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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과 전망

스티브 비건 대표와 김혁철 대표가 만났을 때

by 전선에서 2019. 2. 11.

만사OK”, 혹은 ‘Every Thing OK’

<시사콩트> 스티브 비건 대표와 김혁철 대표가 만났을 때

 

 


2차 북미정상회담 실무협상을 하기 위해 평양을 찾았을 때 나를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칼바람이었다. 살을 파고들 듯 예리하면서도 큰 무게가 느껴지는 바람이 온 몸을 휘감았다. 큰 덩치였는데도 휘청할 정도였다. 하얀 얼굴은 금새 얼고 벌게졌다.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가 손을 맞잡아 주며 백두산 칼바람이라는 설명을 주었다. 그리고는 김일성 주석의 항일무장투쟁 이야기와 김정일 국방위원장 통일사업 관련 비사를 꺼냈다. 난 곧바로 손사래를 쳤다. 매들리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이 바로 떠올라서였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북 고위관리들은 모든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선대 지도자들 이야기를 앞세우는데 그냥 듣고 있으면 말려든다면서 다른 말로 화제를 돌려야된다는 조언을 내게 해주었었다.

 

김 대표와의 만남은 그때가 세 번째였다. 지난 1월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방미수행단으로 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만났을 때 김 부장을 수행해 온 인사 중에 한 사람이었던 김 대표를 난 처음 봤었다.

국무부 직원에게 CIA의 도움을 받아 조사해 볼 것을 지시했다. 김 대표는 스페인 대사였을 때만 해도 별로 알려진 게 없었다. 부하직원의 브리핑을 듣자 김 대표가 어느날 혜성처럼 등장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혁철은 2000년대 초반에 외무성에 입사해 외무성 내 전략부서인 9국에서 당시 9국 참사였던 리용호 현 외무성 부상 밑에서 일을 했다. 북에서 참사는 전략일꾼을 의미한다. 김혁철은 이후 6자회담 때에 김계관 제1부상 연설문 작성을 한 인물이기도 했다. 어쩌면 나 보다 탁월할지 몰랐다. 나의 이력이야 김 대표에 비하면 일천하다. 나를 두고 정부와 의회, 민간기업 등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협상통으로 평가를 해주고 있지만 과장된 측면이 많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사무국장, 상원의원 안보보좌관 등이 내가 내세울만한 스팩인 것이다.

더구나 김혁철은 6자회담과 2006년 첫 북핵시험과 관련한 대응처리에서 특출한 공로를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 때문인지 20099국 부국장으로 승진했다. 김혁철은 그후 2012김정은 시대가 시작되면서 다시 외무성 참사로 승진을 했다. 국무위원회에서 전략적으로 발탁해 키웠을 것이다. 김 대표를 두 번째 본 것은 김영철 방미 후 직후 스웨덴에서 최선희 부상과 한 실무회담에서였다. 김 대표는 핵 문제 전문가이자 북 외무성의 전략통인 셈이다.

 

전략통다웠다. 실무협상에서 김 대표는 내게 많은 이야기를 풀어놨다. 23일 간, 무려 55시간. 길고 긴 시간이었다. 물론 내가 더 많은 말을 하기는 했었다. 그때 김 대표가 유독 강조한 말이 하나 있었다. ‘만사OK’라는 말이었다.

스티브 비건 대표님, 우리 겨레에게는 만사형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어로 하자면 ‘Every Thing OK’가 된다는 설명을 하면서 한글과 영어를 섞으면 만사OK’라는 말이 된다고 한 것이다. 모든 일이 술술 풀린다는 사자성어로 접근하는 김 대표의 그 재밌는 발상에 난 박수를 보냈다.

 

김 대표가 가장 정성을 들여 설명해 준 것은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에 대한 것이었다. 두 나라 관계가 종착점을 향해 빠른 속도로 전진할 수 있는 길이라고 했다. 당연했다. 난 중간에 말을 잘랐다. 동의했기 때문이었다. 특별한 길은 아니었다. 웬만한 정세분석가들은 다 알고 있다. 그 길을 내준 사람이 김정은 위원장이라는 것을 트럼프 대통령도 인정을 한다.

 

지난해 9월 김정은 위원장이 평양남북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상응조치를 전제로 영변 핵기지 폐기 용의를 밝혔을 때 난 사실, 한 방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대북특별대표가 되고 난 뒤 문재인 대통령을 묶어 남북관계 개선을 통제할 정치기제로 마이크 폼페오 국무장관이 내려준 한미워킹그룹을 구상하고 있는 가운데 대북업무를 파악하고 있을 때 느닷없이 접한 뉴스였다. 북이 전략국가로서 갖고 있는 위력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를 처음으로 경험한 일이었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의 통 크면서도 예리한 그러면서도 과학적으로 너무나도 완벽한 결단에 난 탄식을 했다. 말문이 오랫동안 막혔던 이유였다. 폼페오 장관도 한동안 말을 못하고 담배만 연신 피워댔다.

 

김 대표는 트럼프 정부가 언론을 통해 부각시키고 있는 특별한 사안 하나에 대해 전략통답게 다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ICBM 폐기에 대한 문제였다. , ICBM 폐기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더할 수 없이 좋은 선물이 된다는 설명을 해주었다. ‘북이 ICBM을 안 쏜다고 큰 소릴 뻥뻥 치곤했던 했었는데 이후에는 북의 ICBM을 없앴다고 큰 소리를 칠 수 있는 사안이라고 했다. 미 국민들에게는 공포를 없애주고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차기 대선에서 승리를 확정지어주는 데에서 그 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는 것을 설명해준 것이다. 김 대표가 ICBM 폐기 문제를 상부에 보고할 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난 하고 있다. 신흥핵강국인 북이 미국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ICBM를 폐기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잠수함발사미사일(SLBM)을 보유해 이른바, ‘공포의 균형을 성립시키고 있는 터라 ICBM 폐기라는 조치를 북으로서는 얼마든지 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북남관계가 대전환을 맞이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조미관계는 여전히 답보상태에 머물러있는 것을 비건 대표님을 잘 알고 있을 게 아니오

김 대표는 그렇게 협상탁에서 큰 소리를 쳤다. 물론 목소리는 중저음으로 낮았고 잔잔했다. 미북관계가 답보상태에 머물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너무나도 또렷하다. 트럼프 정부가 북이 내놓고 있는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의 길로 선뜻 나서고 있지 못해서인 것이다. 언론에서 의도적으로 보도를 하지 않고 있지만 북의 영변 핵기지 폐기에 조응해 미국이 내줄 것은 평화협정 체결 그리고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결심을 밝히는 일이다. 매우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다. 영변 핵기지 폐기에 정치안보적 가격이 같은 것이 평화협정 및 주한미군 철수 결심 천명인 것이다. 2차 미북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다. 이는 현 시기 미북대결전에서 핵심전선이 영변 핵기지 폐기평화협정 및 주한미군 철수 전망이라는 것을 확정해준다.

 

영변 핵기지 폐기평화협정 및 주한미군 철수 전망

확정컨대, 이는 그 누구도 깰 수 없는 구도다. 그 구도를 흔들어보려는 기도가 없는 건 물론 아니다. ‘영변 핵기지 폐기에 조응시키는 미국의 상응조치랍시고 종전선언, 연락사무소, 인도적 지원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그 한 예다. 트럼프 정부의 계산은 물론 아니다. 반북진영 반트럼프 진영에서 주로 나오고 있다. 그 의도는 분명하다. 구도를 흐려보고자 내온 것이다. 그러나 사실, 아무짝에도 필요 없는 헛짓거리다. 김정은 위원장이 만들어낸 영변 핵기지 폐기평화협정 및 주한미군 철수 전망이라는 구도는 결코 흔들릴 수도 깨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고 명료하다. 북이 전략국가로서 발휘하는 반제평화전략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말입니다. 대화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원칙에 입각하는 겁니다

김 대표가 했던 그 말은 고리타분한 말이 아니었다. 사실, 트럼프 정부는 아직도 협상의 자세를 제대로 세우고 있지 못하다. 문제해결 의지를 강하게 갖지 못해서 생기는 일이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는 언제까지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반트럼프 진영 반북진영의 공세를 의식하면서도 김정은 위원장이 영변 핵기지 폐기 용단으로 내주는 길로 들어서 덤으로 주는 ICBM 폐기까지 받으면서 결국 평화협정 체결 그리고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결심을 밝히게 될 것이다. 물론 곡절이 있을 것이며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포장지를 씌워 흐릿하게 만들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북의 결심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평화협정 체결 그리고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결심을 밝히게 되면 지난 해 센토사 섬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전략을 수용해 만든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은 만사형통일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김 대표에게 2차 미북정상회담이 있기 전 한 번 더 만나야된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난 껄 껄 웃으며 한마디 했다.

만사OK”

그때, 김 대표는 ‘OK’라는 말에는 ‘One Korea’라는 뜻도 포함돼 있다는 말을 하면서 손을 잡았다. 또 다시 한 방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공항의 칼바람도 더 이상 살을 에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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