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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권말선440

[시] 강물 강물 권말선 저기 강이 흐른다 물이 흐른다 울렁꿀렁 부대끼어 결을 만들며 흐른다 흘러간다 제 가진 좋은 것은 다 숨 쉬는 이들에게 나누고 제게 던져진 아픔은 모조리 껴안고 떠난다 묵묵히 간다 쉼 없이 흐르는 강은 어머니다 생이다 역사다 어머니가 어머니의 어머니에게 이끌려 어머니가 또 나를 이끌어 흘러가고 내가 아이의 손을 아이는 언젠가 또 제 아이의 손을 잡고 흐를 것이다 물이 흐른다 생이 흐른다 사람이 역사가 흐른다 좋은 것은 뒤에 남기고 아픔은 쓰다듬고 달래며 흘러 결국 고운 것 아름다운 것만 전해주자고 그러자고 흐른다 흘러간다 결을 이루며 끝없이 간다 끝도 없이 2022. 5. 9.
[시] 너의 이름에는 너의 이름에는 -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을 그리며 권말선 아이야, 너의 이름 안에는 겨울을 이겨낸 새싹의 힘 있고 꽃을 피워낼 거름의 사랑 있고 영롱히 지켜갈 빛의 용기 있단다 일본에서도 조선사람임을 자랑하라 일러주는 세 글자 조선의 역사 조선의 얼 이어가라 북돋우는 세 글자 리가영, 박량서, 김희정 설아야, 윤아야, 영빈아 부르는 이름은 달라도 다르지 않은 하나의 의미는 ! 이름을 부르고 답할 때마다 승리의 약속, 희망의 노래 우리 다시 새겨보자꾸나 우리 다시 불러보자꾸나 아이야, 너의 이름에는 부르면 선뜻 안겨드는 뭉클한 조국 있단다 한품에 보듬어 지켜주는 아아, 따스한 해빛 있단다 2022. 5. 8.
[시] 비에 잠기다(悲感) 비에 잠기다(悲感) 권말선 비가 온다 새벽 4시 반 안방 천장에서 비가 내린다 또닥 또닥 또닥 소리에 잠이 후닥 달아났다 옥상 방수공사를 끝냈다는데 비는 어느 약한 틈을 타 이 새벽 내 방 안까지 내리는 걸까 천장에서 내리는 비는 뚝 떠덕 똑 따닥 풀어야 할 암호로 변했고 떨어지는 비를 받아놓고는 저 비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어느 틈을 따라 여기로 왔는지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몰라 멍하다 엊그제 마신 독주가 혈관을 맴돌다 더는 갈 곳 없어 역류하여 닿은 곳이 천장인 걸까 뚝 뚝 따 똑 똑 따닥 쓰거운 가난이 비에 잠긴다 이 비에도 일터로 가시는지 공사장으로 출근하는 이의 새벽 어둠을 땅땅 깨는 발걸음 소리 뒤로 여기저기 대문 여닫는 소리 이어 창이 푸르스름 밝아 오고 옆에선 다시 잠든 이의 고른 숨소리 .. 2022. 4. 29.
[시] 토리야, 도망쳐! 토리야, 도망쳐! 권말선 尹의 개, 토리야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얼른 도망쳐! 그래도 개는 귀엽다고 개가 무슨 잘못이냐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말이야 틀린 말은 아니지만 따뜻하고 다정한 반려가 아닌 한낱 희롱의 소품으로 이용하는 사악한 네 주인들 피해야 해, 토리야 사과 따위 개나 주겠다는 듯 네게 사과를 내밀고 경찰은 권력의 개라는 듯 네 목줄에 '경찰'을 새겼지 조롱하고 비하하는데 이용하는 네 주인들 피해 달아나, 토리야 그들이 네게 주는 사료와 간식은 조작과 사기와 알량한 특권으로 긁어모은 더러운 재물로 산 거란다 너도 사악한 주인은 싫을게야 너도 더러운 먹이는 싫을게야 그렇지, 토리야? 무능하고 비뚤어진 권력에 빌붙으려는 개만도 못한 놈들이 네 주인들 곁으로 하이에나처럼 몰려드는 게 보이지? 저것들.. 2022. 4. 21.
[시] 어깨동무 어깨동무 권말선 가로수 밑동에 고들빼기 한 포기 돋아났다 껍질이 깨지고 갈라진 나무는 딱 봐도 나이 많고 갓 움튼 고들빼기는 새포름한 연두색이다 언제였을까, 순한 연둣잎 움 틔웠던 나무의 그때는 오기나 할까, 나무의 키만큼 자랄 고들빼기의 나이는 색깔도 달라 키도 덩치도 달라 나무와 풀, 한 생도 달라 그래도 나란히 선 저 둘은 보기만 해도 얼마나 다정한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얼마나 어여쁜지 제 가진 자리도 내어주고 비바람 피할 품도 내주고 해를 받는 방법도 알려주면 하늘거리는 노래로 보답하는 저 둘은 만나자마자 이끌린 다정한 동무여라 따뜻한 의지여라 사랑하는 사이여라 서로 다른 모습일랑 탓하지 않고 서로 가진 것으로 정을 나누는 착한 고들빼기와 듬직한 가로수의 봄날 따사론 한 폭의 동화처럼 남과 북 우.. 2022. 4. 19.
[시] 미꾸라지 한 마리가 미꾸라지 한 마리가 권말선 천박하고 천박한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오냐오냐 얼러 대는 역시나 천박한 것들에 떠받들려 제가 무슨 용이나 된 듯 같잖은 발광을 떤다 개울물 아닌 온 나라를 흐리고 있다 아무리 발광해도 정의롭고 꼼꼼한 민중의 손아귀는 놈의 목을 움켜쥐고 놓지 않는다 본부장 비리란다 대장동 특검이란다 전쟁광 퇴출이란다 친일친미 안 된단다 맑은 물 흐려놓고 어물쩍 넘어가려는 꼼수란다 그러니 저 미꾸라지 굵은소금 오지게 뿌려 취임도 못하게 선제탄핵하잔다 천박하고 천박한 미꾸라지 주제에 감옥을 눈앞에 둔 범죄자 주제에 감히 2022. 4. 1.
[시] 꽃의 利己 꽃의 利己 권말선 저만 보라고 저만 볼 걸 알고 빠알갛게 혹은 노오랗게 분홍 연홍 또 하아얗게 보라 연보라 온갖 색 색의 잔치 종이도 옷감도 살결도 아닌 꽃잎 저만의 꽃잎 다소곳한 눈빛과 겸손한 들숨에만 살짝 허락하는 향 오금저리게 눈부시게 한껏 달뜨게 설레게 해 놓고 뒷모습도 아련히 아아, 아련히... 2022. 4. 1.
[시] 오후의 놀이터 오후의 놀이터 권말선 햇볕이 눈썹 끝에 매달린 오후 한 떼의 아이들이 놀이터를 휘젓고 논다 병아리 같은 녀석 몇이 땅을 판다 토끼 같은 녀석들이 모여앉아 꽁알꽁알 속삭인다 치타 같은 녀석들이 쌩 쌩 뛰다닌다 어린 양들이 천천히 낮은 언덕을 오르내리고 사슴들이 우르르 모여 뿔 자랑을 하고 오리랑 게사니 콩 닥 콩 닥 시소를 찧고 겅 중 겅 중 조심스레 기린이 살 곰 살 곰 쑥스럼 타는 고양이가 어미 옆에 매달린 어린 캥거루가 뱀 꼬리 같은 자전거 바퀴 둘이 무대에서 춤추는 어린 사자들이 느긋무심하게 가로지나는 타조들이 줄 위에 쪼르릇 나앉은 참새들이 늦은 오후의 놀이터 마실 나온 게으른 암사자 얼굴 위로 쏟아진 볕은 눈썹 끝에서 쩍쩍 달라붙고 아이들 짹짹뺙뺙꺅꺅 웃는 소리 안갈거야안갈거야 앙앙박박 우는 소.. 2022. 3. 30.
[시] 용산에서 만나자 용산에서 만나자! 권말선 멀쩡한 청와대 놔두고 기어이 용산으로 오겠다니 그래, 어디 용산에서 만나보자 어디 용산에서 한번 붙어보자 촛불들이여 이제부터 우리 약속의 말은 “용산에서 만나자!” 촛불에 촛불을 더하여 “용산에서 만나자!” 다음을 기약할 때도 역시 "용산에서 만나자!" 주한미군 옮겨간 자리에 미 대사관 들어온다지 주인 따라가는 똥개처럼 미국이 열어주는 개구멍으로 대통령 집무실 들어오면 사기꾼, 법사, 굿판 돈벌레며 기레기류 줄줄이 따라오겠지들 대보름 지신밟기 때 용산 곳곳을 돌며 자근자근 밟았던 액 다 없앤 줄 알았건만 미국이 살려냈네 잡귀잡신의 두목 적폐의 두목 똬리를 틀고 앉은 뱀 같은 저 미국이 그러나 용산이 어떤 땅인가? 일제 때 우리 선조들 강제징용 끌려가시던 땅 청나라 일본 미국 돌아.. 2022. 3. 19.