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감축과 북미관계정상화의 윤곽
<분석과 전망> 트럼프 대통령의 '쌍포'가 드러내주는 북미합의들
북이 12일 외무성 공보를 통해 오는 23∼25일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그리고 한국 기자단을 불러놓고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행사를 한다고 밝혔다. 전격적이다. 북이 지난 4월 20일 핵경제병진노선을 종료하고 사회주의 경제 총집중이라는 새로운 경제발전전략을 내놓기 전까지 구체적으로는 핵시험 금지와 핵폐기장 폐기 선언을 하기 전까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북이 북미관계정상화에 본격 돌입했음을 의미한다.
북의 북미관계 정상화 작업은 왜 이렇듯 전격적인 것일까. 미국이 그 답에 단서가 될 만한 내용들을 내놓고 있다. 마이크 폼페오 국무장관과 존 볼튼 백악관안보보좌관 등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쌍포’라 불리우는 대북강경파 인사를 통해 그간 북미 간 합의 내용의 일단을 공개하고 나선 것이다. 놀랄만큼 구체적이고 풍부하다. 물론,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곳곳에 주관을 널어놓고 있는 건 감안해야할 대목이다.
ICBM 폐기로부터 시작되는 핵감축과 미국의 대북 민간 투자
‘북이 핵무기 프로그램 폐기를 하면 미국은 민간 투자를 하겠다’
폼페오 장관이 13일 미 ‘폭스뉴스’와 ‘CBS’ 방송에 출연해 그렇게 밝혔다. 폼페오 장관은 이어 ‘미국의 관심사는 북한이 로스앤젤레스나 덴버에 대해 지금 인터뷰를 하는 장소에 대해 핵무기를 발사할 위험을 막는 것’이라며 그것이 트럼프정부의 목표라는 말을 했다. 트럼프 정부가 북핵에 세운 가장 당면한 목표가 ICBM 폐기라는 것을 확정해준다. 핵감축을 통해 북미관계정상화를 하고 최종적으로는 비핵화로 나아가는 경로 설정이다.
민간투자가 대북 제재 해제를 전제로 한다는 건 기본이다. 그리고 폼페오 장관이 말한 민간 투자는 미국이 자주 사용하는 경제보상이나 경제지원과는 관련이 없다. 말 그대로 국가 간에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제활동으로 민간 투자가 나온 것이다. 볼턴 보좌관도 이날 CNN 방송에 출연해 '경제 원조(economic aid)'는 빠질 것이라고 했다.
볼턴 보좌관은 "우리는 최대한 빨리 북한에 무역과 투자를 개방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혀 북핵 감축과 민간투자에 대한 의욕을 드러냈다. 폼페오 장관은 투자 대상에 대해 특정까지 하고 나섰다. 북의 에너지(전력)망 건설과 사회기반 시설(인프라) 구축을 꼽은 것이다.
결국, 미국은 북이 ICBM 폐기를 결정하면 미국과 제3국 기업들의 북 진출 및 투자를 막는 각종 독자 제재를 해제함으로써 북과 정상적인 경제관계가 수립될 수 있는 길을 열겠다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과 폼페오 장관이 두 차례의 회담에서 구체적으로 논의하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핵 감축 과정에 진행될 평화협정과 북미수교
볼튼 보좌관은 13일 ABC 방송 인터뷰에서 "비핵화는 단순히 핵무기만 뜻하는 게 아니라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능력 포기"라고 했다. 그리고는 “핵과 탄도미사일뿐 아니라 대량파괴무기(WMD)의 다른 종류인 생화학무기도 협상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했다. 폼페오 장관도 같은 말을 했다.
볼튼 보좌관은 북 비핵화의 주체로 미국의 주도성을 강조하는 발언도 했다. 북핵 폐기와 검증 과정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역할을 할 것”이라면서도 “실제 핵무기 해체는 미국이 할 것이고, 다른 나라들의 도움을 받을 것”이라고 한 것이다. 한마디로 미국이 직접 북 핵무장 해제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들은 북핵에 대해 미국이 세운 장기적 목표가 CVID와 대량살상무기(WMD) 폐기라는 것을 보여준다. 북미 간 합의가 곡절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으로 보는 사람들은 없다. 볼턴 보좌관은 북이 광범위한 핵프로그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북은 ‘핵과 미사일 시설의 위치를 모두 공개해야 할 것이고, 개방적인 사찰을 허용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누구도 북핵 프로그램 폐기가 쉽다고 믿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폼페오 장관의 전망은 더 총체적이고 과학적이다. 비핵화의 결과는 과거처럼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면서 트럼프정부가 비핵화 협상에 대해 매우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했다. 할 일이 많으며 시간만이 말해줄 것이라는 말까지도 했다.
완전하고 불가역적인 북미관계정상화
북미 간에 비핵화 합의가 나올 경우 앞으로 그것을 이행하는 일에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은 가히 필연이다. 그러나 당장의 정세 흐름은 북미관계정상화의 전반 과정을 낙관케 해주는 몇 가지의 지점들을 보여주고 있다.
북미가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의 핵탄두와 핵물질, ICBM 중 일부를 수개월 안에 북 밖으로 반출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진 것이 그 하나다. 물론, 선뜻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기는 하다. 핵동결을 입구로 핵폐기를 출구로 할 것이라는 흔히 회자되었던 비핵화의 경로와도 약간 차이가 난다. 핵동결 없이 곧바로 핵폐기로 이어가는 경로다. 비핵화의 마지막 단계에서나 폐기 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돼온 북핵 일부를 초장에 폐기함으로써 비핵화의 미래를 믿을만하게 담보해주는 의미가 있기는 하다.
이는 ‘핵무기를 폐기해 테네시 주(州)의 오크리지로 가져가는 것’이라고 한 볼튼 보좌관의 발언을 돋보이게 해준다. 현 시기 북미 협상탁에서 핵 반출 장소까지 오르내리고 있다는 것을 반영해준다. 중요한 것은 현 시기 북미협상탁의 중심의제가 핵감축임을 확정해준다.
다음으로 예사롭지 않은 것은 폼페오 장관의 방북에 동행했던 브라이언 훅 국무부 선임 정책기획관이 11일 인터뷰에서 북의 불가역적 비핵화가 2020년까지 가능하다고 했다는 점이다. 감축 기간이 트럼프 대통령 첫 임기 내인 2020년까지로 특정된 것을 보여준다.
예사롭지 않은 또 하나는 볼튼 보좌관의 발언이다. 볼튼 보좌관은 북미정상회담에서 합의를 통해 조약이 맺어지면 그것을 미 의회 비준을 거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북미합의의 의회 비준이 "가능하다"면서 그를 위해 "대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한 것이다. 북미합의를 되돌릴 수 없도록 쐐기를 박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미국의 요구를 수용해 이행하면 안전보장도 제공할 것”
폼페오 장관의 발언이다. ‘안전 보장 제공’이라는 말은 대북적대정책 폐기에 대한 미국식 표현이다. 트럼프 정부의 대북적대정책 폐기는 현재, 북에 대해 정권교체 및 붕괴, 흡수 통일을 바라지 않으며 침공도 없다는 이른바 '4노'(No) 방침에 확인되고 있다. 실행만을 남겨놓고 있는 방침이다. 외교가의 상식에 따르면 그 실행은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수교다.
이 모든 것들은 북미관계정상화가 북핵 감축과 미국의 대북 민간투자로부터 시작되며 그 정치적 내용은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수교일 것임을 확정해주고 있다. 북핵 폐기에서부터 북핵의 완전한 폐기로 이어지는 한반도비핵화와 세계비핵화의 실현 과정은 물론, 장기적이고 복잡한 공정으로 남겨두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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