다. 북은 한 발 더 나아가 영변 핵기지 폐기까지도 언급해놓고 있다. 획기적이다. 핵보유 전략국가인 북이 영변 핵기지 폐기 의사를 밝힌 것은 단순한 게 아니다. 현 단계에서 이 보다 더 확고하고 전략적인 건 없다. 미국 내 몇몇 전문가들과 전직관료들 등 반북세력들이 영변핵기지 폐기의 의미를 폄하하지만 그것들은 거짓말에 가깝다. 영변핵기지는 해커 박사가 단언하듯 북핵의 심장이다.
3-새로운 북미관계 본격화와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재개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 서울 방문
많은 것들이 명백해지고 있다. 북이 핵미사일 시험 중단에 이어 영변핵기지 폐쇄로 핵동결에 진입할 것인 만큼 미국이 내놓아야할 새로운 셈법은 간단하다. 북을 핵보유 전략국가로 인정하는 가운데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하고 평화협정 체결 전망을 내놓는 것이 미국의 새로운 셈법이다. 미국이 그 새로운 셈법을 들고 나올 때 북미실무협상은 내일 당장이라도 열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실무협상은 2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성과에 기초해 3차 북미정상회담 합의문을 도출하는 회의가 될 것이다.
3차 북미정상회담 의미 역시 새로운 셈법만큼이나 명백하다. 북미정상회담은 당연하게도,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전망을 확고하게 열어주게 될 것이다. 새로운 북미관계는 물론,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새로운 북미관계가 순탄치 않는 원인으로 교과서는 흔히 미국이 제국주의 국가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제국주의는 사멸의 길을 저 스스로는 열어젖히지 못한다는 것이다. 틀린 견해는 아니다. 그러나 현 시기 북미대결전에 적용하기에는 상당히 낡은 논리다. 새로운 북미관계가 순탄치 않게 진행되는 것은 북미협상이 과거처럼 깨질 수도 뒤로 되돌아갈 수도 있는 가역성이 없기 때문이다. 불가역성은 북미협상이 핵보유 전략국가 북과 세계 최대 핵보유 전략국가 미국 간에 진행되는 협상이라는 데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북미협상이 파탄이 나거나 되돌아갈 수 있는 것이라면 굳이 우여곡절을 동반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불가역적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발로 미국 내 전쟁세력에게서 온갖 우여곡절이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미 전쟁세력의 반발이 방치가 아니라 제압의 대상이란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북미정상회담이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전망을 열기 시작하는 무렵 문재인 정부는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조치 등을 취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는 남북 간 교류와 협력을 전면화하는 데에서 떠야하는 관건적인 첫 삽이다. 남북관계 개선 사업을 본격화한다는 것이 본질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창하고 있는 평화경제의 전망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전략적 의미를 갖기도 한다. 더 전략적인 의미는 따로 있다. 서울남북정상회담 준비라는 점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은 남북교류협력의 최고 정점으로 남북관계개선 단계를 조국통일단계로 바꿔내는 사변적 의미를 갖는다.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이 이후 북미정상회담이 열어젖힐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전망에 단단히 기초해야하는 이유다.
우리 겨레는 결국, 하반기에 미국에 새로운 셈법을 주고 북미정상회담을 열어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전망을 내오는 가운데 남북관계 개선을 본격화하는 정세를 만들어내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70년 분단체제를 종식시키고 자주통일체제를 열어젖히는 우리 겨레의 거대한 진군인 김정은 위원장 서울 방문을 위한 준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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