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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글 모음/이재봉의 평화세상

미국 대통령선거와 한반도 평화

by 전선에서 2020. 8. 18.

미국 대통령선거와 한반도 평화

 

 

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명예교수)


 

 



미국 대통령선거가 2020113일 실시된다. 미국 대통령은 세계 최강대국 지도자이기에 좋든 싫든 전 세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도널드 트럼프 (Donald Trump) 공화당후보가 재선되든 조셉 바이든 (Joseph Biden) 민주당후보가 당선되든 북미관계와 한반도 평화에 적지 않은 변화를 불러올 것이다.

 

투표일을 약 80일 앞둔 8월 중순 미국 주요 언론은 트럼프보다 바이든의 지지율이 8% 정도 앞서는 다양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한다. 선거전문 매체들은 트럼프와 바이든의 승리확률이 30% 70%라고 예측한다. 사설을 통해 특정 후보를 지지해온 대형 신문들은 대개 바이든을 지지하며 그의 승리를 전망하고 기대하는 듯하다.

 

이 무렵 바이든이 카말라 해리스 (Kamala Harris) 상원의원을 부통령후보로 지명함으로써 언론의 각광과 지지자들의 환호를 더욱 크게 받고 있다.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또는 비백인 여성 후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트럼프를 선호한다. 그가 재선되길 기대하고 그렇게 되리라 예상한다. 다음과 같은 이유다.

 

 

1. 트럼프 재선을 기대하는 이유

 

2016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미국과 한국 여기저기서 트럼프 후보를 선호하는 강연을 많이 했다. “그가 비록 성차별, 종교차별, 인종차별을 일삼으며 온갖 막말을 쏟아내더라도 수천수만 무고한 사람이 개죽음 당하는 전쟁은 단 한 번이라도 덜 할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클린턴의 국제주의 (internationalism)와 트럼프의 고립주의 (isolationism) 대외정책 공약을 비교하는 설명을 덧붙였다.

 

미국의 대외정책 기조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건국부터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진 세계문제에 될수록 개입하지 않는 고립주의를 내세웠고, 대전 이후엔 초강대국으로 떠올라 세계경찰을 자임하며 국제문제에 적극적으로 간섭하는 국제주의를 앞세웠다. 그 결과 1945년부터 지구 곳곳에서 200번 넘게 전쟁에 뛰어들며 어느 나라보다 전쟁을 많이 하고, 잘하며, 좋아하는 세계 제1 호전적 국가가 되었다. 이런 터에 트럼프가 미국 제일주의 (America First)’와 고립주의를 들고 나왔다. 국제기구에 대한 미국의 개입이나 지원을 줄이고 군대 해외파견을 억제하거나 이미 외국에 주둔하는 미군을 감축 또는 철수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세계경찰 같은 광범위한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다른 나라로부터 직접 침공받지 않는 한 될수록 무력개입을 자제하겠다고도 했다.”

 

201611월 여론조사 결과 및 일반 예상과 달리 대통령에 당선된 트럼프가 20171월 취임 이후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관련해 험악한 말을 쏟아냈다. 8월 북한이 화염과 분노 (fire and fury)’에 직면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9월엔 유엔 연설을 통해 북한을 전적으로 파괴할 (totally destroy)’ 수 있다고 협박했다. 금세 전쟁이 터질 것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남한에서는 그를 호전광이라 부르며 전쟁에 대한 불안감을 표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11월 그의 한국방문 반대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나는 전쟁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며 오히려 그를 옹호하는 강연을 펼쳤다.

 

미국은 전쟁을 통해 독립했고,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했으며, 전쟁을 통해 초강대국이 되었고, 전쟁을 통해 세계패권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트럼프는 전쟁을 좋아하지도 않고 미치지도 않았다. 호전광이 아니라는 말이다. 긴장을 고조하며 곧 폭격할 듯 위협하는 등 미친놈처럼 굴며 상대의 기를 죽여 양보를 받아내는 미치광이 전략 (madman strategy)’을 쓰는 것이다. 협상이란 주고받는 것인데, 자신은 최소한 내어놓고 상대방에게서 최대한 받아내는 효과적 협상술이다.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를 얻는 경제원칙 아닌가. 그는 비도덕적이지만 교활한 장사꾼 출신의 유능한 협상가다.”

 

20182월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4월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6월 싱가포르에서 최초로 북미정상회담이 열리자, 남한에서 트럼프에 대한 인기와 지지도가 하늘로 치솟는 듯했다. 그러나 20192월 베트남에서의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그에 대한 실망이 커졌다. 2019년 가을부터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문제가 불거지자 남한 사회는 그를 규탄하며 크게 반발했다. 통일운동가들은 방위비분담금 대폭인상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나는 여전히 그를 지지하는 강연을 하거나 글을 썼다.

 

트럼프의 대외정책 10대 공약 가운데 하나가 한국과 관련되어 있다. 조건부 주한미군 철수다. 한국이 방위비를 전적으로 부담하지 않으면 미군을 철수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한국에게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을 대폭 인상하라는 것은 2019년 가을 뜬금없이 들이댄 압박이 아니라, 2016년 그의 대선공약이었다는 말이다. 한국이 3년 전 그의 당선 직후부터 대비했어야 할 문제이지 지금 호들갑떨 일이 아니다. 미국의 6조원 요구가 불법적이고 부당하다고 비난하는데, 그는 불법적이든 합법적이든 부당하든 정당하든 개의치 않는다. 자신과 미국의 이익을 챙길 뿐이다. 대개 연간 10% 늘리던 금액을 100% 올려달라고 요구하면 서로 양보하자며 40-50% 정도 인상으로 합의하기 쉽듯, 500% 증액하라고 압박하면 줄다리기하다 200-300% 인상으로 합의할 가능성이 있다. 그게 협상 귀재 트럼프의 노림수 아니겠는가. 한국은 미군이 꼭 필요하면 웃돈을 줘서라도 붙들어야겠지만, 필요치 않으면 나가라고 하면 된다. 방위비분담금 대폭인상을 반대한다면 소폭인상이나 현상유지는 찬성한다는 뜻 아닌가. 통일운동가들이 주한미군 필요 없다며 철수를 주장해야지 분담금 대폭인상을 반대함으로써 미군주둔 자체를 당연시하거나 정당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편, 트럼프가 20171월 취임해 20208월까지 3년 반 재임하는 동안 세계경찰을 포기하며 제국주의 미국을 스스로 크게 무너뜨린 것은 세계평화를 위한 가장 큰 업적이라 생각한다. 미국민들에겐 재앙이요 불행일지라도 반전평화 진보세력에겐 축복처럼 잘된 일이다. 그는 망나니 같지만 지금까지 대선공약을 잘 지켜온 편이다. 주한미군 철수 공약까지 지킬 수 있도록 그를 지지하며 활용하는 게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을까.

 

그는 사익을 위해 의회와 여론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다. 정통 정치외교 경력 없는 돈 많은 사업가 출신으로 군산복합체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편이다. 재선되면 2017년부터 꿈꿔온 노벨평화상을 다시 노리고 북한과의 협상을 즉각 재개해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협정까지 이끌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이에 반해 바이든 민주당후보는 미국의 정통외교에 물든 사람이다. 당선되면 국익을 위해 참모들 의견 경청하고 의회와 여론 중시하며 동맹 강화에 힘쓸 것이다. 앞에서는 점잖고 정중하게 미소 지으며 뒤로는 군산복합체 이익을 챙겨주는 전형적 대외정책을 펼칠 것이란 말이다. 남한의 방위비분담금을 합리적으로조금씩 인상하며 동맹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는 전혀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과의 대화엔 시간이 꽤 걸릴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 임기 안에 북미관계 개선이 이루어지기 어렵고 남북관계의 큰 진전에 걸림돌이 되지 않겠는가.

 

 

2. 트럼프 재선을 예상하는 이유

 

앞에서 트럼프를 교활한 장사꾼 출신의 유능한 협상가라고 했는데 그만큼 술수와 반칙의 명수이기도 하다. 온갖 수단방법을 이용해 탄핵당하지 않을 만큼 부정 저지르며 백악관에 남으리라 예상한다.

 

8월 중순 트럼프와 바이든의 지지율 격차가 약 8%라지만 9월 이전의 여론조사 결과는 크게 바뀌기 마련이다. 9월부터 대선후보 TV토론 등이 벌어지는 등 선거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에선 독특한 간접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뽑기 때문에 여론조사 결과가 선거에 그대로 반영되지도 않는다. 50개 주와 워싱턴특별구에 상원의원과 하원의원 숫자만큼 할당된 538명 선거인단 (electoral college)이 대통령을 선출하는데, 극단적 예를 들면, 캘리포니아, 텍사스, 뉴욕, 플로리다 등 인구가 많은 11개 주 국민투표에서 1표라도 더 받은 후보가 그 주들의 선거인단을 싹쓸이하여 (winner-take-all) 과반수 270명을 확보하면, 나머지 39개 주와 특별구의 국민투표에서 1표도 얻지 못해도 당선될 수 있다.

 

미국 대선에서 언제든 가장 중요한 쟁점은 경제문제다. 먹고사는 문제가 투표의 제1 결정요인이란 말이다. 20171월 트럼프 집권 이후 2019년 말까지 3년간 미국 경제가 호황이었다. 경제성장률은 한국보다 높은 연평균 2.5%였고, 실업률은 완전고용 상태와 다름없는 연평균 3.5%였다. 2020년 들어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곤두박질치고 실업률은 4-515%까지 치솟았다가 7-810%로 내리고 있는데, 이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거의 모든 나라의 보편적 상황이지 트럼프 탓이 아니다.

 

또한 트럼프는 TV쇼 진행 경험을 가진 토론의 달인이기도 하다. TV토론에서 말솜씨가 부족한 바이든의 나이와 건강 문제, 성폭행 의혹과 아들의 우크라이나 기업 관련 의혹 등을 부풀리며 거세게 몰아붙일 것이다.

 

8월 중순 바이든이 부통령후보로 비백인 여성을 지명한 건 꽤 의미있다. 미국에서 흑인은 1870년 투표권을 얻고 여성은 꼭 반세기 늦은 1920년 참정권을 갖게 되었다. 최초로 2008년 흑인이 대통령에 당선됐는데, 백인이든 흑인이든 여성은 아직 대통령이나 부통령으로 뽑힌 적이 없는 상황에서, 흑인 여성이 부통령후보가 된 것이다.

 

이에 해리스 상원의원이 큰 관심과 인기를 끌고 있지만, 부통령후보의 대선에 대한 결정력은 크지 않다. 부통령은 대통령 죽으면 그 자리에 오르는 게 가장 증요하고 거의 유일한 역할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흑인들에 대한 확장력도 별로 크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흑인은 미국 전체인구의 13% 안팎을 차지하는데 투표율이 낮다. 노예해방에 따라 1870년부터 법적으로 투표권을 얻고 에이브라함 링컨 (Abraham Lincoln)의 공화당을 지지했지만, 1930년대 세계대공황을 극복한 프랭클린 루즈벨트 (Franklin Roosevelt)새로운 정책 (New Deal)’ 영향으로 민주당을 지지해왔다. 어차피 흑인 유권자 80% 이상이 민주당을 지지해온 터에 흑인여성 부통령후보가 추가할 수 있는 흑인표가 얼마나 되겠느냐는 뜻이다.

 

 

3. 남한의 준비와 대응

 

미국은 한반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대통령 교체에 따라 한반도 정책이 크게 바뀔 수 있다. 두 후보의 성향과 대외정책 기조를 비교해보면, 트럼프 재선이 바이든 당선보다 북미관계와 한반도 평화에 더 빨리 더 큰 진전을 가져올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누가 당선되든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고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는데 남한이 더 주도적이고 더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게 중요하고 바람직하다.

 

참고로, 20011월 취임한 부쉬 (George W. Bush) 대통령이 20021월 북한을 악의 축 (axis of evil)’이라 부르며 호전적 대북정책을 강화할 때, 김대중 대통령은 2월 그와 정상회담을 갖고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해설득했다. 부쉬가 도라산전망대를 찾아 이 철도로 한반도 이산가족들이 합쳐지길 기원한다 (May this railroad unite the separated families of Korea)”는 서명과 나는 북한을 침공할 의도가 없다 (I have no intention to invade North Korea)”는 발언을 남긴 배경이다.

 

이와 반대로, 20091월 취임한 오바마 (Barack Obama) 대통령은 핵무기 없는 세계 건설을 외치며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클린턴 (Hillary Clinton) 국무장관은 북미수교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을 통해 북핵문제를 풀자고 제안했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거듭 거부했다. 북한이 핵무기를 먼저없애고 개방하면 1인당 GDP 3,000달러가 되도록 지원하겠다는 비핵.개방.3000’ 정책을 고집하면서다. 남한의 진보세력은 오바마 정부가 전략적 인내 (strategic patience)’ 정책을 내세워 북한과 협상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적대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무튼 남한은 미국에 의존적이거나 종속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자주성을 지니는 게 급선무다. 한미동맹 강화와 주한미군 유지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한 미국의 간섭과 압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이 과거 냉전시대엔 남한 국가안보를 위한 수단이었지만, 냉전종식 이후 미중 패권경쟁 시대엔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한 도구로 바뀌었다. 오늘날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이 남한보다 미국에 더 절실한 터에 오히려 남한이 갑 되고 미국이 을 되는 게 정상 아닌가.

 

미국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주저하고 반대하는 이유가 주한미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주한미군의 실질적 존재이유가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데 있지만, 법적 정치적 명분은 북한의 남침을 저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과 전쟁을 종식하고 적대관계를 풀며 평화협정을 맺으면 주한미군 유지 명분을 잃게 된다.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실체를 제대로 인식하면 미국에 대한 자주성을 찾고 한반도 종전과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침 문재인 대통령이 2020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핵문제로 얽힌 북미대화에 크게 상관하지 않고 조금 더 주체적으로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수차 강조했다. 이인영 통일부장관도 7월 취임 전부터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지체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남한이 더 자주성을 지닌 채 더 주도적이고 더 적극적으로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며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고 통일을 앞당기게 되길 기대한다.

 

 

* 이 글은 202089일 전주YMCA에서 열린 <전북기독행동> 주관 평화통일 기도회에서 강연한 내용과 927일 광화문아침에서 있을 <통일학당> 주관 통일포럼에서 강연할 내용 일부를 정리한 것이다.

 

씨알의 소리20209-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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