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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주통일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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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일기3

[시] 반찬을 포장하며 반찬을 포장하며 권말선 먹음직하게 만든 반찬을 정성스레 포장하며 내일 가격표 붙여 대형마트에 진열되기 전 오늘 뜨거운 불 앞에서 열심히 볶은 내가 퇴근할 때 이 반찬을 가져가 가족과 한 상에 둘러앉아 맨 먼저 먹어볼 수 있다면 좋겠구나 생각했지 그리고 이 지역 모든 노동자가 퇴근길에 원한다면 오늘 자기 노동의 대가와 우리 공장의 반찬을 바꿔 갈 수 있다면 좋겠구나 라는 생각도 했지 집을 짓는 노동자는 집을 빵을 만드는 노동자는 빵을 옷을 만드는 노동자는 옷을 필요한 대로 가질 수 있다면 또 집으로 옷을 빵으로 집을 옷으로 빵을 바꿔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생각했지 먹음직스런 반찬을 정성스레 포장하며 오늘 만든 반찬이 빵이 되고 오늘 만든 반찬이 옷이 되고 오늘 만든 반찬이 집이 되고 오늘 만든 반찬으로 .. 2022. 9. 26.
[시] 절임배추 절임배추 권말선 우리 공장에 절임배추는 없어요 만 있어요 국물 적당히 머금은 김치볶음 보기만 해도 군침 돌지요 아침부터 쏟아지는 조장 언니 목소리 “왜 이렇게 일머리가 없냐, 빨리빨리 해라, 거기서 뭘 하고 있냐!” 등 뒤에서도 눈앞에서도 호통이 날아올 땐 시나브로 지친 마음 그만 절임배추가 되지요 우리 공장에 절임배추는 취급 안 해요 묵은지처럼 알맞게 잘 익은 노동자가 되려면 호통도 견뎌가며 나날이 배우고 익혀야 해요 절임배추는 온갖 양념에 묻혀 인내의 시간에 묻혀 자기를 다 녹이고 나서야 비로소 묵은지가 되니까요 우리 공장에 절임배추 하나 김치가 되려 묵은지 되려 이제 막 버무려지고 있어요 2022. 6. 25.
[시] 새우와 나 새우와 나 권말선 너는 새우 바짝 언 냉동 새우 나는 노동자 바짝 언 초짜 노동자 바다는 좁다고 점점 좁아진다고 어쩌면 너는 다른 세상을 꿈꿨을까? 세상은 넓다고 훨씬 넓다고 어쩌면 너는 잠시라도 들떴을까? 꼬리와 맨몸만 남기고 꿈도 앗기고 바짝 얼어버린 채 여기로 왔구나 산처럼 쌓인 새우 12마리씩 세어 담으며 너의 꿈 너의 바다 너의 동무들 그려보다가 12마리 또 12마리씩 큰 산 다 허물면 내 꿈은 조금씩 이뤄지겠지 그려보다가... 새우, 바짝 언 새우는 베트남 노동자에게서 한국의 노동자에게로 오는 동안 몇 번이나 탈출을 기도했을까? 눈물 흐를 새도 없이 바짝 얼어버린 네 눈물 달래줄 새도 없이 바삐 12마리 또 또 12마리씩 큰 산 허물며 조금씩 조금씩 안도하는 나는 나는 초짜 노동자 2022. 5.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