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들어가는 미국
<분석과전망> ‘북은 핵보유국이고 CVID는 비현실적이다’
“트럼프 정부는 비현실적인 CVID를 철회하고 북을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해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현실적 접근을 꾀해야한다”
미국의 안보문제 평론가인 아론 데이비드 밀러와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인 리처드 소콜스키가 11일 글을 통해 주장한 내용이다. 글 제목은 '평화를 성취할 수 있다면 비현실적인 CVID 목표에서 물러날 가치가 있다’이다.
밀러와 소콜스키는 목표 수정의 두 가지 이유로 ‘북한의 현존하는 군사역량’ 그리고 CVID의 비현실성을 들었다. 그들은 특히 미국이 목표로 설정하고 있는 CVID의 역기능을 강조했다.
‘비핵화에 대한 집착이 남북 간, 북미 간 전쟁의 위험을 줄이고 한반도와 동북아를 더 안정화하는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전략을 저해’한다고 했다. ‘CVID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고정관념이 전쟁 위험을 줄일 다른 방안들을 몰아내고 가장 어렵고 정치적인 문제가 진전을 보는 걸 막는 효과가 있다’고 한 것이다. CVID에 대해 집착을 하게 되면 트럼프 대통령의 거창한 계획에 걸림돌이 된다는 말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거창한 계획이란 6.12북미공동성명의 첫자리에 올라있는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아울러 트럼프정부가 핵무기에 집중한다고 해서 한국과 일본, 주한미군을 바로 위협하고 있는 북의 생화학, 재래식 무기의 문제가 풀릴 수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들이 최종적으로 주장한 것은 "북한의 현존하는 군사역량을 고려할 때 비핵화는 목표를 위한 수단이 돼야지 그 목표 자체가 돼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밀러와 소콜스키가 새롭게 제시한 목표는 한반도와 미국의 평화와 안전이다. 그들은 한반도와 미국의 평화와 안전으로 목표를 정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절차 혹은 방도까지 제시하고 있다. 두 단계다. 미국이 아무리 불쾌하더라도 북이 핵보유국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첫 단계라고 했다. 다음 단계는 남북이 화해, 한반도의 포괄적인 안보체제를 위한 합의를 구축한다면 북한의 핵무기를 용인하는 방안에 타협하는 것이라고 했다.
주고받기를 통한 타협을 하자는 것이 그 골자다. 구체적으로는 북은 핵무기와 미사일 역량, 생산 기간시설을 억제하고 줄이고 미국은 북의 체제를 신뢰성 있게 보장하고 경제개발과 제재완화로 북을 돕는 것이라고 했다.
밀러와 소콜스키는 마지막으로 “남북한의 정치·경제적 관계가 개선되고 북미 관계가 더 정상화되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안보감각이 더 나아질 것이고,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자신과 북한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핵무기가 필요하지는 않다고 믿게 될 수도 있다”고 했다. 6.12공동성명에 명시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가 먼 훗날에나 가능한 전략적 과제라는 것을 그들은 그렇게 드러낸 셈이다.
언뜻 보면 놀라운 일이다. 의미가 깊으며 매우 현실적이고 실용주의적 제안이라는 점 때문이다. 허나, 정세의 흐름을 조금만 짚어보면 특별할 것이 없다.
미 국무부는 지난 2일 그 동안 사용해왔던 비핵화 표현인 CVID, 즉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대신, FFVD(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 즉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화들짝 놀랬다. 미국 내에서 비핵화 기준을 낮추는 것인지 아니면 비핵화를 구체화하는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FFVD가 6.12북미공동성명에 명시돼 있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영어식 표현이라는 점이다.
미국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징표였다. 마이크 폼페오 장관 역시 북미고위급회담을 마친 뒤 방문한 아프가니스탄에서 “비핵화가 몇 시간 동안에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는 건 터무니 없는 일"이라는 일견 놀라운 말을 했다. CVID가 당장에는 불가능하며 먼 훗날에나 가능한 전략적 과제라는 것을 트럼프 정부의 2인자가 나서서 매우 깔끔하게 밝힌 것이다.
미국의 선명해지는 변화다. 6.12북미공동성명에서 핵심은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이며 특히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의 당면 목표가 북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가운데 핵동결에 있음을 드러내주고 있는 것이다. 최근 북이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비핵화의 조치로 미사일엔진시험장 폐기를 언급하고 트럼프 미 대통령이 12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종료 후 기자들에게 북이 어떤 핵시험 미사일 시험도 없었고 과거와 같은 (핵.미사일) 연구도 없었다고 강조하면서 핵 시험장 한 곳을 폭파한데 이어 머지않아 미사일 (엔진)시험장 한 곳을 폭파할 것이라고 말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의미다.
이것들은 미국이 한반도에서 손을 뗄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절로 오는 정치현상은 아니다. 갈수록 심화되는 미 세계패권의 약화를 내부적 동인으로 하고 결정적으로는 북의 핵무력 완성이 불러오는 세기적 변화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듯 미국이 현실을 똑바로 보고 북의 실체를 정확히 본 탓에 점차적으로 철이 들어가고 있는 것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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